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 무용단 김윤규 예술감독'십계' 소재 살인에 대한 주제 업그레이드된 '데칼로그' 6년만에 재공연

한 떼의 무용수들이 나와 무질서하게 어우러진다. 거기에는 주연도 조연도 없다. 그들은 종종 의미를 알 수 없는 대사와 고함을 지른다. 줄거리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만약 우리가 익히 판단할 수 있는 전통춤이나 발레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움직임과 나름의 메시지나 형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현대춤이다. 이 얼마나 광범위한 정의란 말인가. 하지만 이러한 방대한 영역과 자유로움 속에서 무용가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모든 춤 작업을 현대춤이라고 일컫는다.

트러스트 무용단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김윤규 안무가는 현대춤을 추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진화된 형태를 추구하는 무용가다. 그의 작품에선 기존의 춤 무대에서 볼 수 없는 장면과 분위기가 유독 많다. 특히 그의 춤은 연극적 혹은 총체극 형식이라는 평가를 자주 듣는다.

생동감있는 표정 연기와 무용수들의 대사가 그런 평가의 배경이 된다. “저는 춤이라는 용어 자체를 확장하고 싶어요. 춤은 당연히 연기적인 면이 들어가고, 음악도 있어야 하고,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이 악기가 되어야 하거든요.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대사도 종종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춤과 연극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는 거죠.”

그런 그가 7월 1일부터 ‘십계명’을 모티프로 한 <데칼로그 DEKALOG>로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리스어로 ‘십계명’이라는 뜻인 <데칼로그>는 2003년 초연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우수레퍼토리로 선정된 작품. 2004년 서울에서의 앵콜 공연과 부산, 거제 지역을 순회하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데칼로그>는 기독교의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를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10개의 계율 중 ‘살인하지 말라’였을까. 그가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001년의 9.11테러 사건이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문득 십계명을 떠올렸어요.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지금, 십계명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인류의 첫 번째 살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칼로그>는 살인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 성경을 재해석한다. 여기서의 살인은 육체적인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살인’에 대한 고찰이다. 성경은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행위가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고 소개하지만 <데칼로그>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을 첫 번째 살인으로 해석했다.

“당시의 ‘관계’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유일했는데, 그것이 깨져버린 것이거든요. 즉 관계의 단절이 일어난 겁니다. 결국 이 작품은 ‘죽음’이란 신과의 단절, 사회와의 단절과 소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빌어 살인을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과 통찰이다. 배려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행사되는 모든 폭력과 그로 인한 죽음(단절)이 비판의 대상이다. 김 안무가는 <데칼로그>를 통해 이런 ‘관계’, 즉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강자에게 장난이지만 약자에게는 그게 폭력일 수 있거든요.” 그는 전쟁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작은 전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파한다. “십계가 인간에게 주어진 이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너희는 그런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결국 <데칼로그>가 주는 메시지는 십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할 때라는 것이다.

2003년에 초연을 한 후 김 안무가는 이 작품을 한 번 하고 끝내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응도 좋았다. 그때 ‘십계’ 연작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작품들이 <해당화>(2006)와 <올리브나무>(2007, 2008)이다. 이 연작들은 현재 트러스트 무용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6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데칼로그>는 초연작을 대폭 수정해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관객을 만난다. 공연 외적으로는 소극장 공연에서 대극장 공연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김 안무가는 이를 위해 장면과 장면 간의 시간을 조정하고 한 장면을 두세 번 반복하면서 강조점들을 부각시켰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게 구성이 바뀌었다. 하나는 그냥 드라마 보듯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장면별로 강조점을 두면서 해석의 과정에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다.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음악에 있다. 초연 당시에는 국악기와 MR(녹음된 음악)이 사용됐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현대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 김윤규 안무가에게 라이브 음악의 사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녹음된 음악에 맞춘 춤은 관객의 예측을 가능케 한다.

일정한 패턴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브 음악과 어우러지는 춤은 그런 관객의 예측가능한 패턴을 깨버린다. 관객의 기대는 시시각각 무너진다. “한 마디로 춤의 추상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움직임에도 일정한 음율이 있는데, 움직임이 그 규칙을 무시하고 갑자기 돌출한다면 관객들은 혼란스러울 겁니다. 바로 이런 의외성이 주의를 더욱 환기시키게 됩니다.” 그의 춤에 대한 철학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시대에 대한 고민과 춤에 대한 고민을 한 작품 안에 담아온 그의 예술관은 곧 시대정신의 반영으로 정리되고 있다. “어떤 춤을 추고 어디에서 춤을 추는가, 이런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춤추듯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춤에는 율동, 리듬, 강약, 고저, 깊이, 넓이 등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잖아요.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구요. 그러니 삶도 춤처럼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십계’라는 소재와 살인에 대한 주제가 관객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의외로 “어렵게 생각하고 오시면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쉽게 생각하고 오면 기대 수준이 낮아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겁을 잔뜩 먹고 오면, 명쾌하게 얻어갈 거라고 단언한다.

“공연장에 오는 이유가 고통스러워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작품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재미도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세요. 왜냐하면 그런 게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니까요.”

김윤규 예술감독은…


부산대학교 무용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예술전문사(MFA)를 졸업하고 현재 부산대학교 미학전공 박사 과정 중이다.

2000년 일본 사이타마 국제 창작 무용콩쿠르 우수상, 2004년 제1회 올해의 예술상 무용부문 최우수상, 2005, 2004년 춤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춤 작업 외에도 극단 물리 연극 <맹목>, 연희단거리패 연극 <아름다운 남자>, 뮤지컬 <이순신> 등에서 안무를 맡아 춤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