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27) 강성은 시인몽환적 매력으로 평단의 주목, 시집 '구두를 신고…' 출간

"그녀의 이야기엔 치명적일 정도의 매혹적인 중독성이 있어서 그녀의 시를 읽다보면, 서서히 퇴폐적인 이야기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게 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녀의 시를 이렇게 말했다.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강성은은 동화적 상상력을 투명한 언어로 정제해 낸다. 환상의 세계를 세련되고 유려한 리듬, 잘 짜여진 어법으로 노래하는 그녀는 몽환적인 매력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동화적인 상상력과 파괴적인 이미지의 결합은 최근 몇몇 여성시인에게 보여 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김민정, 곽은영, 유형진 등 몇 년 간 주목 받은 젊은 시인들이 비유장치로 사용한 것은 동화적 상상력에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 시인들이 이런 방식을 이용해 시를 위악적으로 비틀었다면, 강성은은 동화라는 연상 장치를 자신의 시에 그대로 가져온다.

"저는 바깥 세계보다는 내면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남들은 새롭다고 말하는 제 일상의 익숙함을 발견하는 거죠."

그녀의 시에서, 마술사의 아내가 되어 서커스 천막 안에서 불에 타고 다시 살아난다(시 '서커스 천막 안에서'). 뾰족한 첨탑 위에 갇힌 누군가는 구름에 편지를 쓰고(시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 맨발로 태양 위를 걸어 다니는 늙은 왕(시 '태양왕')이 되기도 한다. 시 속 화자는 우르줄라 뵐펠의 동화에서 딴 '불구두와 바람샌들'을 신고 지붕 위를 걷는다(시 '지붕 위에서 찾아가는 세계지도').

'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자줏빛 스카프가/ 내가 아름다운 두 팔로/ 그녀를 목 졸랐네, 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가 죽는 것을 보았지?/ 마룻바닥이/ 내 커다란 눈으로 떨어지는 핏방울들을 보았네,라고 말했네// 누가 그녀의 피를 가져갔지?/ 양탄자가/ 내 고운 실들이/ 그녀의 피를 먹었지, 라고 말했네' (시 '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중에서)

그녀의 시는 질문이 대답을 유도하고 대답은 다시 질문을 이끌어낸다. 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세헤라자데' 역시 첫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내는 형식이다. 서사가 다음 서사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독자가 끊임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바람 부는 길 같은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시 '세헤라자데' 중에서)

시인은 "등단 초기부터 동화적인 이미지, 파괴적인 묘사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면이 있는데, 이제 거기서 탈피해서 진술시를 많이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빚어낸 이야기는 얼마 전 시집으로 묶였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함성호는 시집에 붙인 해설에서 "강성은의 이 새로운 이야기 형식은 새로운 걸 창조하지도 않고, 충격적인 전언도 없이, 있던 것들을 연결하면서 이루어진다. 그 연결고리를 이어주며 강성은의 시는 변신한다"고 말했다. 강성은의 시는 고정된 하나의 의미를 거부하고 상징과 대상을 미끄러지며 유동적으로 흘러다닌다.

"예전 도서관에서 여러 문인들의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과 내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밀착된 기분이 들었거든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렵다, 소통을 거부한다고 말하지만, 저를 포함해서 젊은 시인도 여전히 소통을 원하거든요. 제 시를 읽고 예전 제가 느꼈던 것처럼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가 소통을 거부해버린 시대라고 생각한다면, 젊은이들의 시가 어렵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면, 그래서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