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스님, '바루' 오픈… 불교식 조리법·무공해 식자재 사용'맛있는 절밥' 대중화 나서

‘맛 없는 절밥’으로 폄하되기 일쑤였던 사찰음식이 웰빙 바람을 타고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식생활의 결정판이자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불리는 사찰음식은 어느덧 많은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좀더 가까이하고 싶어하는 식단이 됐다.

그런 사찰음식이 대중 곁으로 한 발작 더 가까이 다가온다.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사업단에서 종로구 조계사 맞은 편 ‘템플 스테이’건물에 대중을 겨냥한 사찰음식 전문점 ‘바루’를 오픈 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음식은 ‘마음의 살까지 빼주는 사찰음식 다이어트’, ‘식탁 위의 명상’ 등의 책과 사찰음식 강좌를 통해 불교의 식문화를 널리 보급해온 대안스님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더욱 관심을 끈다.

바루의 오픈을 앞두고 지리산에서 잠시 내려온 대안스님을 만나 사찰음식에 대해 얘기를 들어본다.

불교음식 웰빙 바람 타고 대중 속으로

템플 스테이 건물 5층에 위치한 ‘바루’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108번의 걸음을 걸어야만 도달할 수 있다. 건축가 송효상 씨는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산사(山寺)로의 여정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뜻에서 이처럼 설계했다. 나무를 이용해 소박하게 꾸며진 레스토랑에 들어서면서 또 한번 설계자가 의도한 ‘여백’과 ‘비움’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먹는다는 것은 자고 싸는 일과 함께 가장 대표인 세속적 욕망의 행위다. 그런데 먹는 행위를 비움이라든가, 명상 같은 개념과 결부 짓는 것은 어쩐지 억지스러워 보인다.

“불교에서는 식사하는 행위 또한 수행의 일환으로 봅니다. 밥을 먹으며 명상을 하고, 불도(佛道)에 이른다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제대로만 먹는다면 모두 먹는 행위 자체를 통해 도(道)에 이를 수 있지요. 사찰음식을 영혼의 음식이란 뜻의 ‘소울 푸드(Soul Food)’라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행해지는 식사행위 ‘발우 공양’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먹는다는 평등의식과 욕심까지도 버리는 비움의 철학을 담고 있다.

대안스님이 가르치는 올바른 공양 법은 ▲음식을 먹을 수 있기까지 수고한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몸에 약이 되는 좋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며 ▲식사 땐 말 없이 명상에 몰두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음식을 먹고 불도를 이루겠다는 기원으로 ▲식탐을 줄이려고 애쓰면서 먹는 것이다.

“이곳에선 음식을 먹고 나도 그리 배부르지 않을 거예요.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올바른 공양이거든요. 대신 손님이 더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더 줍니다.또, 대화를 하며 밥 먹는 것은 서양의 식사 예절이에요. 명상하며 조용조용히 먹는 게 우리의 훌륭한 식사법입니다.”

1-사찰 음식점 '바루'
2-바루 모듬초밥
3-연잎밥
4-바루 산삼
5-바루 기본찬

산야초 초밥 등 다채롭고 감칠맛 나는 사찰음식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나 영혼을 살찌우는 식사법이라 해도 맛이 없거나 실천하기 어렵다면 오히려 외면하게 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가 아닐까.

“처음엔 불교 식사예법에 따라 식사 전에 죽비를 치고, 기도문을 같이 읽고, 식후엔 잘 먹었다는 기도문을 올리려고 했는데, 그만뒀어요. 발우 공양의 정신은 살리되, 일반인들이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그는 또 메뉴를 개발할 때도 불교음식의 세속화는 배제하면서도 대중의 입맛을 염두에 두었다.

불교식 조리법을 쓰고, 육식과 파, 마늘, 생강, 인공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고, 무공해 자연 식자재를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맛이 없는 음식이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제가 개발한 사찰 메뉴는 400가지가 넘지만 여기서는 그 중 대중화할 수 있는 것만 선보입니다.”

산야초 모듬 초밥, 자연송이와 두릅을 넣어 끓인 구수하고 담백한 송이 누룽지 맑은 탕을 비롯해 더덕과 유자소스를 얹은 상큼한 야채샐러드, 능이버섯을 은행가루와 두릅을 넣고 끓인 능이 죽 등이 시식을 위해 초대된 식객들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과일즙과 동치미 국물에 야생채의 줄기를 삶은 물을 섞어 만든 냉면과 버섯과 갖은 야채를 넣어 볶은 버섯 칠보채 등 바루는 정갈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메뉴들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사찰음식 하면 나물이나 된장국 정도만 연상하는 일반인의 상식을 깨고, 이곳에선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불교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중생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듯이, 사찰음식 역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노스님들에게 전수 받은 레시피와 조리법을 현대인에 맞게 변형하고 개발시켜왔다.

어머니를 닮아 요리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는 출가 후 “절이라고 맨 날 똑 같은 음식만 먹으란 법이 어디 있냐”며 불교음식을 변화시켰다.

“일종의 반란이었죠. 절에서는 밥, 국, 나물, 장아찌, 죽 등 늘 단순하고 비슷비슷한 음식만 먹었어요. 하지만 저는 항상 해먹는 수제비도 시금치 등 나물을 갈아 넣은 삼색 수제비로 만들고, 배추와 상추, 감자 같은 흔한 재료를 이용해 그라탕을 만들었어요. 고사리 나물 대신 찜도 만들고요.”

그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불교음식을 맛본 스님들은 크게 환호했다. 이후 대안스님은 꾸준히 새로운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퓨전 메뉴를 개발했다. 그리고 97년부터 불교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요리강좌와 출판 등을 통해 불교의 식문화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해왔다.

그는 바루를 통해 불교 식문화가 더욱 폭넓게 전파되기를 꿈꾸고 있다.

좋은 음식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한 현대인들이 대안스님의 ‘맛있는 소울푸드’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