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작가] 온다 리쿠서울국제도서전에 최신작 '어제의 세계' 소개… 이야기보따리 선사

대학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가면 늘 대출 중인 소설들은 대부분 일본소설들이다. 특히 출간 20년이 되어도 여전히 꾸준한 사랑을 받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최근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은 거의 구하기가 어렵다.

이밖에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오쿠다 히데오의 책들도 손때 묻은 흔적으로 그 인기를 반증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련되고 ‘쿨’한 문체. 무엇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구성 없이 술술 잘 읽히는 내용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서 쉽게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지난 13일 개막한 ‘2009 서울국제도서전’의 일환으로 내한했던 온다 리쿠 역시 이러한 인기작가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의 수많은 팬들에 둘러싸인 온다 리쿠의 모습은 인기작가의 풍모보다는 수더분한 동네 아주머니 같은 평범함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은 듯 손으로 깍지를 굳게 끼고 초조하게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 모습은 내성적이라는 그의 말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역시 작품으로 말하는 법. 온다 리쿠가 창조해온 세계는 다른 일본작가들이 그렇듯이 굳이 머리를 싸매며 집중하지 않아도 될 만큼 흡입력 있는 전개로 독자들을 불면의 밤으로 인도한다.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멜로적 요소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미스터리적 요소를 절묘하게 이야기에 녹여내어 시간을 잊게 만드는 것이 그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밤의 피크닉’은 80km의 거리를 걷는 보행제에 참여한 학생들의 성장기지만 성인들의 이야기 못지 않게 내밀하다. 시간적 배경은 보행제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의 하룻밤이지만 그동안 각 인물들의 고민과 화해가 시간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온다의 데뷔작인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는 학원제의 연극 소재인 ‘사요코’라는 여학생의 등장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온다 리쿠 소설의 중요한 테마이자 원천 같은 요소이다. 그는 이 작품들에 실제로 자신의 학창 시절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전근을 많이 다니셔서 다양한 지역에서 여러 학교를 다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게 학교란 참 신비로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경험들이 제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 듯합니다.”

미스터리 작가로서 온다 리쿠의 세계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시작된다.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하나의 모티프에서 출발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이 책에는 그 안에 또 하나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이 등장하여 첫 번째 장에서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다음 장에서는 존재하는 것으로, 세 번째에서는 그것이 쓰이기 전의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서는 책의 작가가 등장하는 등 시종일관 신비로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또 하나는 이 책의 각 장으로부터 새로운 작품들이 파생되어 다른 세계를 확장된다는 것. ‘흑과 다의 환상’과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녘 백합의 뼈’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그 한 작품만으로도 여러 편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농밀한 재미를 선사한다.

한 작품에 안에 새로운 모티프를 담아 다른 작품에서 그것을 기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스타일은 다른 작가들의 경우에도 종종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작품의 결말은 어느 정도 닫힌 상태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온다 리쿠의 세계가 특별한 것은 이 지점이다. 일견 닫힌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전체 관점에서, 혹은 다른 책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며 보충되고 확대되며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이른바 열린 결말로의 무궁무진한 변화인 것이다.

그가 결말을 확실히 맺지 않게 된 것은 역시 ‘읽는 재미’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저도 예전에는 전제와 결말이 확실한 미스터리를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시간이 흐르자 재미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백이나 상상의 여지를 둠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더욱 자극하고 싶다는 생각에 최근에는 그런 열린 결말로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 자신이 ‘쓰는 재미’와 함께 ‘읽는 재미’를 함께 고려한다는 것은 작가 자신도 결국 ‘재미있는 글’을 읽기를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이는 온다 리쿠의 소설관 혹은 작가관과도 맞닿아 있다. “저는 책을 쓰고는 있지만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의식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 연장선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읽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이잖아요.”

결국 작가이자 충실한 독자인 온다 리쿠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어떤 이야기의 재해석에 대한 욕구라는 것.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이미 (무심하게) 겪었을지도 모르는 일상의 일들이 온다 리쿠의 세계를 거치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기묘한 느낌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내한한 그가 들고 온 최신작 ‘어제의 세계’는 그런 온다만의 세계가 집대성된 작품으로 주목받는다. 늘 미스터리나 판타지, SF라는 장르 위에서 자유롭게 놀았던 것처럼 이번 작품도 어떤 장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은 여전하다. 그는 “장르란 편의상의 구분이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 어린 작가들의 경우 점점 더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은 작가 한 사람이 한 장르가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작가이기 이전에 열혈 독서광으로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며 전달할 뿐이라는 온다 리쿠. 출판사에서 붙인 ‘이야기의 연금술사’라는 닉네임이 결코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천상 이야기꾼의 재기가 그의 작품 곳곳에서 세밀하게, 그것도 늘 진화된 모습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