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어디가 중도이며…' 출간 합리적 보수·성찰적 진보 연대 변혁의 길 나서야

“한반도식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참여 통일 과정이 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졌다고 봐야 합니다. 시민참여형 통일은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중단 없이 전진하고 있습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사회평론집 <어디가 중도이며 어째서 변혁인가> 출간을 기념해 가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1994), <흔들리는 분단체제>(1998),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2006)에 이은 네 번째 사회평론집이다.

그 동안의 글을 통해 백 교수는 ‘한반도식 통일론’, ‘시민참여 통일’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한반도의 분단현실은 독특한 분단체제를 구성하고 있어서 통일 또한 지난날 베트남, 독일, 예멘과 구별되는 한반도식이 되리라는 주장이다. 한반도식 통일은 선행 통일 사례들에서 볼 수 없던 차원의 ‘시민 참여’를 전제로 한다.

백낙청 교수는 이 책에서 한반도 정치, 사회 현실을 진단하고 시민참여 통일과정을 재점검하며 실천적 개념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안한다. 그는 민주주의, 시민경제, 남북관계 등 당면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연대해 총체적인 변혁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현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대해서 실용적으로 접근해 성과를 내고 싶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문제는 국내 문제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데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반민주적 혹은 특권층 위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면서 남북문제를 점진적으로 풀어나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남쪽 사회에서 민주화의 역행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정권은 자연히 수구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다가, 민심이 떠나면 북한과의 대결을 통해서라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가 반민주적ㆍ반민생적 정책을 계속하는 한, 결국 남북문제 해결도 요원해질 것이다.

- 그동안 꾸준히 ‘시민참여형 통일’을 주장해 왔다. 또한 현 정세에서도 꾸준히 시민참여형 통일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은 객관적 평가라기보다 본인이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의지적 요소가 강하게 개입된 것이 아닌가?

시민 참여 통일이 안 되고 있다고 말할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분단체제라고 부르는 남북 간의 체제가 다시 안정되고 굳어지는 경우인데, 시민참여형 통일이든 다른 형태의 통일이든, 통일이 안 되는 형태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통일이 되기는 되는데 시민의 주도력이 급격히 떨어져 버리고 정부당국 간에 처리한다든가, 외국이 개입해서 통일을 이루는 가능성이다.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없다고 본다. 최근 남북 간 긴장이 조성되니까, ‘분단체제가 다시 강화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분단체제가 약간 흔들리다가 고양이 심해져서 요동치는 단계이지, 옛날과 같은 안정된 남북대결로 나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정부 측에서만 긴장을 수습해서 통일로 갈 가능성은 오히려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한반도 사태가 너무 복잡하게 꼬여서 어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풀 수 없게 되었다. 또 정부 간의 단합으로 통일의 문제를 풀어나가기에는 남한에서 시민사회가 너무 발전했다.

시민사회가 정부를 제쳐두고 통일한다는 건 허황된 얘기이지만, 기본적으로 독일과 베트남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시민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꾸준히 참여해서 통일 과정에 영향을 주는 그런 비중이 훨씬 커지게 됐고, 최근 남북한 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그럴 전망이 더 커졌다고 본다.

-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신간은 1996년에 쓴 글 ‘한국대학의 이념을 찾아서’ 1편을 제외하고 모두 참여정부 후반부에서 이명박 정부 전반부 사이(2006~2009년)에 발표된 글이다. 그는 급박하게 변하는 남북한 정세를 분석하는 한편 한반도식 통일을 밀고 나가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선 한반도 분단체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평화운동은 물론, 환경운동·생태운동·여성운동·소수자운동 등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반도적 시각’을 가지지 않는 한 제대로 이해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책 후반에는 한반도식 통일에 수반돼야 할 ‘마음공부’(도덕통일)를 제시하고 대학 변혁과 새로운 인문학에 대한 성찰을 덧붙였다.

- 책에서 ‘한반도식 통일’을 실현시킬 방안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가?

이 말에는 ‘남한과 북한의 체제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적어도 남한에서는 중도 세력들이 광범위한 통합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선거와 같은 현실정치에서 변혁과 중도는 모순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남한은 분단 사회이기 때문에 분단체제를 변혁하지 않고 남한만 개혁을 이룰 수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은 광주 항쟁, 87년 민주화투쟁 등을 겪으며 개혁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이제는 과거의 폭력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한반도 전체를 변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중도통합과 한반도 전체의 변혁이 함께 갈 수 있다는 뜻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란 개념을 언급했다.

- 변혁적 중도주의를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남한 내 ‘합리적인 보수’와 ‘성찰하는 진보’가 연대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보수와 진보의 연대가 현실에서 가능한가?

원칙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현실 정치에서도 가능하다고 본다. 흔히 보수, 진보를 나누어서 말하지만, 보수로 분류되는 분들 중에서도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분과 진보로 분류되는 분들 중에서도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발전시키는 진보인가?’를 성찰하는 분들이 있다.

같은 보수와 진보진영 내에서 합리성과 성찰을 결여한 분들 보다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 사이의 격차가 더 적다고 본다. 합리적 보수, 성찰적 진보의 연대는 얼마나 폭 넓게 진행될 수 있고, 또 얼마나 짧은 기간 내에 진행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 최근 근황은 어떤가? 시민참여 통일에 관한 계획도 있는 건가?

6.15공동선언 남측 위원회 대표는 지난 2월 마쳤다. <창비>편집위원으로 잡지에 간여하고 있고. 다음 주 한미 간에 민간차원의 포럼 계획 있고 미국 의회나 정부 측에도 시민사회의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