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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뮤지컬 하모니 손에 쥔 '작은 거장'
[문화혁명가] (33) 김문정 음악감독
'명성황후' 8년간 지휘봉 잡으며 스타급 감독으로 이름 알려
따뜻하고 조용한 카리스마로 배우들의 잠재력 최대로 끌어내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외국인 스태프들과 함께 한 김문정 감독
꼭, 그녀가 상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쯤 되면 만나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또, 상을 타 버렸다. 그녀는 작년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맨오브라만차’로 음악감독상을, 제14회 한국뮤지컬 대상에서 ‘내 마음의 풍금’으로 작곡상(최주영 작곡가와 공동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음악감독 김문정(38).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시상식 때 ‘내 마음의 풍금’음악감독상에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얼떨떨했다. 작년 시상식 때는 10초 전에 귀띔해주었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게다가 두 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축하공연에서 그녀는 지휘를 담당하고 있었다. 호명된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멋들어진 수상 소감 대신 “혼자 칭찬 받는 것 같아 다같이 고생한 스태프에게 미안하다. 영광을 돌리겠다”고 말한 기억만 난다. 그 외엔 횡설수설, 가물가물.

‘김문정’ 이란 이름 앞에는 언제부턴가 ‘스타 감독’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중대형 극장과 소극장을 포함해 일년에 150여 편의 뮤지컬이 무대에 올려지는데 대중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음악감독은 열손가락 안팎에 불과하다. 그 문제를 따지기 전에, 김문정 씨는 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음악감독이다.

‘명성황후’, ‘몽유도원도’, ‘유린타운’, ‘맘마미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프로듀서스’, ‘에비타’, ‘맨오브라만차’, ‘내 마음의 풍금’. 해외 라이선스 작품과 창작뮤지컬 등 주로 대작을 도맡아 지휘했으니 뮤지컬 세계에서 그녀의 이름 석자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아직도 어색한지 손사래를 치며 조심스러워 한다. 정작 자신은 굽히고 상대를 높이며 인터뷰에 응하는 그녀를 사람들이 왜 ‘따뜻한 인격의 소유자’로 부르는지 알 만했다.

김문정 씨는 어느날 갑자기 유명해진 음악감독이 아니다. 2001년 뮤지컬 ‘둘리’로 첫 데뷔를 했지만 뮤지컬과의 인연은 1993년 건반 세션맨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녀는 뮤지컬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이문세, 김장훈, 소찬휘, 변진섭 등 유명 가수들의 세션활동과 각종 CM송 작곡, 편곡을 하며 왕성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다.

‘KBS 심야에의 초대’와 ‘밤과 음악 사이’에서 고정 세션맨으로 활동할 때까지 자신이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지휘봉을 잡게 될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는 김문정 씨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첫 데뷔작 ‘둘리’로 ‘좌충우돌 음악감독 도전기’라는 주제로 책 한 권을 내도 될 만큼 우여곡절 입봉식을 치렀다면 8년간 지휘봉을 잡은 ‘명성황후’는 음악감독으로서 ‘김문정’이란 이름을 알리고 훌쩍 성장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명성황후로 해외 공연을 갔을 때죠. 해외에선 현지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해야 하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외국 단원들을 본 순간 기가 눌려버렸어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데다 키 작은 동양인 여자라는 열등의식은 그녀를 주눅들게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걸 빨리 깨달았다.

“그들은 프로였어요. 저를 ‘동양 여자’가 아니라 ‘지휘자’로 바라봤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죠. 서로의 포지션을 인정하는 순간 음악적인 소통이 이어졌어요. 정이 들 무렵엔 영어가 유창해지면 지휘자로 와달라는 초청도 받았는걸요.(웃음)”

LA, 호주, 런던 등 몇 차례의 해외 공연이 김 씨의 음악감독 인생에 큰 자산이 되었다는 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김 씨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해외에서 보고 배운 좋은 점들을 배우들을 가르칠 때 활용하기도 했다.

“배우는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하루종일 질질 끄는 연습은 하지 않았어요. 주연, 조연 배우, 앙상블까지 전체를 다 불러 놓고 비효율적으로 밤을 새며 연습하기보다는 파트를 나눠서 연습시켰죠. 두 시간이면 정확하게 시작해 끝내는 방식이었죠. 단 한 명이 와도 나머지를 기다리지 않고 연습을 하다 보니 지각하면 손해라는 걸 나중에 알고 다들 시간을 칼같이 지키더라고요.(웃음)”

김 씨가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더 엄격해져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언성을 높인다든지 혼내는 일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타이르며 조언을 해주면 알아서 깨닫고 따라와 주었다. “뮤지컬을 하기 위해 모인 배우, 스태프치고 싫어서 억지로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열정으로 온 이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혼을 낸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웃음)”

김 씨의 ‘조용한 카리스마’는 서서히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번 ‘음악선생님’ 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김 씨는 배우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종종 ‘코믹 배우’로 변신하곤 했다. ‘맘마미아’공연 때였다. 배우들이 지쳐 보인 어느날, 그녀는 피트(pit.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있는 공간) 안에서 치아에 김을 붙이고 나와 씨익 웃어 주었다. 배우가 기분이 좋아야 발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센스는 통했다. 배꼽을 쥐고 웃을 만큼 배우들이 신나게 노래를 불러주었던 것이다.

뮤지컬 음악감독 경력이 어언 10년째. 그 사이 굵직한 작품들로 명성까지 얻은 김문정 씨의 바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저에겐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가 있어요. 2005년부터 함께해 온 ‘The M.C’라는 민간 오케스트라죠. 그들은 저에게 천군만마와 같은 소중한 존재예요. 그런데 ‘MR’(music recording)체제로 바뀌면서 오케스트라의 라이브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줄었다는 거예요.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라이브를 선호하던 제작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거죠.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MR’이라는 말 자체가 없거든요. 관객에게 생동감 있는 라이브 공연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으로서 저의 바람입니다.”

7월에 올려지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개사와 슈퍼바이저 역할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봄에 잘 뿌려놓은 씨가 열매를 맺어 풍성한 수확거리가 생기듯 ‘명성황후’, ‘맘마미아’, ‘맨오브라만차’재공연으로 김 씨는 다시 지휘봉을 들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내 마음의 풍금’같은 창작뮤지컬을 통해 신작의 짜릿함을 더 맛보고 싶단다.

김문정 씨는 뮤지컬이라는 한 배를 탄 이상 자신은 배가 순항하도록 돕는 선장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프로다. 뮤지컬계의 떠오르는 ‘작은 거장’이 움직이는 지휘봉의 끝을 지켜볼 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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