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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의 진정한 단맛은 행복감 아닐까요"
[문화혁명가] (40) 초콜리티어 고영주
국내 1세대 초콜리티어로 올바른 초콜릿 문화 전파에 노력 기울여
벨기에식 정통 수제초콜릿 전문카페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도 열성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초콜릿 하나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벨기에 정통 수제 초콜릿 전문카페 ‘카카오봄(CACAOBOOM, 초콜릿나무라는 뜻)의 대표 고영주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초콜릿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호 식품이죠. 제가 초콜릿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여유와 열린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이었어요. 제 초콜릿으로 기적처럼 사랑이 이뤄지고 일이 성사됐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들었지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

‘초콜릿 하나로 이어준 인연’을 강조하는 고 씨는 줄리엣 비노쉬 주연 영화 <초콜렛>의 여주인공 비엔나를 닮아 있었다. 초콜릿이 지닌 마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속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초콜리티어(chocolatier: 초콜릿을 만들고 초콜릿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 비엔나의 이야기는 비단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판타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심신이 지쳤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 우린 단맛의 유혹에 쉽게 사로잡힌다. 달콤하고 또한 쌉싸름한 한입 크기 초콜릿을 입안에 넣는 순간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충만함은 세상사 모든 근심을 잊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하지만 단맛을 실컷 즐기고 난 다음 나른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죄책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단 것은 살이 찌고 몸에 안 좋다’는 단순한 편견 때문일까. 그 궁금증은 고 씨가 최근 펴낸 <초콜릿 학교>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초콜릿에 대한 기초 상식과 에피소드, 레시피, 초콜릿 문화가 발전한 국가의 여행 가이드까지 ‘초콜릿의 모든 것’이 책 안에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다.

“100% 카카오 버터만을 사용한 진짜 초콜릿은 영양학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았어요. 유럽에서는 몸이 허약하거나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들에게 약국에서 초콜릿을 처방해줄 정도인걸요. 초콜릿에 대한 오해는 설탕이나 기타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이미테이션 초콜릿 때문에 생긴 겁니다.”

고영주 씨는 우리나라 초콜리티어 1세대다. 벨기에에서 한국 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그녀는 낯선 땅에서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서른 즈음 무섭게 찾아온 ‘제2의 사춘기’란 우울의 늪에서 그녀를 구해준 건 다름아닌 초콜릿이었다. 초콜릿과 사랑에 빠진 고 씨는 자연스레 방황을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좋아하는 요리를 배울 요량으로 제과제빵에 관심을 가졌죠. 하지만 초콜릿의 왕국이라 할 수 있는 벨기에에서 자연스레 초콜릿 문화에 빠져들었어요. 그들에게 초콜릿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며 동시에 날마다 즐기는 일상의 호사였거든요. 이방인인 저에겐 그런 문화가 여유롭고 아름답게 보였죠. 한국에 돌아가면 초콜릿 문화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 먹었고요.”

고 씨는 수제초콜릿 전문학교에서 초콜릿 전문과정과 아이스크림 과정을 수료한 후 한국에 돌아와 ‘초콜리티어’란 낯선 직업에 도전한다. 2001년 귀국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전국의 수제초콜릿 숍과 특급호텔 베이커리를 샅샅이 뒤졌다. 그때만 해도 ‘초콜리티어’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 수제초콜릿 숍 또한 전국에 서너 군데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국내에 초콜릿 전문가를 양성하는 시험이 아직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럴수록 고 씨는 벨기에에서 배운 초콜릿 기술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고 문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초콜리티어란 직업을 받아줄 곳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초콜리티어 1호’로 공방을 차려 미개척 분야에 도전하자는 마음도 있었지만 당시 가진 건 ‘기술’뿐이었다.

창작의 목마름이 간절할 때쯤 그녀에게 초콜릿을 통한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부산의 한 호텔에 벨기에 출신 총지배인이 막 부임한 것이다. 그녀는 벨기에식 프랄린(Praline, 초콜릿의 작은 보석이라 불리는 한입 크기의 초콜릿으로 크림, 버터, 견과류, 과일 등 다양한 재료의 반죽을 초콜릿으로 얇게 씌우는 형식의 초콜릿)을 만들어 총지배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국에서 아무런 사회생활 경력도 없는 서른이 넘은 아줌마가 특급호텔 베이커리 초콜릿 제조실에 기적적으로 들어가게 된 순간이었죠. 제가 가진 건 초콜릿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기술뿐이었어요. 주부에서 베이커리 조직원으로 다시 태어나느라 쓴맛도 톡톡히 보았고요.(웃음)”

경력이 20년쯤 된 제과장이나 할 수 있는 초콜릿 디저트 만드는 일이 고 씨의 주업무였다. 그녀의 초콜릿은 일본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좋은 재료로 정성 들여 만든 그녀의 작품을 초콜릿 문화가 발달한 일본인들이 먼저 알아본 셈이다. 입소문은 금세 났다. 수시로 단체주문이 들어와 초콜릿이 동나버리기가 일쑤였다. 몸은 고단했지만 맛있게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고 씨에겐 에너지가 되곤 했다.

국내에 초콜리티어란 직업이 소개되면서 그녀는 방송이나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직 신참내기인 그녀가 유명세를 타자 조직의 적지 않은 질투도 받았다. 고 씨는 1년 반 동안 호텔에서 근무하고 2004년에 초콜릿으로 제조업 허가를 받아 자신만의 브랜드를 내건 개인공방을 차려 독립했다. 그 2년 후 수제초콜릿 전문카페를 연 것이다.

“호텔에 오는 돈 많은 사람들만을 위해 초콜릿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에게 있는 ‘선생’ 기질 때문인지 초콜릿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죠. 무엇보다 초콜릿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고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싶었다고 할까요.”

때마침 작은 기적도 일어났다. 2006년 카카오 열풍이 불면서 수제초콜릿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이다. 그녀의 개인 공방에 수제초콜릿을 배우러 오는 수강생들에게 그녀가 가르치는 건 기술뿐만이 아니었다.

“수강생들에게 장인정신까지는 필요 없다, 다만 좋은 방법과 정신을 가지고 스스로 가치를 즐겨야 진정한 초콜리티어가 되는 거라 늘 강조하죠. 기술만 배운다면 금세 한계에 부딪치게 돼요. 내용이 없으니 자꾸 포장만 하게 되거든요. 손으로 만들었다고 다 수제초콜릿은 아니랍니다.”

초콜릿 하나를 개발하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최소 50번은 넘게 실험한다는 그녀. 세상에 나오지 못한 초콜릿을 자신의 뱃속에 ‘잉태’시키는 이유는 완벽한 맛이 아니면 남 주기도 싫기 때문이란다. 그런 고 씨에게 디저트 전문카페를 만들자는 기업의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 뿌리칠 수 있었던 건 자본의 유혹보다 초콜릿의 달콤한 유혹이 더 좋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자는 고집스러움이 오늘의 고 씨를 만들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장인 아닐까.

“제 바람이라면 인생의 단맛을 즐길 만한 여유가 없었던 한국 사람들이 서서히 단맛의 미학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초콜릿 한 알의 행복’이 주는 기쁨을 차와 함께 즐기며 삶의 여유를 갖길 바라는 거죠. 사소한 것이 변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일상이 변해야 문화가 달라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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