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박인자 한국발레협회장 당선자국립발레단·발레엑스포·성남국제무용제 등 경험 바탕 내년부터 임기 시작

클래식 예술이 오랫동안 ‘귀족예술’로서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클래식 예술 자신이 그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래식 예술은 실제로 오랫동안 귀족예술이었다. 발레나 오페라는 현대에 들어서도 유서깊은 이미지와 워낙 고가의 티켓 덕분에 상류계층만의 향유물로 여겨져왔다. 티켓이 팔리면, 굳이 서민 관객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다. 공연자도 관객도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상황의 변동으로 고정관객들이 떨어져나갈 때 ‘귀족예술’은 당황한다. 이제 귀족예술은 더 이상 귀족적이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관객들을 찾아나선다. 이제까지 외면해왔던 관객, 바로 서민 혹은 대중이라는 관객이다.

국립발레단이 ‘론칭’한 이래 많은 순수예술 단체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는 ‘해설이 있는 발레’는 이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발레에 대한 선입견과 갈증이 해소되면서 이 프로그램은 실제로 ‘발레 대중화‘의 성공적인 사례가 됨과 동시에 발레 관객층도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두 해 전 국립발레단 홈페이지에 한 공군 소령이 ‘군부대 발레 공연’을 요청했던 ‘사건’은 여전히 고자세적이었던 발레가 또 한 번 틀을 깰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군대와 발레’라니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그러나 당시 국립발레단을 이끌던 박인자 숙명여대 교수는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군대로 직접 찾아가는 공연을 감행했다. 이것은 발레계를 넘어 클래식 예술계에 경종을 울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독서를 제외하곤 오락실, 당구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병영 내 문화생활의 전부였던 군인들에게 발레 공연은 낯설지만 생산적인 문화적 체험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발레 대중화, 계층과 지역 넘어 계속해야

국립발레단장직을 완수하고 학교로 돌아온 박 교수는 그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동안 강의에 임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그는 다시 발레계의 ‘부름’을 받는다. 한국발레협회가 발레 대중화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2008 발레 엑스포’를 기획해 박 교수에게 예술감독을 맡긴 것. ‘발레 포 올(Ballet for All)’을 기치로 내세웠던 이 행사는 공연은 물론 세미나 개최, 발레용품 전시 등을 통해 발레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었다.

발레 엑스포가 끝나자 이번에는 성남국제무용제가 박 교수를 기다렸다. 성남문화재단과 무용문화포럼이 개최하는 이 행사에서 그는 조직위원장과 예술감독을 맡게 됐다. 게다가 이 행사는 2006년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이듬해 2회를 치른 뒤 지난해에는 불황 때문에 행사를 치르지 못한 터라 박 교수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박 교수는 “해외의 좋은 공연 단체를 섭외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히며 “2009년부터는 격년으로 개최하는 대신, 보다 내용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우선 올해 성남국제무용제의 개최 시기를 기존의 9~10월에서 4월로 앞당겨 다른 무용축제와 차별화하면서 무용축제의 막을 올리는 무대로 다시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작품의 수준을 일반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양질을 갖춘 공연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발레 대중화에 대한 그만의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좋은 공연을 보여줘도 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특히 발레의 경우는 그나마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현대무용의 경우는 관객들이 여전히 어렵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보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작품들로 다수 선정해 구성했습니다.”

박 교수는 올해 성남국제무용제를 통해 발레 대중화 프로그램의 틈새시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 프로그램에 ‘어린이를 위한 발레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야외무대(춤의 광장)에서 했었는데 어린이들이 집중하면서 관심있게 보는 것에 놀랐어요. 앞으로는 이런 잠재적인 관객들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발레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가야 하는데, 당분간 이게 제 과제가 될 듯하네요.”

현재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만 형성되어 있는 발레인구의 편중 문제도 그가 고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또 찾아가는 공연과 지역행사를 잇따라 경험하며 그가 내린 결론은 역시 좋은 콘텐츠의 확보다. “전국적으로 문예회관 등 공연장이 많이 생겨났지만, 공간보다 콘텐츠 개발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전국 시, 도, 지자체가 문예회관과 연계해서 민간발레단이 극장 상주단체가 된다면 발레인구도 자연적으로 많아지고 더불어 좋은 공연으로 관객과 소통한다면 지역 무용계도 활성화가 되지 않을까요.”

