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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개척자, 또 다른 실험을 꿈꾸다
[문화혁명가] (38) 만화가 강도하
'위대한 캣츠비'로 스타덤 올랐지만 안정 거부하고 끝없는 탐구
"스타 만화가로서 '권력' 갖는 건 창작에 '독'이 돼 가장 경계해"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내 인생을 ‘스캔’하시려는 겁니까?”

날이 서 있다. 부리부리한 눈에서 레이저 광선처럼 빛이 난다. 작품 속 촌철살인 같은 말들의 근원이 혹시 저 눈빛 아닐까.

“제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개가 현실 속 인물을 인터뷰해서 탄생한 캐릭터예요. 신뢰를 쌓은 다음 타인의 인생을 스캔받듯 여러 질문을 통해 상대를 알아가죠. 그 다음 난상토론까지 이어져요. 3단계 과정이 있어야만 진정한 인터뷰 아닐까요? 언젠가 저도 그 쪽 인생을 스캔할 지도 모릅니다.”(웃음)

강도하(40)라는 이름을 발음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숱한 수식어들이 있다. 웹툰(web cartoon) 1세대로 서사 웹툰의 새 장을 연 작가, 실험 만화의 기수, ‘강도하’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청춘 3부작 중 1부 ‘위대한 캣츠비’(‘위대한 개츠비’에서 제목을 차용)부터 최근 연재중인 만화 ‘세브리깡’까지.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뭔지 아세요? 작가의 네임 밸류가 높아져서 권력이 생기는 거예요. 마치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포장되는 것에 스스로 마취를 당한 듯 익숙해지는 순간을 경계하지요. 결국 창작자에게 독이 되는 일이거든요.”

‘스타 만화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치고 꽤 역설적으로 들린다. 강도하는 “저는 둥글둥글하게 사느니 모나게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작가다. 그 말 한마디로 그의 만화인생 20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

“1년 동안 물 속에 있는 느낌으로 산 적이 있어요. 물 속에서 눈을 떠본 적 있나요? 온몸이 습기로 가득 차 있고 발을 땅에 디딘다는 느낌 없이 살았죠. 그렇게 살 때야말로 3년치 만화 이야기가 탄생하더라고요.”

자신을 코너로 몰아가며 ‘안정된 순간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진 작가. 작품 속에서조차 고착화된 이미지를 몹시도 꺼려하는 그는 강박에 가까우리만치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며 자신의 인생을 ‘실험’하며 사는 만화가 같았다.

강도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찍이 만화가가 되었다. 소위 만화 천재 중 하나인 셈이다. 집이 가난해 또래 친구들처럼 일본만화나 애니메이션 잡지를 즐겨보지 못했던 그에게 국내 만화잡지 ‘보물섬’은 유일한 낙이었다. 표지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모사하며 스스로 익힌 습작만화 ‘뛰어라! 빠가사리’로 보물섬에 덜컥! 데뷔한 그다.

하지만 본지에 실린 공식 데뷔작은 ‘아버지와 아들’이란 작품이다. 습작 시절 이현세, 이두호, 김수정, 허영만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선배들의 만화를 따라 그리던 그는 보물섬을 통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작품이 실리는 ‘살 떨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저는 데뷔 후 만화를 공부한 셈이에요. 매 순간이 실험이었죠. 그렇게 10년 정도 실험을 하니 네임 밸류가 생기고 저 또한 작가로서 특정한 권력을 지니게 된다는 걸 느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가지 않고 2년 동안 만화가로 살던 그는 ‘둘리’로 유명한 만화가 김수정 선생의 ‘기본기를 익히고 부족한 것을 채워라’라는 조언대로 대학 진학을 결심한다. 지루한 입시미술을 공부한 후 동국대학교 서양화과 조소 전공으로 입학하지만 그는 학과 공부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도 아웃사이더를 자청했다. 미대 수업뿐 아니라 철학이나 연극,영화 수업을 듣거나 심지어 가정학과에서 요리를 배우는 등 만화에 필요한 것이라면 모든 수업을 청강했다.

