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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의 갈 길은 천인천색의 다양성!"
[한국초대석] 김동화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
정부 검열·사회적 편견 뚫고 놀라운 성과… 앞으로 가능성 무궁무진





김청환기자 chk@hk.co.kr
사진=조영호기자 voldo@hk.co.kr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만화가 호소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작가에게 공통적인 시대정신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각자의 사상과 가치관을 추구할 때 만화는 오히려 잘될 것이다.”

김동화(59)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의 말이다. 1909년 6월 2일 관재 이도영 화백이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은 ‘삽화’ 를 효시로 100주년을 맞은 한국만화의 갈 길은 오히려 ‘다양성’에 있다는 지론이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각자가 원하고 잘하는 만화를 그릴 때 진흥의 길은 오히려 열린다는 설명이다.

‘꽁지아찌(kkongjiajji)’. 그의 이메일 아이디다. 김 화백의 외모 역시 그의 지론을 닮아 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머리를 길게 길렀고 묶어서 꽁지를 만들었다. 흰머리도 그대로다. 맑은 미소 역시 나이를 무색케 한다. 그의 작품들 역시 항상 달랐다. 1980년대 인기 만화 잡지였던 ‘보물섬’을 넘겨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둘리’와 ‘까치’ 사이에서 동화적인 유럽풍의 캐릭터로 유난히 눈에 띄던 ‘요정 핑크’를 비롯한 김동화의 작품들을 기억할 것이다.

김 화백은 “우리 만화는 본격화한 50여 년의 2/3를 정부 검열과 사회적 편견에 의한 억압에 시달려 양질의 작품을 많이 축적할 수 없었다”며 “그러나 불과 10여 년 동안의 자유스러운 창작환경에서 보인 놀라운 성과를 감안할 때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요약했다.

‘위로’의 시대정신으로 각광 받는 한국만화

지금 각광받는 만화들은 한결같이 ‘위로’의 메시지로 ‘불황’의 시대를 보듬는 ‘시대정신’이 있다는 게 김 화백의 분석이다. 강풀의 ‘순정만화’, 심승현의‘파페포포 메모리즈’, 윤태호의 ‘이끼’, 강도하의 ‘청춘’ 등 최근에 인기를 끄는 작품들은 한결같이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주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IMF 때 ‘(마음을 치유하는) 101가지 이야기’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김 화백은 모든 작가가 시대정신을 좇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 화백은 “이런 유행이나 시대정신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라며 “작가가 저마다의 가치와 정신을 추구할 때 시대정신도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 화백은 “밀레와 피카소는 각자가 주는 감동이 다르며 문제는 거기에 어떤 가치와 정신이 담겨 있는가이다”라며 “고흐가 죽을 때가지 그를 인정해준 것은 동생 테오 밖에 없었음에도 그가 위대한 작가로 남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최근 각광받는 만화의 또 하나의 특징이 ‘무정형의 틀’이라는 점 역시 그의 생각을 뒷받침한다. 이전 작가들에 비해서 이들 작가들은 작품마다 비슷한 서사구조나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때 그때 주제와 이야기에 따라 각자의 개성과 가치관, 마음의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김 화백은 “창작이나 문화의 본질은 상대방과 교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법이나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서로의 생각이나 정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 곧 문화고 만화”라고 말한다.

‘검열’과 ‘편견’속에 피어난 꽃

‘시대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가 열린 지 10여 년 만에 이룩한 성과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인 것이다. 지난 세월 한국만화는 군사정권의 ‘검열’과 사회의 ‘편견’이라는 두 가지 억압에 시달렸다. “머리에 철조망을 두르고 창작을 하던 시절”이다.

전쟁 신에서 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없었다. 심의관은 율리시즈의 ‘외눈박이’ 괴물에 눈이 하나인 것도 문제 삼았다. 김 화백의 작품 중에서는 거실에 누운 대학생 아들이 어머니에게 “등록금 고지서가 나왔는데 어떡하냐”고 묻는 장면이 잘려나갔다.

작가는 한국가정의 자연스러운 ‘거실 문화’에서 상황을 설정했다. 검열 당국은 남녀가 한 방에 있는 장면은 무조건 잘라냈다. ‘풍기문란’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편견’ 역시 꾸준했다. 70~80년대 우리 사회는 만화만 보지 않으면 교육이 저절로 되는 것처럼 떠들어댔다. 신문에 만화가 주제로 나오는 경우는 문화면보다 사회면이 많았다. 만화는 불량 청소년의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김 화백은 “만화를 안 해도 그 시간에 아이들은 다른 일을 한다”며 “만화는 지금도 좋아서 먹는 간식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화백이 1980년대 일간지 장편만화 연재를 최초로 시도한 이유다. 그는 “만화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만화 정책을 만드는 것이 답답했다”며 “만화를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제대로 평가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둘리’, ‘공포의 외인구단’, ‘신의 아들’을 만들어냈다. 김 화백이 동료들을 “전우”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 화백은 “이들은 검열을 통한 억압과 사회의 냉대, 반대, 왕따를 거쳐왔다”며 “동료들에게 종종 ‘그 폭탄 같은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니?’라고 묻기도 한다”고 말한다.

“‘아픔’이라는 경쟁력, ‘천인천색’으로 발휘해야”

“소름이 끼쳤다. 이런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다.”지난 2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만화-한국만화 100년’전 개막식에 장관,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인사가 몰려 성황을 이룬 것을 보고 김 화백은 희열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100주년을 맞은 한국만화의 위상 덕분일 것이다. 우리 만화는 2007년에만 3억 9800만 달러를 수출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전시전에서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이후 등락을 거듭하며 콘텐츠산업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김 화백이 일단의 작가들과 자신의 만화책이 담긴 배낭을 짊어지고 앙굴렘 언덕에 올라 엉성한 전시관에 우리 만화책을 내놓은 지 겨우 6년 만이다. 우리나라 만화시장 규모는 현재 4000억 원대에 이르며 전국 140여 개 대학에 만화관련 학과가 설치돼있다.

“아픔의 역사가 오히려 만화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100년의 성과에 대한 김 화백의 원인 분석이다. 수많은 외침과 동족상잔의 비극, 산업개발 시대 민중의 희생을 비롯한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죽음, 이별, 부상을 비롯한 많은 이야기가 피어났으며 이것이 만화 서사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천인천색’. 새로운 100년을 이끌어나갈 한국만화의 시대정신이다. 그는 실버만화, 장년만화, 주부만화, 해외 현지를 배경으로 한 만화, 현실참여만화 등을 예로 들었다. 개성 있는 작가와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다변화하는 사회와 세계만큼 만화도 더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김 화백은 “만화, 연극, 영화를 막론하고 문화는 어떤 형식이든 보는 사람과 교감을 이루는 것”이라며 “다변화와 세계화로 독자와 교감하는 통로를 넓혀가는 ‘천인천색’의 길이 사회의 다양화와 함께 한국만화의 새로운 100년을 이끌어갈 힘”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화는…


1950년 11월 10일 서울 출생. 1969년 김기백, 권영섭 문하로 만화계 입문. 1975년 <나의 창공> 으로 데뷔.

<내 이름은 신디>(1980), <아카시아>(1983), <요정핑크>(1985/1990년 TV애니메이션), <곤충소년>(1988), <못난이>(1994), <황토빛 이야기>(1996), <기생 이야기>(1998), <빨간 자전거>(2002)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아시아만화대회 최고 창의상(1999), 부천만화대상(2007)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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