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18) '김씨 표류기'의 이해준 감독김씨 향한 나의 관심과 애정이 관객에도 전해졌으면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김씨 표류기’의 전제는 ‘죽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는 게 고단해 한강 다리에서 몸을 던진 김씨(정재영)는 무인도인 밤섬에 불시착한다. 나무에 넥타이를 걸고 목을 메려는데 하필 똥이 마렵다.

아무렇게나 퍼지르는 중에 타는 듯 붉은 꽃을 발견한다. 샐비어다. 따서 입에 넣는다. 달다. 똥만 다 누면 죽어야 하는데, 젠장맞을, 왜 이리 단가. 김씨는 엉덩이를 깐 몰골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렇게, 문명의 이기가 전무한 이곳에서나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한 김씨의 새 삶이 시작된다.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특한데 차츰 적응까지 한다. 야생과 쓰레기에서 먹을 거리와 누울 자리를 구하고 배 부르니 심심해하기도 한다. 생활의 규칙이 생긴 후엔 인생의 희망을 궁리한다.

“사소한 것에 본질이 있지 않을까.” 그런 시선으로 이해준 감독은 김씨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여자 김씨(정려원)의 망원경을 통해, 지켜봐준다. 그러니 의미심장해진다. 그의 “진화 과정”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메타포 같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누추한 일상도 구원받는다. 이 ‘삽질’과 좌절, 안달복달과 소소한 성취들이 오죽 가엽고, 귀엽고, 대견하지 않을 쏘냐.

겨우 김씨의 밤섬과 여자 김씨의 골방을 오가는 검박한 구도에서 이렇게 거대한 의미가 끌려 나온다. 감독 스스로 “차포 다 떼고 두는 장기”라고 설명했을 만큼 이야기에만 집중한 결과였다. ‘상업적인’ 기교나 스펙터클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만큼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김씨를 향한 나의 관심과 애정이 관객에게도 전해졌으면 했다. 또 그것을 통해 타인도 자신도 이해했으면 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많이,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결국 여자 김씨도 김씨를 향해 간다. 김씨가 모래 사장에 크게 써놓은 ‘HELLO’에 ‘덧글’을 달아주려고 외출을 감행한다. 헬맷을 쓰고 우산으로 몸을 가린 야행이지만, 은둔 생활 3년만이다. 안부를 주고받던 두 김씨들이 우여곡절을 겪은 후 손 잡는 순간, 영화는 기쁘게 끝난다. “어떤 안부는, 어떤 이들에게 안부는 이토록 절실하다.” 그러고 보면 김씨의 ‘HELLO’는 ‘HELP’를 고친 것이다.

뭉클한 것은 영화의 마음씀씀이다. 이해준 감독은 3년 간 자신을 방 안에 가둘 만큼 상처 입은 여자 김씨의 침상에 ‘?s?s이’를 깔아주었다. “깨지기 쉬운 것을 포장하는 용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여자 김씨가 외출에서 돌아오는 장면을 꼽았다.

매일 밤 꽃을 찍은 ‘비디오 크리너’ 화면을 보면서 잠이 들던 그가 진짜, 흐드러진 꽃을 보고 우뚝 멈춘다. 카메라는 여자 김씨의 눈이 되어 꽃을 클로즈업한다. 여자 김씨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 “살아 있는 한 순간”을 흐붓하게 담는다.

이해준은 바로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거나 2006년 이해영 감독과 ‘천하장사 마돈나’를 공동 연출했다는 이력보다 지금은, 그렇게 소개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