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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감수성으로 디자인 새 지평 열어"
[문화혁명가] (43) 낫씽 디자인그룹 구진욱 대표
"디자이너는 사물의 내용과 이면을 읽을 줄 아는 눈이 있어야 돼"
'무위자연' 사상서영감… 디자인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꿈꿔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1-구진욱 대표가 앉으면 소파의 중앙이 천천히 내려 안는 낫씽소파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클립 랭귀지 : 클립 끝에 글씨, 아이콘, 동물 등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북마크, 넥타이 핀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3-벽돌조명 : 무미건조한 도심의 주택 담벼락에 벽돌 조명으로 밤하늘에 수놓은 별을 보는 기분을 만끽할 수가 있다.
4-하늘 물고기 : 우리 선조들이 처마 끝에 달아놓은 물고기 모양의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하늘물고기는 네덜란드 익스페리멘타디자인에 초대 받아 당시 큰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굳이 못을 박지 않고도 사물을 벽에 걸 수 있는 행거가 있다. 또한, 클립은 아예 언어를 가지고 있다. 평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해’나 ‘I LOVE YOU’ 클립을 넥타이 핀이나 북마크로 사용하면 클립 고유의 기능도 살리고 간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기능을 발휘한다. 사물에 상처를 주지 않는 ‘낫씽행거’나 사물도 언어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클립랭귀지’는 모두 젊은 디자이너들의 집단 ‘낫씽 디자인 그룹’(NOTHING dESIGN GROUP)에서 만든 제품들이다.

“디자이너는 사물에 담긴 내용이나 이면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낫씽 디자인 그룹은 저를 비롯한 4명의 핵심 디자이너와 프로젝트마다 많게는 70여명까지 젊은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사물에 담긴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낫씽 디자인 그룹(이하 낫씽) 대표이자 디렉터인 구진욱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사물에 담겨 있는 콘텐츠를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일이다. 구 대표의 디자인 철학은 바로 ‘동양적이고 시적인 이야기가 담긴 디자인 테마’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란 시구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는 ‘연탄’의 콘텐츠를 잘 뽑아낸 시라 할 수 있어요. 연탄이 재가 되기 전 사람들에게 얼마나 행복을 주는지 잘 말해주잖아요. 저는 디자이너도 시인과 다름없이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 대표 말처럼 낫씽이 만드는 제품들은 그 자체가 시이며 이야기이다. 동양적인 감수성은 낫씽의 정신이기도 하다.

‘화분벽돌’이나 ‘벽돌조명’은 감수성을 잃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줄기 빛을 전달하기 위한 ‘희망 프로젝트’에 가깝다. 도심의 한복판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난 들꽃을 무심코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프로젝트가 도시를 한편의 ‘시집’으로 만들거나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시도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벽돌조명’은 영화 <빠삐용>에서 한줄기 빛이란 희망 때문에 탈출하는 죄수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도시의 삭막한 벽을 보고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거든요.”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의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에 가깝다. 낫씽은 벽돌 사이에 별과 하트 문양을 내서 밤에 별이 빛나는 듯한 효과를 내는 조명을 만들었다. 마치 시골의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처럼 말이다. 이 조명은 가로등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디자이너들이 시인이 되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시적이며 동양적인 사상을 담아 디자인에 반영해 세상을 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어요.”

구 대표가 디자인하는 제품들의 정신은 동양사상 특히 노자의 ‘무위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 낫씽(NOTHING)의 네임 또한 ‘무위’의 영어 번역에서 따온 것이다.

‘구름컵’에는 하늘의 뭉게구름이 그려져 있다. 하늘과 햇살 구경을 잘 못하는 사무실 안에서, 혹은 햇살이 드는 창가나 조명 아래서 이 머그잔에 차를 마시면 구름모양의 수많은 구멍으로 빛이 새어 나온다. 그러니까 머그잔은 파란 하늘이 꾸는 꿈이고 마치 차를 마시는 동안은 구름을 마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보다 쉽고 간편한 신선놀음이 또 있을까 싶다.

‘진공묘유(眞空妙有)’는 ‘진정으로 비어 있음은 묘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진정 없는 가운데 묘하게 존재하는 분위기로 만든 ‘진공묘유’ 머그컵은 반응이 좋은 디자인 제품 중 하나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손잡이를 살짝 바꾸어 놓았다. 45도 기울여 보관하니 머그컵 기능도 살리고 위생적인 생활용품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어요. 지게의 경우 책 받침대와 같은 원리잖아요. 아무것도 디자인되지 않은 것도, 그렇다고 생략한 것도 아닌 그 자체가 디자인인 거죠. 선조들에겐 삶 자체가 디자인이었기에 디자인이란 단어가 필요 없지 않았을까요?”

삶이 디자인이었기에 디자인이란 단어도, 필요성도 못 느꼈을 것이란 상상은 반전에 가깝다. 그의 이런 생각이 바로 ‘낫씽 디자인 그룹’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 비결이기도 하다.

작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비엔날레 ‘익스페리멘타디자인’ (EXPERIMENTADESIGN AMSTERDAM)에 초청을 받은 낫씽은 ‘하늘 물고기’(Fish in the sky)로 암스테르담에 동양의 아름다움과 선조들의 지혜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처마 끝에 달아놓은 ‘풍경’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평상에 누워 있으면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마치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보이잖아요. 한옥이 대부분 목조건물인데 ‘풍경’을 달아서 불이 나지 않고 가뭄이 들지 말라는 염원을 담았던 거죠. 우리 선조들이 ‘풍경’에 담았던 지혜를 네덜란드에 소개하며 운하도시인 암스테르담의 발전을 기원했더니 모두가 감탄하더군요.(웃음)”

비닐로 만든 물고기 오브제는 암스테르담 도시에 설치되어 바람이 불 때마다 도시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연상시켰다. 기능보다는 감성을 강조한 ‘하늘 물고기’는 동양의 아름다움, 한국인들의 지혜를 세계에 알린 프로젝트였다.

기존의 상식과 편견을 깨고 사고를 단순화시키기.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감각을 자극시키는 디자인이야말로 낫씽이 지향하는 디자인 세계이기도 하다.

“낫씽의 디자이너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키우기와 ‘생각의 지도’ 만들기 훈련으로 3개월에서 4개월 정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죠. 그런 다음에야 스케치가 나와요. 공장에서 제품을 대량생산하듯 기계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내진 않아요.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지우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머릿속에 포맷하는 시간이거든요.”

낫씽은 일년에 한두 차례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공공미술, 설치 디자인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올해 6월에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1층 아트스퀘어에서 열린 <자연의 선물-첫 번째 이야기 흙>전은 ‘흙을 숨쉬게 하자’는 취지로 ‘흙의 다양한 가능성을 시적이며 동양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공공디자인에 대한 낫씽의 실험적인 설치미술 전이기도 했다.

“낫씽의 디자인은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지에 수출하고 있어요. 해외에서 전시회를 열어 호응이 좋거나 제품을 수출해서 디자인으로 인정을 받으면 세계와 소통하고 공감을 얻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지만 현재 쌈지길(인사동), 상상마당(홍대, 대치동), 착한가게(코엑스),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의 오프라인과 온라인 등에 입점되었다. 국내에서도 낫씽은 서서히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조상들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사물이 세상을 풍부하게 하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10년 후쯤 낫씽의 제품을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자연스레 우리네 일상생활 속에 묻혀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저의 꿈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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