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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도 생로병사의 권리 있어요"
연정태 재활용 디자이너
28가지 재활용 레시피 소개한 책 출간… '물건권리장전' 주창





양평=김청환기자 chk@hk.co.kr







“일 자체는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예요. 대량소비를 강요하는 대량생산 시스템에 일종의 브레이크를 걸고 싶은 마음도 있죠.”

햇볕이 뜨겁던 15일 오후 경기 양평군 단월면의 옛 부안 초등학교터에 있는 ‘아름다운공 방’에서 만난 재활용 디자이너 연정태(49) 씨의 말이다. 초록에 둘러싸인 ‘자연학교’의 한 귀퉁이, 작업장과 주변에 폐품이 그득하다.

폐기된 신호등, 깨진 항아리, 스테인리스 뼈다귀통 같은 것들이다. 연 씨는 땀을 흘리며 작업에 열중한다. 못과 망치, 드릴 등 의 연장과 나무가 동원된다. 그의 손을 거쳐 폐품은 새롭게 변모했다. 신호등은 아름다운 문양의 전등이 됐다. 항아리는 장식적인 수납함으로 변했다. 뼈다귀통은 이제 고급스러운 와인 저장고의 일부다.

13일 펴낸 책<물건의 재구성>에서 연씨는 물건도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생로병사를 거칠 권리가 있다며 ‘물건권리장전’을 주창했다. “생(生),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을 권리. 노(老), 존중받으며 사용될 권리. 병(病), 함부로 버림받지 않을 권리. 사(死), 제대로 버려질 권리”다.

연 씨는 “지구를 계란으로 치자면 현재 우리는 계란껍 질 정도의 얇은 지각층에서 한정된 자원을 미친 듯이 퍼내며 소비적인물건을 만들고 있다”며 “재활용은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며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일”라고 말했다.

“재미가 있다”

그의 작업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플라스틱 의자를 뒤집어 만든 아기 그네, 의자 두 개를 뒤집어 만든 화장대, 페트병으로 만든 정자 지붕 등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 편안해 보이지 만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연씨는 나름대로 여유있는 답을 한다. 생수병은 압력에 견디는 내압용이 있고, 열과 압력에 모두 강한 내열 내압용이 있는데, 내열내압용 페트병을 쓴 정자 지붕은 빛과 열을 차단해 생각보다 시원하다는 것이다. 뒤집은 의자에 쿠션을 덧댄 그네를 탄 아기의 미소가 행복해 보인다.

“새나무로 화장대를 만들어주면 안되 냐”고 묻던 아내는 완성된 것을 보고 “화장대로 쓸래”라고 말했다. 역발상의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연씨는 “재활용 순서의 첫번째는 뒤집어 보기”라며 “고정관념 없는 말랑말랑한 생각으로 주의 깊게 보면 케이스에 처박힌 기능을 살려낼 다른 쓸모들이 머리 속에 나열된다”고 말한다.

사실 연씨에게 쉬운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쉬운 것 만은 아니다. 연 씨는 대학에서 지리학을, 대학원에서는 도시설계를 전공했지만 3년간 공장노동자로 일하면서 각종 공작기계를 다루는 법과 공작기술을 터득했다. 10여 년 동안 광고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디자이너 겸 카피라이터로 활약한 경력 역시 그의 창작에 밑거름이 됐다.

40대에 ‘아름다운 가게’의 간사가 된 그는 “내 프로필이 그렇게 특이하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디자인, 집 짓는 일, 재활용품 만들기는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쉽다”

그럼에도 그는 재활용 디자인이 쉬운 일이라고 고집 (?)을 부린다. ‘개러지(창고) 문화’가 있는 미국 등의 서구와 달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우리나라 에서 좋은 재활용 디자인을 평범한 사람들이 실행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연씨는 “요즘 아파트에 살면서도 재활용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실제 비유하자면 요리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요리를 할 때 뭘 할까 구상을 하고, 재료 리스트를 만든 뒤 시장에 다녀와서 모르면 ‘레시피’를 참고하며 남은 것은 버리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물건의 재구성>에는 그가 만든 28가지 재활용 ‘레시피’가 소개돼 있다.

연씨는 방안인들 어떠냐고 말한다. 그는 “만들기라는 것을 안 해보니까 먼 곳에 있는 걸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며 “결과물에서 얻는 만족감도 중요하지만 만들어 본 사람은 겉치장과 상관 없이 좋은 물건을 보는 안목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연씨의 재활용 예찬론에는 사회적인 맥락도 있다. 그는 자신의 재활용 디자인 중 일정규모의 다량생산이 가능한 제품을 중심으로 자연학교에 작업장 공간을 확대해 ‘지속 가능한’ 재활용 제품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노동에서 소외된 사람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사회적 기업을 만든다는 생각이다. 제품이 중심에 있는 공장이 아닌, 사람이 중심에 있는 재활용 다운 공장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의 재활용품 역시 그런 생각을 닮아있다. 극단적으로 가공해 새것보다 더 새것 같아 보이는 재활용품은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학교 작업장에 걸맞게 식당에 만든 벽과 리폼 냉장고에 생나무의 거친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이유다.

그렇다고 그가 극단적인 환경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공방’과 같이 있는 ‘자연학교’에 사람들이 많이 오면 일회용 컵이나 접시를 쓰기도 한다. ‘책에 왜 재생지를 쓰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재생지의 콩기름 인쇄가 최종 단계에서 잉크에 콩기름을 약간 쓰는 것과 같은 기만적인 재활용은 안 한 것만 못하다”고 답했다.

연씨는“버려진 물건을 살리는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며 “전체 양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활동을 자꾸 보여주고 노출해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사무적 관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일종의 공동체 지향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사람과 노동의 관계로 확장한다는 그의 작업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계란’뿐 아니라 ‘껍질’도 볼 줄 아는 공동체 지향에 동의한다면 동참을 고려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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