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서울 배경 단편소설 집필 중… 한국 작가 노벨상 수상은 당연한 일

“노벨상 수상 이후 작가로서 삶에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 작가가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평생 글 쓰는 일만 하니까요. 그런 면을 제외하면 수상 이후 제 삶이 바뀐 것은 없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회가 좀 더 쉽게 주어진다는 것이죠. 이렇게 여러분과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시겠지만, 노벨상은 상금이 있어요. 그 상금으로 빚을 청산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이죠.”

이 우아하고 위트 있는 대답의 주인공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다.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중 그의 작품을 한두 권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국에 꽤 알려져 있다. 순수문학을 하는 외국 작가로는 드물게 등단작 ‘조서’를 비롯해 ‘아프리카 인’, ‘타오르는 마음’, ‘사막’ 등 수십 권의 책이 번역 소개됐다.

‘황금물고기’를 비롯한 몇 권의 책은 중견 소설가 최수철 씨가 번역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최수철 작가는 “대학 시절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국내 문단에서 르 클레지오의 영향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수상자 발표 일주일 전, 한국을 떠나 많은 국내 팬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2001년 처음 방한한 이래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한국을 찾았다는 그는 지난 2일 입국해 현재 자신이 석좌교수로 있는 이화여대의 기숙사에 머물며 서울을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

“이대 후문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아기자기한 도시풍경이 펼쳐지는 데 이런 작은 골목과 풍경,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단편 소설의 배경이 돼요. 그리고 서울에서 전철을 자주 타는데, 아주 깨끗하고 사람들도 재미있죠. 환상소설의 배경으로 쓸 생각입니다.”

그가 바라본 한국은 단순하지만 다양한 문화를 추구하는 복합적인 성향의 나라다. 프랑스 문화가 폐쇄성을 가진 반면 한국은 소박하면서도 깊은 관계가 유지되는 문화라고. 그는 지하철에서의 재미있는 일화를 꺼낸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면 꼭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르 클레지오에게 신상을 물어 본단다.

“일정 나이가 되면 서울은 전철 무임승차가 가능하잖아요. 많은 어르신들이 전철에서 시간을 보내시는데 옆 자리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제 국적과 신상을 물어보기도 해요. 이런 소박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한국의 매력이지요.”

세상과의 교류

알려져 있듯, 르 클레지오는 첫 소설 ‘조서’(1963)로 ‘르노도 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 뛰어난 작품으로 프랑스 문단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젊은 시절 그는 언론 노출을 피한 채 수도사처럼 작품에만 집중했다.

13일 이화여대 강연에서 유년 시절 전쟁의 기억으로 말문을 연 그는 “극단적 경험이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듯하다”고 말했다.

“저는 전쟁을 겪는 행운과 불행을 동시에 누렸습니다. 3~4살에 포화와 굶주림을 겪으며 갇혀 지낸다는 것, 언제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지 모를 미지의 적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책이나 영화를 통해 역사의 한 장면으로 전쟁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제 내면 깊이 뿌리 박힌 정서로 전쟁을 기억하게 됐죠. 이 정서가 저를 문학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르 클레지오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일화, 당시 서구의 식민지인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소개하며 이 경험이 자신의 문학적 자양분이 됐노라고 말했다.

전쟁과 식민지배는 작가 개인뿐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 문학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2차 대전을 전후로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문예사조인 ‘앙가주망’이 바로 그것이다. 사르트르의 희곡 ‘더러운 손’, 카뮈의 ‘반항적 인간’, 앙드레 말로의 ‘인간조건’ 등 작품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미국의 스타인 벡, 콜드울,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 등도 이 시기를 빛낸 예술가들이다. 르 클레지오는 “위대한 작가와 사상가들이 휴머니즘에 대한 신념을 선언했고 예술이 민중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문단의 독보적 작가이지만, 동시에 프랑스 문학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와 모리셔스 두 개의 국적을 갖고 있고 스스로를 ‘아프리카인’이라 말할 정도로 자유로운 사상의 작가다. 인간, 언어, 사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환상적 소설을 쓰는 그가 문학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20세 때 처음 소설을 썼는데, 세상을 향해서 심하게 주먹질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봐라’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썼어요. 강하고 난폭한 글이었지요.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소설가가 표현하는 것은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태와 내용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을 시도하게 된 거죠. 어떤 작품을 쓸 때 형태와 내용 중 한가지만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 (형태와 내용이) 병렬 관계에 놓이게 되는 그런 작품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니까요.”

