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차돌 시인] 뇌성마비 딛고 첫번째 시집 출간… 대중가요 작사가도 꿈꿔

“당신의 시 가운데 ‘사랑의 행복’은 아플 때도 사랑이 모든 걸 구원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런가?”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지난달 22일 시집 <어느 화성인의 사랑 이야기>를 펴낸 노차돌(38) 시인과 나눈 이메일 상의 질문과 대답이다. 그는 사랑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믿음을 품고 있을까? 안경을 끼고 흰색 티셔츠를 입은 채 만면에 띄우는 천진한 미소로만 다 짐작하기 어렵다.

노 시인은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혀를 이용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시를 쓴다. 이번 시집에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비롯한 99편의 시가 실렸다. 노 씨는 2007년 장애인문학지에 정식 등단한 시인이며 <어느 화성인의 사랑 이야기>는 그가 처음으로 펴낸 시집이다.

두 차례에 걸쳐 이메일로 노차돌 시인을 인터뷰했다. 시집 출간 이후 첫번째 지면 인터뷰다. 그는 새벽에 질문을 보내면 오전 중에 답을 보내며 휴대전화 문자로 이를 알려왔다. 그는 안면부 외에는 몸을 쓰지 못한다. 강원 고성군 바닷가 마을의 조그만 3층 양옥집의 2층에 있는 방안에서 누워서 지낸다. 어머니 이남옥(72)씨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키고 컴퓨터 자판 앞에 베개를 벤 채 앉아 혀로 자판을 누른다. 보통 6시면 잠에서 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인은 늘 사랑을 말한다. 시의 주제 대부분은 사랑이다. <어느 화성인의 사랑 이야기> 역시 사랑을 주제로 한 시가 거의 전부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뭘까.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이자 가장 아픈 선물”이라며 “누구나 사랑을 많이 하면 세상이 아마 지금보단 깨끗해질 거예요”라고 썼다.

지독한 사랑이 키운 시

<어느 화성인의 사랑이야기>는 ‘홀사랑’, ‘불타는 사랑’, ‘금지된 사랑’, ‘마지막 사랑’으로 구성돼 있다. 노 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아파 10살 무렵까지 안 가본 병원이 없지만 완치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방에서 지냈다. 형과 누나가 있다. 형은 서울로 유학을 갔고 누나는 결혼을 했다. 그에게 부모님 외에는 마땅한 친구가 없었다.

학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그에게 한 동네 고등학생이 드나들며 한글을 가르쳐줬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매형이다. 컴퓨터 회사에 다니던 매형이 사준 컴퓨터를 혀와 턱, 이마까지 사용하며 자판을 두드리고 세상과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사랑이 찾아왔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성을 알게 된 것이다. 현실적인 여건상 결혼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모인 시가 180여편에 이른다. 지독하고 아픈 사랑이다.

“(생락) 때론 당신한테 나와 같은 몹쓸 병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사랑해도 안 미안하고/ 마음 놓고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 너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전 때론 이런 나쁜 생각들을 합니다.” ? ‘때론’, 노차돌

이것만으로 그를 오해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 하다. 노 시인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흘린 눈물은 신들이 사람들에게 준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아니지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썼다. ‘어떤 화성인의 사랑고백’에서는 “내가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한밤중에 뼈가 깎일 듯이 몸이 아파도 당신이 미치도록 보고 싶으니 말입니다”라고 썼다.

아픈 사랑 경험이 그를 시인으로 키운 것이다. 그는 이메일에서 “19살에 첫사랑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인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상대방에게 미안하고 아픈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시집은 세 번의 사랑이야기다.

“사랑을 참으면 후회가 되고, 아픔이 된다”

그는 지금 시와 싸움을 하고 있다. 혓바닥에서는 피가 날 때가 있다. 종일 몸을 숙인 채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보니 목과 가슴이 아프다. 책상 모서리에 몸이 닿아 멍 투성이다. 노 시인은 보통 2~3주에 걸쳐 시상을 고민하고 시 한편을 쓰는 데 한달 가량을 소비한다. 그의 시집에 있는 시에는 가끔씩 오탈자가 눈에 띈다. 혀만 사용하기 때문에 자판을 동시에 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노 시인은 “그냥 자연스러운 게 좋아서 오탈자를 내버려 뒀다”며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을 하라. 사랑을 참으면 언젠가 후회하고, 그 후회가 아픔이 된다”고 답했다.

스스로를 ‘화성인’이라고 말하는 노차돌 시인. 그는 “처음엔 누가 ‘아이구 저 화상’이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보니 보통 사람들과 다르고 생각도 다르게 해서 스스로 지은 별명”이라며 “사람들과 늘 다르게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화성인’ 답게 시인인 그가 꾸는 꿈도 특별하다. 시인 원태연을 가장 닮고 싶다는 그는 대중가요 작사가도 꿈꾼다. 습작이 100여 편이다. 노 시인은 “기회가 되면 김장훈이나 강원래에게 내 작품을 맡기고 싶다”며 “물론 거의 다 사랑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화성에서 온 시인 노차돌의 소원은 “내 마음에 있는 사랑을 보고 싶은 것”과 “돈이 모이면 입으로 운전하는 전동 휠체어를 사서 교회도 가고 산책도 다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행복을 찾아 해맨다/ 웃고 싶음 웃고 울고 싶음 울고 사랑하고 싶음 사랑하는/ 그게 진정한 행복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채 오늘도 해매고 있다.”

노차돌의 이메일 답변이다. 아니 한 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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