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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과 섞임이 문화를 만드는 힘"
지령 500호 맞은 이상림 발행인
최초의 종합예술전문지 '공간' 바통이어 '맥스믹스' 작업 계속할 것





김청환 기자 chk@hk.co.kr







“생긴 모습도 다르고 재료, 시점도 다르지만 서로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변화하면서도 과거의 시간들과 어우러지는 도시와 공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령 500호, 창간 44주년을 맞은 월간 이상림(54·공간그룹 대표) 발행인의 말이다. 인터뷰 한 8일 서울 원서동 ‘공간(空間)’ 사옥은 그가 말하는 새로움과 소통을 통한 문화의 창조를 잘 보여준다. 1972년과 77년 생긴 벽돌건물을 담쟁이 건물이 싸고 있는 가운데 20년 뒤에 생긴 전면 통유리 건물과 연결했다. 골리앗과 같은 서울 계동 현대 사옥과 경복궁 사이에서 소박하게 서 있다. 공간 사옥은 고전과 현대건축을 잇는 역할을 한다.

의 전신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예술전문지인 ‘공간(空間)’이다. ‘공간’은 한국 근대건축의 효시격인 김수근(1931~1986)이 창업한 건축사다. 그러나 ‘공간’은 그냥 건축사가 아니었다. 김수근은 “사라지는 문화의 흔적들을 기록하자”는 뜻을 품고 국내 최초의 종합월간지를 찍었다. 공연장을 운영하며 책과 공연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사(史)의 한 획을 그었다.

문화의 불모지였던 1960~80년대 한국에서 건축, 도시, 예술, 미술, 연극을 다루며 문화담론을 주도했다. ‘공간’이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 공간과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이 대표는 “건축이 도시를 이루고, 건축이 도시의 얼굴이자 디자인, 문화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공간’이 여러 역할을 해온 것은 이상할 게 없다”며 “우리가 가진 독특함과 새로움을 바탕으로 더 많은 교감과 소통을 해 나아갈 것”이라고 요약했다.

공간이 만든 공간

“건축 자체가 문화와 예술의 본질이기 때문에 건축을 통해 문화와 예술에 접근하고 더 많은 시민에게 이를 알리는 것을 하고 싶었던 거에요.”

이 대표의 말처럼 ‘공간’이 만든 공간은 한국 근대건축의 시작이자 거의 모든 것이었다. 1950년대 일본 동경예술대 건축학과에서 유학한 김수근은 국회의사당, 워커힐, 자유센터, 타워호텔, 아르코미술관, 잠실종합운동장 등을 설계했다. 왜색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그의 설계가 한국 근대 건축을 여는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점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1966년 창간한 월간 종합문예지 ‘공간’은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비롯해 홍신자의 무용, 황병기의 가야금 명연,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등을 지면과 공연장에서 알리며 문화예술 진흥에 기여했다.

이 대표는 “어려움을 겪은 일도 많았어요”라며 “외골수처럼 보이지만 깊이 관심을 나눌 수 있는 독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소회를 풀어놨다.

월간 ‘공간’은 재정압박을 비롯한 힘겨운 싸움을 거듭하면서도 그 발길을 멈추지 않아왔다. 문화예술인과 애호가들이 문화의 불모지에서 분투를 거듭한 ‘공간’에 오래된 친구와 같은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다.

공간이 만든 건축 역시 이런 외골수 기질을 닮아 있다. 공간은 규모가 작을지라도 인간적인 냄새가 나고, 현대와 과거,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을 시도해왔다. 크고 웅장한 현대 건축들 사이에서 공간의 건축은 소박하지만 조금만 깊이 관찰한다면 오히려 도드라져 보인다.

공간이 만들 공간

개발을 하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개발을 하고, 채우되 문화적으로 하자는 것이 ‘공간’의 주장이다. 정취를 살리면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중도’의 길을 주창한다.

이 대표는 “서울은 1천만이 넘는 메가 시티이지만,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볼 때면 아직도 굉장히 허전해요”라며 “산만하고 더 밀집되게 느끼는 것은 제대로 채우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과 같은 보존과 개발의 어느 한편 들기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무조건적인 방치는 파괴이자 훼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가 안고 있는 고유의 장소성과 성격을 그대로 두되 매번 변해야 효율적인 공간과 이의 보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간의 대표 집무실은 바뀌지 않은 채 수십년 째 그대로이지만 매일 바뀐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이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피맛골과 청진동 해장국 집은 나에게도 추억이 깃든 공간이어서 아쉽다”며 “기억을 갖고 있으면서 뭔가 하자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싹 밀고 새로운 것을 넣는 개발보다는, 정취를 살리면서도 재현 할 수 있는 효율적인 개발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도로와 거리를 비롯한 길을 통해서도 문화국가의 바로미터를 볼 수 있다고 본다. 애초부터 넓고 계획적인 길을 가졌다면 제 1의 선진국. 넓혀진 도로나 거리를 따라 멘홀도 넓히고 옮겼다면 아쉽지만 문화국. 길은 넓혔는데 멘홀을 비롯한 관계수로는 그대로 놔뒀다면 후진국이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서울 율곡로는 보도블록을 교체하며 길을 넓히고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멘홀과 관계수로는 그대로다.

문화담론을 이끄는 대중예술지로서도 ‘SPACE’는 눈에 띄지 않더라도 문화적 교감과 소통의 통로로서 ‘공간’의 정통성을 이어갈 생각이다. 이 대표는 “<공간>이 문화담론에서 그동안 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계몽적이고 교조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우리만의 독특함과 새로움으로 다양한 것이 서로 소통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간’에서 ‘SPACE’까지. 건축에서 문화를 보고 인간을 발견하는 김수근의 지론은 아직 숨쉬고 있다. 7일 지령 500호 기념공연에서는 심우성과 타싯이 또 한번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혁신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당초 계획은 두 공연 사이의 ‘크로스 오버’였지만 우천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공연 자체의 크로스 오버로 만족해야 했다.

이 대표는 “뭔가 새로운 것이 섞여 또 다른 새로운 걸 탄생시키는 게 문화”라며 “공간은 기존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것을 섞임으로 창조하는 ‘맥스 믹스’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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