그는 ‘왜 글을 쓰는가?’란 질문에 어느 작가의 대답을 인용해 대답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이 너무 짧기 때문에.”

그러니까, 문명 이전 사회를 꿈꾸는 그의 글은 역으로 세상과의 소통, 교류를 나타낸 셈이다.

작가는 시대의 증인

20세기를 넘어서며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각종 문화 장르에서 외설과 예술의 시비는 끊이지 않고, 영화 ‘매트릭스’처럼 천문학적 금액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가 철학에서 모티프를 따오는 경우도 있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에 대해 한 문학평론가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느냐, 해답을 구해주느냐의 차이”라고 대답했다.

예술은 인간과 세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해결의 방법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르 클레지오 역시 이와 비슷한 예술관을 갖고 있었다. 그는 “문학은 예언자적 역할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대신 문학은 꽤 정확하게 현대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오늘날 문학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휴머니즘이죠. 현대 예술은 교류와 개방이라는 사명을 저버리지 않았어요.”

그는 “작가는 한 시대의 증인, 시대를 관통하는 메아리”라고 말했다. 작가는 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작가는 작품 속 등장인물, 상황과 이야기를 통해 한 시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 기쁨, 절망, 희망을 표현함으로써 시대가 어떤 것을 갖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예전 월레 소잉카(1986년 최초로 아프리카 문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이지리아 작가)에게 ‘당신에게 소설의 메시지는 뭔가, 왜 소설을 쓰는가’에 대해 물었을 때 ‘내 작품들은 병에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통거리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아마 작가들이 단호한 목소리로 해결책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많은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의구심을 갖게 하는 남다른 감수성의 사람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는 한국문학 작품 중 황석영, 이승우, 이청준의 소설과 여류작가 한강의 단편을 언급하며 “탐미주의보다 진실의 표현을 우선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기자들과 학생들이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자 “가능성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스웨덴 한림원에 갔을 때 그쪽 분들이 한국과 한국 문학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한국을 잘 알고 있고, 번역된 작품도 많이 읽고 있더군요. 여기서 그분들이 거론한 작가들의 이름을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작가인 아나톨리 김을 비롯해 황석영, 이승우 등 많은 작가들이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근대문학의 종언, 문학이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난 시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학의 사명은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줄곧 질문 받아 왔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는 “전쟁의 시대, 문학이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어떤 하나의 문화권이 다른 문화권에 대해서 알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는 타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때 전쟁이 종식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때, 문학이 교류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사치여서는 안 된다.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문학은 가장 훌륭한 대화의 장이다”는 말을 남겼다.

“모리셔스 섬의 한 아이가 호머나 단테,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작품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인디언 시애틀 추장이 조상의 땅과 그 안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대가없이 주겠노라며 미국 대통령 앞에서 행한 멋진 연설을 한국과 프랑스의 아이들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에 토마스 모폴로가 낭독하는 남미 줄루족의 왕 샤카의 서사시가 울려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이 세상은 변할 겁니다. 그래야만 인류는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1940년 4월 13일 프랑스의 니스에서 태어났다.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영어와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지만, 영국이 인도양의 모리스 섬을 식민지화하려는 데에 반감을 느껴 불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첫 소설 '조서'(1963)로 '르노도 상' 수상

▲ 1980년 '사막'을 비롯한 전 작품으로 '폴 모랑 상' 수상

▲ 1994년에는 잡지'Lire'에서 행한 설문조사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선정

▲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