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가] (48) 신진 디자이너 이광호일상에서 흔히 보는 재료로 만든 파격적 작품에 세계가 주목국내 무대 건너뛰고 해외서 첫 전시한 뒤 디자인계 샛별 부상

지하철 6호선 광흥창 역 앞에 스쿠터 한 대가 정차했다. 메탈 소재의 안경을 쓴 남자가 편의점 앞에 서 있는 필자를 보고 이내 손짓을 한다. 운동화에 반바지, 흰색 와이셔츠의 소박한 옷차림. 그가 수염을 기르지 않고 팔에 타투를 하지 않았다면 영락없는 ‘까까머리 학생’ 정도로 알았을 것이다.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기로 유명한 독립 큐레이터 류병학 씨는 이광호(28) 씨를 가리켜 “최근 가장 촉망받는 신예 디자이너로 해외에서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래서 마치 ‘혜성’처럼 뚝 떨어진 존재라고 여겨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씨는 2008년 캐나다 몬트리올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베를린,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밀라노, 뉴욕, 마이애미 등에서 열린 각종 디자인 아트페어나 갤러리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아왔다.

해외에서 데뷔를 했지만 이씨는 유학파가 아니다. 경기 구리의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 홍익대 금속조형디자인학과에서 공부한 게 전부다. 여느 대한민국 남자들처럼 군대를 다녀왔고 그 후 줄곧 홍대 인근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런 그가 올해만 해도 아홉 차례나 해외에서 전시를 했다. 4월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는 각국을 대표하는 가장 주목받는 10인의 디자이너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패션 브랜드 ‘펜디’와 수공예로 한정 생산된 에디션 디자인 작품을 소개하며 세계적으로 급부상한 아트페어 ‘디자인 마이애미’가 공동 주최한 ‘크래프트 펑크(Craft Punk)’에서는 남다른 퍼포먼스로 세계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이틀 동안 제작 과정을 다 보여주는 퍼포먼스였죠. 그 중 행사를 주최한 펜디에 기증한 것도 있고, 나머지는 패션디자이너 ‘미소니’ 씨가 구매했어요. 한국인의 에너지에 감탄했다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죠. 꿈꾸는 것 같았어요.(웃음)”

‘Obsession’이란 이름의 소파는 현장에서 모조리 팔리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용 호스로 만든 새로운 형식의 소파에 사람들이 반한 것이다. 크래프트 펑크에서는 또한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 CEO 등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친분을 나누는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가 국내 무대를 건너뛰어 곧장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졸업 작품전 이후 한국에서 여러 전시를 했는데 ‘피드백’이 많이 없었어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이런 단순한 반응도 없는 게 당시엔 답답하더라고요. 그런데 제품 디자이너인 선배가 자기 작품을 홍보할 수 있는 해외 디자인 사이트를 알려줬어요.”

20대의 영 아티스트에게는 끓어오르는 열정을 받아줄 곳이 필요했다. 선배가 소개해준 사이트(www.dezeen.com)에 지금까지 만들어온 작품과 프로필을 올렸다. 그 얼마 뒤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삐에르 라라미라는 이름의 디렉터가 전화를 걸어온 것.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로 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저에겐 자극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첫 개인전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할 거란 상상은 전혀 못했었지요.” ‘열혈청춘’에게 다가온 대박과도 같은 행운. 그는 망설임 없이 준비된 작품과 함께 몬트리올행 비행기에 올랐다. “주로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이 전시를 많이 했던 곳인데, 한국에서 온 무명의 젊은 디자이너인 제가 혼자 전시회를 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어요. 삐에르 라라미는 제 작품에 ‘필’이 꽂혔다고 말했고, 어떤 확신이 들었다고 했어요.”

(위) ‘Obsession’-정원용 호스를 이용해 만든 소파 (아래) ‘knot beyond the inevitable’ 이광호 씨가 해외에서 주목받는 계기를 준 작품이다
(위) 'Obsession'-정원용 호스를 이용해 만든 소파 (아래) 'knot beyond the inevitable' 이광호 씨가 해외에서 주목받는 계기를 준 작품이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삐에르 라라미의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knot beyond the inevitable’이란 제목의 조명작품은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 디자이너들의 찬사를 받았다. 다음 전시를 계약하자는 디렉터도 있었다. 준비한 작품들도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조명작품은 유년시절 자식들을 위해 뜨개질을 하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은 것이었다.

“누구나 그런 추억이 있잖아요. 겨울에 자식들을 위해 스웨터와 목도리를 뜨시던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며 조명 꾸러미를 디자인했어요.”

그다지 비싸지 않은 재료인 전깃줄로 뜨개질 기법을 이용해 짠 조명작품에선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따뜻한 모정이 배어났다. 바로 추억과 향수였다.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튼튼하고 실용적이다. 평범한 소재를 이용해 추억을 환기시킨 이 작품은 ‘한국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씨의 작품에는 발상의 전환, 상상력과 트렌드가 반영돼 있다. 그는 생활 곳곳에 널려 있는 평범한 것들,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나 값싼 재료에 주목했다. 쓸모없어 길가에 버려진 스티로폼은 그의 손을 거치면 푹신한 소파가 되었고, 추수를 끝낸 뒤 묶어놓은 볏짚은 끝을 평평하게 잘라내니 의자가 되었다. 직접 손으로 만든 수공예 한정판이어서 작품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어릴 적 청평 외갓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방학이 되면 농사일을 돕기도 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어요. 외갓집에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도리깨, 낫, 갈퀴들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싸리나무를 모아서 묶기만 했는데 빗자루가 되는 등 평범한 일상이 바로 디자인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이 제 작품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 할 수 있어요.”

평범한 소재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한 이씨는 ‘생활 속 예술’에 주목한다. 특히 여러 가지 소재를 활용하고 변형하는 디자인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소재에 대한 관심과 변형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주로 하고 있어요. 어릴 적 어머니가 짜주신 니트를 추억하며 만든 조명작품은 정원용 호스를 꼬아서 만든 가구로 변형이 되고 그것은 다시 금속 소재를 이용한 다른 작품으로 변형될 예정이죠. 저 또한 성장하고 진화하겠죠.”

이씨는 외국에서 전시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한국만의 ‘빨리빨리 문화’가 생동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매력은 바로 생기 넘치는 에너지”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한국의 젊고 발랄한 상상력을 지닌 디자이너들의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제안했다. 내년에 ‘한국의 영 아티스트 그룹전’(가칭)이 몬트리올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에 좋은 작가들이 많아요. 저에게 어느날 찾아온 기회처럼 그들과도 좋은 기회를 나누고 싶었어요. 저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만으로도 뿌듯해요. 어머니가 늘 ‘상생’을 강조하셨죠. 이 세상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다고요. 조화롭고 따뜻하게 살아야 한다고요.”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