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가] (46) 장난감 연구가 현태준괴짜 문화 게릴라 홍대 앞에 유쾌하고 엉뚱한 박물관 '뿔랄라 수집관' 오픈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않는 남자가 있다. 중년이 됐음에도 권위나 명예, 품격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아직도 장난감을 수집하는 남자. 양복에 넥타이를 맨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으며 어쩌면 철이 들고 싶어도 스스로 갖다 붙인 ‘장난감 연구가’란 직업 때문에 애당초 ‘폼’ 잡는 건 포기한 지 모를 이 남자, 현태준(43). 그가 지난 4월 자신의 평생 취미인 수집인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잡동사니 박물관 ‘뽈랄라수집관’을 개관했다.

서울 홍익대학교 앞 커피프린스 본점 골목에 위치한 뽈랄라수집관은 1970~8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구석구석을 돌며 절로 탄성을 지를 만한 아이템들의 보물창고다. 10여 년 동안 수집해 온 싸구려 플라스틱 인형을 비롯한 각종 국산 장난감은 물론, 해외를 여행하며 구해온 피규어, 프라모델까지 장난감의 계보와 세계적 추세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또한 국산 아이디어 상품들이나 60년대 대중소설과 싸구려, 고급, 연애, 추리, 공상과학, 에로 등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서적들. 정체불명의 괴짜상품이나 한때 유행했던 불량식품, 찌라시 등을 보면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 50여 개가 넘는 유리 진열장 안은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힘들다. 해서, 현태준 씨는 이곳을 ‘뽈랄라수집관’이라 이름 붙였다. 뽈랄라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는 뜻으로 그가 만든 단어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잡동사니’들이 모여 있는 이곳을 쉽게 보아서는 결코 안 된다. 뽈랄라수집관의 관장 현태준 씨가 2만여 점이 넘는 아이템들을 정리하는 데만도 꼬박 1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수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종목별,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거랍니다. 수많은 아이템들은 그들 나름의 계보를 가지고 있어요. 개관 전 관객들이 ‘한큐’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데 시간과 공을 들인 셈이죠.”

비록 시멘트 냄새 폴폴 나는 지하실 수집관이지만 그래선지 더더욱 오랜 생활의 역사가 숨어있는 이곳은 마치 잡동사니 보물섬을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우표수집이나 레코드판 코너를 거쳐 문방구류와 100원짜리 싸구려 장난감 코너를 돌면 일본의 최신 애니메이션 피규어 코너를 만날 수가 있다. 다시 모퉁이에는 성냥갑 코너와 거리의 전단이나 경품 코너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코너마다 소개된 문구에는 현태준 씨 특유의 위트와 익살스러움이 살아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두 배다. ‘꿈꾸는 여고시절’은 ‘만져 보고 만져 보고 싶었지만 냄새만이라도 좋았던 누님들 세계의 신비한 아이템’이란 문구가 적혀 있고, 70년대 한창 유행했던 ‘우표수집 코너’엔 ‘백만 인의 취미생활, 제 취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우표수집이라고 답하겠어요’라는 문구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는 특히 국산 아이디어 상품에 애착이 간다고 한다. 불타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지만 아쉽게 빛을 못 봐서 ‘땡처리’로 내몰린 상품들을 현 씨가 구해냈다.

“뽈랄라수집관의 물품들에는 만든 이들의 유쾌하고 즐거운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듬뿍 담겨 있어요. 한없이 우스꽝스런 형태의 장난감들과 아저씨들이 만든 호객용 전단의 엉큼한 문구들에 이르기까지 수집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숨어 있죠. 특히 아이디어 국산품 코너에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고안한 서민풍의 아이디어 발명품이나 시대상을 보여주는 아이디어 유행품들이 뒤범벅되어 있어요.”

신기한 건 하찮은 물건이라 여겨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진열장 속에 들어간 순간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생활유물’의 가치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상품들 중엔 ‘기똥찬 물건’들도 많다. 동전을 넣으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기능성 저금통, 타자기 겸용 필통, 공부 잘 하는 안경, 한자 외우는 볼펜 등을 보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처럼 그 신선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쩌면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이곳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일지도 모른다.

