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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메카 충무로, 세계 문화 허브로"

“도대체 ‘강호(江湖)’가 어디야?”

영화 <동방불패2>에서 중국을 침범한 서양인 군사가 ‘강호’의 위치를 두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무협의 세계에서 ‘강호’는 ‘무예’라는 공통의 업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 동양적인 개념이 내포된 ‘강호’의 대유법을, 서양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충무로’가 그런 말이다. 예전의 영화사들은 대부분 강남으로 빠져나가고 이제는 ‘인쇄소 골목’으로 익숙해진 동네, 충무로. 하지만 영화인과 관객은 한국영화를 말할 때 아직도 ‘충무로’라고 쓰고 읽는다. 최근 이 충무로를 다시 한국영화의 요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몇 해 전부터 서울 중구는 충무로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추진 중이다. 올해로 세 번째 해를 맞는 충무로국제영화제는 이 ‘충무로 부활 프로젝트’의 최전선에 있는 행사.

4년 전 취임한 정동일 중구청장은 이 전통의 영화중심지에 영화제를 만들어 제2의 충무로 르네상스를 꿈꾸어 왔다. 올해 행사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그는 충무로국제영화제가 문화사업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중심동력으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다.

“작년까지 2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를 세계에 알리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또 관광객 유치 등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하며 문화 기반사업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구청장이 직접 조직위원장을 맡아 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쏟은 덕분인지, 충무로국제영화제는 지난해에 첫해보다 2배 이상 증가한 98회 매진과 83.4%의 좌석점유율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다만 가시적인 외적 성장에 비해 내적 성숙은 지난해까지 미흡했던 것이 사실. 오히려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충무로국제영화제가 앞으로 경쟁력있는 행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제들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정동일 조직위원장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국제영화제’라는 점과 한국영화의 발상지로서 충무로의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점을 충무로국제영화제의 경쟁력으로 꼽는다.

“지난해까지 충무로국제영화제는 동서양의 다양한 장르의 신·고전영화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대중에게 어필해왔습니다. 또 영화인들에게는 이 행사로 충무로가 예전의 영광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두 해동안 영화팬들에게 각인된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이미지는 광주국제영화제와 비슷한 고전영화 중심의 영화제다. 따라서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정체성 문제는 이제까지의 프로그램 구성을 기반으로 삼아 어떤 방향으로 미시적인 발전을 꾀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동일 조직위원장은 이런 점을 감안해 올해부터 영화제의 키워드를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로 하여 과거에 머물던 프로그램들을 현재와 미래와 함께 균형있게 재구성했다.

30%로 제한된 ‘어제’의 영화들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마릴린 먼로, 한국의 제임스 딘이자 알랭 들롱이었던 신성일의 주요 작품을 통해, 시대의 아이콘으로서의 영화배우에 대한 재조명을 한다. 무려 50%를 차지하는 ‘오늘’의 영화들은 전 세계 우수 영화제의 수상작, 거장 감독의 신작, 신인감독들의 신작과 화제작들로 구성되어 세계 영화의 흐름을 조망하는 장을 마련한다. 의미있는 것은 ‘내일’의 영화들이다. 전 세계 신예감독들의 참신하고 기발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경쟁부문 ‘충무로 오퍼스’와 젊고 능력있는 영화인을 발굴하는 대학생단편영화제를 배치한 이 섹션에서는 미래의 역량있는 영화인을 키워내려는 영화제 측의 고민이 발견된다. 이는 충무로라는 작은 틀 안에 갇히지 않고 본격적인 국제영화제로 발돋움하려는 정동일 조직위원장의 욕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섹션은 아무래도 고전영화인 마릴린 먼로 회고전이나 신성일 회고전이지만, 신설된 충무로 오퍼스와 대학생단편영화제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젊은 영화인에 대한 지원과 한국영화인의 발굴 작업이 이어진다면 젊은이다운 재기 발랄함과 실험성으로 우리 영화계에도 큰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요?”

특히 올해부터 시행되는 대학생단편영화제는 우수 출품작에게 영화제 기간 내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상영 기회를 주는 특전을 제공한다. 이는 대학생 영화인들과 젊은 관객층의 유입을 확대함으로써 영화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의도. 하지만 그보다도 영화제 참여 연령층을 다양화하고, 충무로가 국내외적으로 한국영화계의 허브임을 관객에게 인식시켜 국제영화제로서의 위상을 높이려는 정동일 조직위원장의 숨은 의도가 담겨 있다.

영화팬들에게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시작은 지자체가 추진하는 지역 영화제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과 함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발돋움하려고 하고 있다. 정동일 조직위원장은 앞으로 다양한 축제 프로그램을 보강하고 세계의 유명 게스트를 초청하는 한편, 조직적인 홍보와 마케팅 등 영화제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한층 업그레이드해 세계적인 영화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영화제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다시 찾고 싶은 영화제로 만들 것입니다. 또 제반 문화사업으로 제2의 충무로 르네상스를 이루고, 충무로가 세계 영화 교류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알찬 영화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19세기 말, 청나라에 간 서양인들은 ‘강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전 세계인들은 할리우드가 미국영화를 상징함을 알고 있다. 이제 충무로는 ‘한국의 할리우드’가 아닌 한국영화 그 자체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의미있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정동일 조직위원장이 앞으로 그려낼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청사진이 궁금한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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