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24) 안무가 이인수힙합 뿌리 둔 현대무용 관객 시선 잡아… 세계 무대 진출 구슬땀

젊은 예술가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나’와 ‘세상’이다.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다. 20대를 넘기며 어떤 이는 ‘나’로 더욱 파고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세상’으로의 관심을 더욱 발산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20대란, 이후 어떤 예술을 할 것인가가 판가름나는 중요한 시기다.

요즈음 가장 주목받는 현대무용가 이인수도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원래 무대 위가 아닌 길거리에서 춤을 시작한 이인수의 시작은 힙합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관심이 많을 나이, 10대의 이인수에게 춤이란 자기 표현이었다. “힙합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자체만으로 좋았거든요(웃음).”

지금은 비보이 공연도 단순한 기교의 장이 아니라 특정한 메시지나 이미지를 표현할 정도로 진화했지만, 당시의 힙합은 단지 멋있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열심히 길거리를 누비고 박수를 받으며 이인수의 춤은 시작됐다.

힙합 세계에서 끝없이 자기 안으로 매진하던 이인수가 현대무용으로 춤 세계를 확장하게 된 것은 학교에 ‘힙합 전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선으로 진학한 예고에서 그는 현대무용을 통해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이인수의 현대무용은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하고 추상적인 움직임과 메시지 대신, 그가 뿌리를 둔 힙합의 대중성과 맞닿아 있다.

소재는 일상적이고 움직임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의 춤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고독한 나와 우리, 소통 과정에서 왜곡되고 단절되는 관계에의 공감. 그의 춤이 관객의 시선을 강렬하게 끄는 이유다.

얼마 전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젊은 안무가 창작공연의 최우수상 수상작인 도 이 같은 그의 춤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대로 번역하면 ‘who and I’는 ‘누구와 나’라고 할 수 있지만 ‘나와 나’로도 해석가능합니다. ‘who’는 남들이 보는 ‘나’일 수도 있는 거죠. 실제의 본질적 모습과 타인으로부터 다르게 판단되는 상황들을 움직임으로 이미지화한 작품입니다.”

이처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춤 세계는 평단에서도 반응이 좋다. 2003년부터 서울공연예술제와 전국무용제에서 잇따라 수상하고, 제2회 CJ 영 페스티벌에서 우수작품상을, 지난해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바뇰레)에서 그랑프리상을 받으며 이인수는 명실공히 가장 유망한 안무가로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성과가 자기의 역량보다는 협업의 성과라고 겸양한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무용수들과 작업한 결과인 것 같아요. 안무자가 무용수를 신뢰하고 무용수가 안무자를 믿고 따르는 것이 저의 창작 작업에 가장 우선이면서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이 잘 되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대학 재학 중 세계 최고의 안무가 중 하나로 꼽히는 에미오 그레코에 발탁되기도 했던 그는 이제 보다 커진 춤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세계로 진출한다. 8월엔 미국의 아웃 오브 도어 페스티벌에 참가해 링컨 센터에서 안무작 <헬프(Help)>를 공연하고, 11월엔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수잔 데랄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다.

내가 보는 나에서 남이 보는 나로, 그리고 세상 속에서의 나로. 세계인을 대상으로 보여질 그의 춤 세계는 이 순간에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과연 몇년 후의 그의 관심사는 무엇이 될까. 그리고 그가 추는 춤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 문득 그의 30대가 궁금해진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