“미학서적을 탐독하고 퍼포먼스, 전시, 연극, 영상, 설치미술 등을 통해 미술과 만화 장르의 크로스오버 실험을 거듭했죠. 저에겐 그 모든 작업이 만화였거든요.”



1-세브리깡의 블랙봉수아
2-위대한 캣츠비
3-큐브릭
4-로맨스 킬러


유명한 인디밴드 ‘노브레인’이나 ‘크라잉넛’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고 ‘모던 코믹스 봄’이란 잡지를 내는 등 만화란 장르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다 해본 그는 2001년 ‘만화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도입한 만화웹진 ‘악진’을 창간했다. 웹을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은 ‘인큐베이팅’이란 단어를 많이 쓰지만 당시로선 무엇이 모자라서 그런 단어를 쓰냐고 반대가 많았죠. 하지만 그냥 밀어붙였어요. 아마 ‘인큐베이팅’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이 ‘악진’일 걸요.(웃음)”

‘악진’을 통해 다양한 감성을 지닌 만화가들을 만나고 또한 네티즌이란 새로운 형식의 독자를 만나는 설레는 경험을 한 그는 ‘악진’의 이름이 알려지고 성과를 인정받았을 때 운영을 중단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보다 안정된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운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강도하는 2004년 포털사이트에 ‘위대한 캣츠비’를 연재하면서 본명 ‘강성수’를 버리고 ‘강도하’로 다시 태어났다. 만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인디’나 ‘실험만화’ 등으로 강성수를 기억하는 마니아들에게 그의 행동은 일종의 ‘배신’일 수도 있었다.

“저는 사랑도 하고 싶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는 작가예요. 분노와 질투, 슬픔이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싶은데 사람들은 저에게 ‘분노’만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제 안의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웹에 맞는 연출방식과 서사웹툰의 미학이 무언지 보여주는 웹툰만화가 강도하의 탄생은 혁명과도 같았다. 데뷔 15년차에 그는 웹툰만화를 개척한 무서운 슈퍼신인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위대한 캣츠비’는 만화뿐 아니라 드라마나 뮤지컬로 제작되는 등 강도하를일약 스타덤으로 올려놓은 작품이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위대한 캣츠비’를 3부작으로 완성해 ‘스타 만화가’로서 입지를 굳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도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로맨스 킬러’, ‘큐브릭’이란 다른 작품을 완성해 청춘 3부작이라 이름을 붙인 그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괴짜에 더 가까웠다.

“저 또한 웹이란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사병인데 먼저 경험했다는 ‘죄’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줘야 할 때가 종종 있어요. 온라인을 통해 너무 쉽게 데뷔하는 작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과 글만 좋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또한 당대성에 대한 고민이나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만화를 이루는 수만 가지 요소를 인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저 역시 그 싸움에서 피할 수는 없습니다.”

강도하는 독하고 씁쓸한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 가짜 다큐)와 수준 있는 성인을 위한 ‘본격 에로만화’ 3부작을 기획 중이기도 하다. 이미 스토리를 완성한 상태다.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지만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눈빛이 반짝이고 가슴이 떨리는 걸 숨길 수 없다는 그.

“지금 계획으론 쉰 살까지만 만화를 그리려고요. 만화로 맘껏 표현하고 싶은 비주얼이 있다면 1년에 한 작품만 발표할 계획이에요.”

이미 불혹을 지난 중년이지만 ‘불혹부터 흔들리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강도하는 어쩌면 지금 ‘중년을 코스프레(컴퓨터 게임이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로 분장하여 즐기는 일)하는’ 영원한 청년작가일지도 모른다. 웹이라는 신천지에서 만화를 개척해왔으며 여전히 신대륙 탐험을 게을리하지 않는 웹툰만화가 강도하를 지켜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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