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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에서 끌어낸 예술혼
변종곤 작가
20세기 대가 담은 현악기 아상블라주 작품으로 개인전 열어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사진 / Sechang chun
‘충격’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현대미술은 얼마나 놀랠 것인가에만 골몰하는 듯 했다. 뉴욕의 미술관을 메운 폭력과 섹스 속에서 변종곤 작가는 ‘위기’를 느꼈다. 자극이 증식하는 속도가 심장 뛰는 속도를 질러가고 있었다.

이번 개인전에 작가가 한 세기 전 예술가들을 불러낸 것은 그 때문이다. 20세기에는 혁명적인 변화조차도 철저히 ‘인간’의 편에서 이루어졌다.

“초현실주의마저도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태동했다. 멀쩡한 사지로 떠났다가 외다리로 돌아온 애인의 형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달까.” 예술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었다.

오래되고 망가진 현악기들이 르네 마그리트, 백남준, 만 레이,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요셉 보이스, 반 고흐, 르 꼬르뷔지에가 빙의할 ‘몸’으로 간택되었다. 여성의 굴곡을 닮은 허리선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껴입은 피부결이 보는 것만으로 만져지는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그것을 예술가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오브제들을 합하고 일일이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래서 언어 이전의 존재감이 있다. 이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보면 ‘성스러움’이란 촉각적임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손이 소리를 품었던 울림통에 예술혼을 깃들였다.

특정한 종교가 없는 작가에게 이런 ‘영성’을 심은 것은 얼마쯤 그의 할머니였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여러 종교의 장점의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 절과 교회에 번갈아 데리고 다녔던 할머니”를 회고했다.(2003.1 뉴욕타임즈, 윌리엄 짐머의 인터뷰 기사) 할머니의 눈은 만물에서 신을 보았다.

심지어 “길가의 돌에까지 절을 할 만큼”. 버려진 것들에서 경외감을 끌어내는 신기는 대를 이었다. 변종곤은 작품 재료를 거리에서 얻는다. 골목길, 벼룩시장, 골동품상이 원천이다. 도가 높은 작가의 눈은 낮은 곳을 향한다. 이런 식이다.

“전라도의 한 구석진 절을 찾았을 때 아름다움을 보았다. 서민의 얼굴을 한 부처상이 땅에 누워있는데, 그런 걸 어떻게 모르고 살았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의 그의 집에는 조악한 예수상, 부처상이 그득하다고 한다. 필부필부의 번뇌와 함께 했던 것들이다. 고민이 생기면 그것들을 툭, 치며 “해결해 달라”고 농을 건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도 그 중 하나가 꼈다. ‘백남준’의 머리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었다.



1-GIORGIO DE CHIRICO, 2009
2-A KISS FROM GOD, 2009
3-사진 / Marco kang
4-Culture-1, 1993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저 유머감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객기도 냉소도 아니다.

“짐승처럼”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다. 철수된 미군기지를 그린 ‘저항적인’ 작품 세계가 문제 되어 떠밀리듯 뉴욕에 왔던 80년대 초반. 섞일 곳은 빈민가뿐이었다. 구호단체의 라면 급식으로 연명했다.

버려진 물건을 모으기 시작했다. 작업용 물감 살 돈이 없어 재료를 얻으려는 것이었지만, 외로움도 컸다.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었고, 아직 따뜻했고, 분노하고 있는 물건들의 마음이 손에 잡혔다. 방에 들여놓으면 사람처럼 힘이 됐다. 인터뷰 내내 변종곤은 자신의 오브제를 “그 놈”이나 “얘네” 같은 호칭으로 불렀다.

작가 특유의 ‘밀리터리 스타일’에도 사연이 있다. 뉴욕에서 처음 입은 옷이 영국 군복이었다. 훈장도 주렁주렁 달았다. 위압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가진 것 없는 동양인이 자신을 방어하는 제스처였다. 스스로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때 주변으로부터 ‘수도사’라고 불렸다.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서점에 가고, 길을 나설 때는 늘 긴장한다. 어떤 오브제가 언제 주파수를 보내올지 모르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는 “짐승처럼” 눈이 밝아지고 예민해진다고 했다. 군복을 입으면 허리가 곧추서고 몸이 빨라진다고 했다. 공부할 것도, 작업할 것도 너무 많아 건강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완벽하다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30대의 몸매를 유지한 61살의 작가가 말했다.

최근에야 자신을 “풀어”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예술가가 어디서든 환영 받는 이유는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굶주려 쓰러지며 “얼마나 좋은 작가로 만드시려고 이런 환경에 처하게 하나” 소리가 절로 나온 기억을 떠올리는 작가의 목소리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게 평온했다.

변종곤 개인전 ‘Icons of Art’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더 컬럼스 갤러리에서 5월30일까지 열린다. www.columns.co.kr, 02)3442-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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