세계 속의 한국발레, 약점 보완해 더 높이 뛰자

국립발레단, 발레엑스포, 성남국제무용제 등 대형 발레단체나 행사를 맡으면서 그는 자연스레 한국발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껴왔다. 특히 국제적인 관점에서 한국발레의 위상과 그 변화는 그에게 스스로 한국발레에 몸담고 있다는 자긍심과 보람을 부여해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발레의 수준은 감히 세계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국립발레단 단장 시절 폴란드, 러시아 등 해외공연을 할 때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의 춤인 발레를 동양의 조그만 나라, 한국의 무용수들이 하고 있는 것에 놀라고 그 실력에 또 한 번 감탄하더라구요."

이제 성남국제무용제와 같은 국제행사들이 국내에서 치러지며, 외국인 무용수들이 한국발레의 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볼 때 그는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말한다. "재능있는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면서 한국발레를 희망적으로 만들고 있고, 그런 스타들을 보기 위해 오는 관객들도 많이 확산되고 있거든요. 이제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무용수들을 찾아서 보는 마니아 층도 매우 두터워진 것 같아요."

30여 년 동안의 교수 경력과 큰 조직을 이끌어온 박 교수의 경영자로서의 노하우는 발레계로 하여금 그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반증하듯, 얼마 전 박 교수는 제14대 한국발레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박 교수는 아직 임기를 남겨둔 최성이 현 회장에 이어 내년부터 발레협회를 이끌게 된다.

어쩌면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지만, 박 교수는 그간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부이사장, 외교통상부 공연예술 자문위원, 한국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활동 등을 통해 공연 외적 환경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민을 해오며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 가령 무대에 오르지 못하거나 부상으로 일찍 내려오게 되는 무용수들의 경우가 있다.

이런 ‘잉여 인원‘에 대한 대책 역시 발레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단기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털어놓는다. "한국발레의 발전속도와 수준에 비해 직업 창출은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 대책으로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무용수들을 위해 직업전환 재교육프로그램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차원의 예술교육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교육프로그램 제공과 전문성을 갖춘 발레 교육자 양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발레의 ‘편식‘도 남겨진 숙제다. 한국에서 ‘발레‘라고 하면 아직도 로맨틱 발레나 클래식 발레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도 그런 공연들만 이루어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공연되고 있고, 특히 유럽은 컨템포러리 발레가 더 우세할 정도다.

이에 반해 아직 우리나라는 클래식 발레에만 치우쳐 있는 실정. 박 교수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컨템포러리 발레의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관객들은 클래식 발레를 선호하기 때문에 컨템포러리 발레를 마케팅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발레, 일이자 취미, 그리고 운명

강의, 무용제, 기타 여러 단체에서의 보직 등 바쁜 일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박 교수는 학기를 마치자마자 또 다시 해외출장길에 오른다. 언뜻 보면 일 중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그의 천성에서 우러나온 일종의 조건반사와 같은 것이다. "성격 자체가 일을 한 번 맡으면 죽기살기로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있지만,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해서인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게 에너지가 나와요(웃음). 무엇보다 항상 일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해야죠."

통섭의 시대, 발레도 이제 발레라는 우물 안에서만 머물면 발전하기 어렵다. 무용가로서건 경영자로서건 다른 장르의 예술을 섭렵하는 것도 중요한 시대. 그는 어떤 장르에서 영감을 얻을까.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에요. 작품 안무를 많이 할 때는 생활 자체가 무용이어서 그런 걸 봐도 창작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제 작품 중에는 ‘피아노‘, ‘홍등‘, ‘남몰래 흐르는 눈물‘, ‘나비부인‘ 등 영화나 오페라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원래 피아노를 좋아해 5년간 피아노를 전공하다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발레를 보고 전공 전환을 했다는 박인자 교수. "과연 발레를 안 했으면 뭐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 웃어요." 여느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역시 발레란 운명 같은 뭔가처럼 느껴진다.

박인자 당선자는..



서울예술고등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 이학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제3회 성남국제무용제 조직위원장 겸 예술감독, 국립 중앙박물관문화재단 이사, 의정부예술의전당 이사, 2009 부산국제무용제 운영위원, 충무로 국제영화제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제14대 한국발레협회 회장 당선(2010년 취임)됐다.

2008 발레엑스포서울 예술감독, 외교통상부 공연예술 자문위원, 한국 국제교류재단 자문위원, 국립발레단 예술감독(2005~2007), 예술의 전당 이사(2007)를 역임한 바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