현태준 씨가 2년 전 개관한 경기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의 ‘20세기 소년 소녀관’이 국산 장난감 제1전시실이라면 뽈랄라수집관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생활사 박물관’ 성격을 띤 제2전시실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본업을 ‘아저씨’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괴짜다. 그의 직업 또한 뽈랄라수집관 만큼이나 잡동사니 성격이 강하다. 장난감 연구가 이전에 그는 편집이나 광고 등에서 이름을 날린 프리랜서 편집디자이너였다. 그림 실력으로 인정도 받아 영화 ‘몽정기’를 비롯한 각종 영화 포스터에도 그림을 그렸고, 잡지나 동화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는 중이기도 하다. 또한 어린 시절 꿈꾸었던 만화가의 꿈은 본격만화 <뿌지직 행진곡>으로 이루었고, 책을 쓰고 만드는 것을 좋아해 직접 출판 기획해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현태준’이란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첫 책은 에세이, 만화, 일기 등 그의 잡동사니 성격을 반영한 <뽈랄라 대행진>이다. 그의 책은 초등학생과 군인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라고 한다. 장난감 연구가로서 유년기부터 최근까지 접했던 장난감에 대한 추억을 일기형식으로 펴낸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는 독자들을 ‘장난감 마니아’로 만든 계기를 던져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발표된 후 사라질 뻔한 장난감들이 많이 발굴됐어요. 전국에 있는 독자들이 동네의 허름한 문방구를 돌며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한 거예요. 그 후 동호회도 많이 생겼고요. 저 혼자 전국 방방곡곡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순례하며 팔리지 않고 먼지 쌓인 장난감을 구해내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요.(웃음)”

지방의 문방구를 돌 때는 초등학생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접근하다가 유괴범으로 몰릴 위기에도 처했던 그다. 중년 아저씨의 장난감 사랑에 감탄한 독자들이 ‘장난감 살리기 문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셈이다.

“홍대 앞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그래서 ‘실험’ 하기에 좋은 지역적 특성이 있죠. 상업과 문화의 논리 속에서 순수하게 문화로 빛을 내고 싶어요. 다양한 문화와 문화가 만나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사랑방이랄까? 앞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음악이나 미술, 디자인, 만화, 출판, 영상 등 문화 전반의 흐름과 소식을 알리고 기록, 보관하는 ‘서브컬처’의 사랑방으로 거듭나고 싶네요.”

수집품 전시코너를 구경하고 나면 ‘땡그랑 백화점’과 ‘미니 갤러리 뿡’을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땡그랑 백화점은 책이나 장난감, 잡화 등 아이템들이 판매되는 곳이다. 현 씨가 “무척 팔기 싫은 애착이 가는 물건을 늘어나는 짐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놓은 상품”도 있다.

개관 기념작으로 <10원짜리 종이그림의 세계>가 열리는 2평짜리 미니 갤러리 뿡은 앞으로 개성 있는 영아티스트나 전시 기회를 얻지 못하는 ‘남녀노소, 학력, 경력, 인종과 계층’을 뛰어넘는 다양한 개인들에게 창작물을 전시할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다.

“지금은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장난감이나 복고로 보일 수 있지만 20년 혹은 30년이 지나면 후세들에게 당시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유물이 될 거라 생각해요. 시대를 반영하는 장난감들은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가치를 가질 겁니다.”

옛 것을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데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빨리빨리를 외치며 속도전에 동참한 우리들에게, 뽈랄라수집관은 오히려 세상을 거꾸로 사는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한다. 역발상 아이템으로 지친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오아시스가 되는 이곳, 관람료 2,000원이 아깝지 않은 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뽈라라수집관 가는 길: 홍대입구 전철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산울림소극장에서 도보 3분 거리, 커피프린스 골목으로 유명한 ‘다복길’에 위치해 있다.

문 여는 시간:

당분간은 매주 금, 토,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관람시간은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30분까지.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