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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선으로 세상을 노래하다
[문화혁명가] (37) 싱어송라이터 이장혁
소통보다는 자기만족을 더 중시하는 창작 방식으로 노래 만들어
솔로 데뷔 앨범 <이장혁 vol.1>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오늘밤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아/오늘밤은 그대와도 말하고 싶지 않아/

마음에도 없는 말로 화내긴 싫어/그러니까 오늘밤은 날 그냥 내버려 둬-중략-내게 전화 하지마 난 받지 않을 거야 /누구라도 이런 날이 있다는 걸 알잖아>(오늘밤)

현실이 버티기조차 힘들 때 애써 밝은 척하기보다 한번쯤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긍정의 힘도 좋지만 그마저 버거울 땐 마음 속의 무덤으로 침잠하고 싶어진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좋은 노래를 ‘강추’한다.

싱어송라이터 이장혁(37)의 두 번째 앨범 ‘이장혁 vol.2’은 함부로, 섣불리, 희망에 의존하진 않는다. 그의 노래는 오히려 절망에 가깝다. 우울한 정서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는 외로움이나 우울한 정서에서 굳이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는다.

아예 몸을 던져버리고 만다. 듣다 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치 몽롱한 꿈을 꾼 기분이랄까. 세상은 그의 노래보다 한층 더 밝고 어쩌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른다는 이상한 위안마저 든다. 솔직히 가수에겐 미안한 노릇이지만 이장혁의 노래는 나 혼자만 아는 비밀스런 노래로 남기고 싶어진다.

“제겐 익숙한 이야긴걸요. 1집 앨범 ‘스무살’이란 노래는 혼자만 알고 싶었던 노래라고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어요. 물론 그 노래 덕에 제가 알려지긴 했지만요.(웃음)”

주말 오후 일산 호수공원 인근에서 만난 이장혁은 그의 나이를 아는 필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태어난 지 150일쯤 된 아이(아들 라온이)의 아빠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만큼 그의 외모는 ‘미소년’에 가까웠다.

이장혁의 2집 앨범은 작년 겨울에 나왔다. 그래서 올해는 공연을 통해 팬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편이었다. 특히 공연계의 성수기이기도 한 5월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예정된 5월 말 공연이 두 개가 취소되는 바람에 이 참에 공연을 줄이고 EP(Extended Play) 앨범과 컴필레이션 앨범(Compilation,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한 장에 담은 편집 앨범) 제작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이장혁의 정규앨범은 4년에 한번씩 나오는 걸로 유명하다. 1집은 2003년부터 시작된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의 인디앨범 제작지원사업의 도움을 받느라 시기가 늦춰졌고 2집은 2년 전에 완성했지만 뜻하지 않게 스튜디오 사정이나 건강악화 등의 이유로 4년 만에 내고 말았다. 심지어 2집 수록곡 ‘얼음강’은 만드는 데 1년이나 걸린 곡이라고.

“적어도 EP앨범이라도 1년에 한번은 내야 되지 않겠어요? 앞으로 정규앨범도 2년에 한번은 내고 싶네요.”

이장혁. 그의 이름만 들으면 사실 그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홍대 인디밴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다는 걸 기억해 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인디밴드의 1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장혁은 인디에서조차 이단아에 가까웠다. ‘인디 중의 인디’라고 하면 맞을까. 고등학교 때 함께 밴드활동을 했던 헤비메탈 그룹 ‘날개’ 멤버들과 ‘20대가 가기 전에 밴드를 만들어 앨범을 내보고 인정 받지 못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는 각오로 1996년 아무밴드를 결성한 후 1998년 독립음반사 ‘인디’에서 ‘이.판.을.사’를 발매했지만 아무밴드는 2000년 조용히 해체되고 말았다.

과연 그가 음악활동을 계속할까 위태로워 보였지만 2002년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스무살’이란 노래를 올린 후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발매한 그의 솔로 데뷔 앨범 ‘이장혁 vol.1’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하나로 선정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이장혁’이란 이름을 다시 대중들에게 알린 계기는 얼마 전 MBC ‘음악여행 라라라’에 출연해서다. 물론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장혁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아니 소통을 시도하지 않은 채 자기만의 어법으로 한결 같은 정서를 유지하는 고집스런 싱어송라이터로 더 유명하지만.

“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나요?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든지,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노래도 많잖아요?”

이런 질문에 이장혁은 함부로 그렇게 말해놓고 책임질 수 있겠냐고 묻는 눈빛이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말입니다. 세상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더 가까워요. 그건 인류 역사가 증명을 하고 있죠. 수많은 전쟁과 폭력, 테러 등 뉴스를 보면 이 세상이 과연 치유가 가능한 세상인가 의문이 들어요. 이상적인 사회나 유토피아 등은 모두 헛된 꿈이라 생각해요. 인간 자체가 악한 존재인데 소소한 행복을 꿈꾼다 한들 그런 작은 것들이 절망적인 상황을 뒤집어 버릴 수 있을까요”

이장혁은 신념에 가득 찬 작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 그의 세계관을 요약하면 인생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생각의 토양 자체가 어둡기 때문에 우울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 이장혁이 노래를 만들 때 첫 번째 전제조건은 바로 이기적일 만큼 자기를 위한 곡이어야 한다.

소통은 그 다음 문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때야말로 억지스럽지 않고 가장 자연스러운 좋은 곡이 만들어진단다.

“노래로 무언가 바꿀 생각을 한다는 건 우스운 거죠. 그렇게 되면 곡이 자연스럽지도 않거든요.” 그는 1%의 희망을 안고 세상과 치열하게 싸우기보다 오히려 냉소와 절망을 선택했다. 그건 어쩌면 인디 뮤지션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그가 터득해야만 했던 생존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그의 생활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그런 정서는 어디까지나 내면의식일 뿐이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지역신문사의 편집기자다.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생활과 음악 사이에서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만약 어느 한 곳에 올인했다면 그는 음악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생활고 때문이다.

이장혁의 노래 중 1집 앨범 수록곡 ‘스무살’이나 ‘영등포’는 다분히 자전적인 성향이 매주 짙은 노래다. 그가 청춘을 얼마나 혹독하게 또한 상처로 가득한 삶을 살았는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2집 앨범에서 그는 저만치 물러가 있고 또 다른 화자를 등장시켰다.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의 화자는 실제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할머니가 화자고 ‘얼음강’은 강을 사이에 두고 1년에 한번밖에 만날 수 없는 용기 없는 연인들에게 대한 노래다.

“밴드와 함께 무대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지만 저 혼자 기타를 들고 조그마한 카페에서 20명 안팎의 손님 앞에서 노래 부르는 ‘다방 투어’를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해요. 조용한 곳에서 듣는 제 목소리를 좋아하거든요.”(웃음)

대중을 의식한 음악이 아니라 뮤지션 스스로 좋아서 만드는 음악, 노래하는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아 입장료나 출연료를 받지 않고 다니는 ‘다방 투어’를 기획한 이장혁은 내면에 충실한 솔직한 뮤지션이다.

“제가 정말 멋진 음악을 만들었다 해도 그 노래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탓하진 않아요. 그건 음악을 이해 못하는 그들의 책임도 있지만 전적으로 뮤지션인 제 책임이기도 하니까요. 그걸 감당하는 건 저의 임무이자 또 다른 행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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