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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에세이를 인간화했죠"

작가 현기영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제주’란 형용사가 붙는다. 이 수식어는 그가 단지 제주도 출신의 작가이기 때문에 붙은 말은 아닐 터다. <순이 삼촌>, <변방에 우짖는 새>, <지상에 숟가락 하나>까지 그는 제주를 창작의 화수분으로 삼은 작가였다.

지옥을 보았던 사나이

그의 작품을 보면 한국의 민중사가 보인다. “제주에 관련된 것 3편만 쓰고 나머지는 인간의 의식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지와는 별개로 1975년 단편 <아버지>로 등단 이후 그는 줄곧 전쟁과 고통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현대사, 민중의 삶을 그려왔다.

1978년 제주도 4·3사건을 작품화한 중편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그는 제주도의 민중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문제작가로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이 작품으로 필화사건을 겪었다. 아직도 이때의 후유증으로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지옥 같은 현실이 작가에게는 천당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억압받는 현실에는 도전할 게 많죠. 내가 살았던 시대가 그랬고. 지금은 선배작가와 같은 조건이 아니에요. 용기를 낼 대상이 없어졌죠.”

끔찍한 경험과 고통을 되뇌이며 한줄씩 써낸 작품에 대해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1970~80년대 그는 4·3사건을 문학적 화두로 삼아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해룡 이야기>(1979) <길>(1981) <어떤 생애>(1983) <아스팔트>(1984) 등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4·3 작가’로 불리게 된다. 그의 대표작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 역시 4.3사건 당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고향은 작가에게 확실한 자양분을 주었지만, 또한 그의 문학 세계를 틀 지우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지난 겨울, 인터뷰에서 현기영은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부터 난 4.3사건에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무엇에 몰입하게 되면 헤어 나오기가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이제 그는 서울을 배경으로 386 지식인의 이야기를 우리 앞에 내민다. 장편 <지상에 숟가락 하나> 이후 10년 만에 작품이자 그의 문학인생 최초의 장편 ‘도시 소설’이다. 그리고 손 글이 아닌 오롯이 컴퓨터로 작업한 최초의 소설이다. 백발의 노장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만하면, 눈길이 가지 않는가.’

경계 긋기의 어려움

신간 <누란>은 이념이 사라진 시대, 소비자로 전락한 대중과 이를 바라보는 386 지식인의 비애를 그린 작품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20세기형 지식인 허무성은 작가 자신을 투영시킨 인물로도 읽힌다. 인터뷰 첫 머리에 “이제 용기를 낼 대상이 사라졌다”는 작가의 말처럼.

신간의 감상을 전하며, 저널리스트 고종석의 칼럼 이야기를 꺼냈다.

고종석 씨는 몇 해 전 칼럼 ‘경계 긋기의 어려움’이란 글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념의 경계 긋기’가 얼마나 모호해졌는가를 말한다. 그는 이 글에서 자신과 이념을 달리하는 몇몇 신문사에 홍보용 책을 배포하지 않고, 한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운영하는 대형출판사의 웹진 기자와 인터뷰를 거절했노라 말한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는 전직 대통령 아들이 운영하는 책 도매상을 통해 자신의 책 상당수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머리가 어찔했다. 얼마 되지 않는 내 독자들의 일부는 내가 그리도 관련되지 않고 싶어하는 특정 자본을 통해 내 책을 만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신문에 내 책을 보내지 않고 그 신문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내 ‘자기만족적’ 실천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윤리의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소시민으로서 내가 넘어서는 안 될 경계가 정확히 어딘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지천명을 코앞에 둔 나이에.’(칼럼 <경계 긋기의 어려움> 중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이념의 경계 긋기’를 누구도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누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1987년 6월항쟁을 이끄는 전위에 섰던 허무성은 검거되어 남산 지하고문실에서 김일강 등의 손에 고문을 당한다. 허무성은 함께 활동했던 동지와 운동조직에 대해 자백하고, 고문 검사 김일강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교수가 된다.

허무성은 자신의 무기력한 현실과 고문의 기억으로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한때 학생 운동가였던 대학 동기들은 운동의 경험을 밑천으로 국회의원이 되거나, 강남 논술학원 강사가 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한 타협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진정한 배신이란 무엇인가? 이념의 대결이 사라진 시대, 경계긋기의 모호함으로 허무성은 나락으로 빠진다.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는 세속적으로 출세하고, 한때 배신했던 허무성은 이전 가치를 지키는 인물이 되지요. 어느 쪽이 배신인가? 결국 뒤틀린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절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지식인은 무엇인가

2003년 시작해 6년 만에 완성된 이 소설은 작가가 2002년 월드컵의 광장을 바라보며 구상한 작품이다. 그는 “꼭 15년 전 그 광장에는 민주화의 운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군중을 보면서, 그리고 소비만이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세태를 접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철저히 자리 잡은 것이죠. 데카르트가 말한 본연의 슬로건대로 생각하는 능력, 성찰하는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허무성의 내면을 통해 군중의 속성과 소비지상주의, 파시즘, 배신 등 여러 화두를 던지는 이 소설은 “비평 에세이를 인간화한 것”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제, 3인칭 화자가 서술하는 전형적인 서사방식이 있는가 하면, 작품 중간에는 대화체로 구성된 마당도 있다. 작품 속 말하기 방식에 대해 그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 작품 안에서도 다른 문체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교수 허무성과 학생들의 대화를 그대로 옮기며 젊은 세대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교수: 영상 씨엠이 뭔가?

학생 2: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 말이에요. 영상 씨엠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죠.

학생 3: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도 한편의 아름다운 시죠.

교수: 아니 그냥 예술도 아니고 최고의 예술?

학생 2: 그럼요. 십오초, 삼십초짜리가 그렇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워요. 절제된 언어, 생생한 색채, 놀라운 위트와 유머!

교수: 어허, 장사꾼들의 돈 벌기 위한 전략을 예술이라니!’ (74쪽)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비판의 문화, 저항의 문화가 사라졌어요. 대학생이라면 자신이 몸담게 될 사회와 기성체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들이 바꾸려고 했던 시대가 그들을 바꿔버렸다’는 작품 속 말 그대로 집단망각증에 빠진 채 세태에 영합하게 된 386세대들이 과거에 꿈꾸던 것을 모두 방기해버리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작가는 2002년 월드컵이 당시 두 달 간 짙게 몰아친 서울의 황사를 보며 모래폭풍 속에 사라진 중국의 옛 왕국 ‘누란’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거대한 모래 폭풍이 옛 왕국을 삼켜버린 것처럼 소비주의와 파시즘의 망령이 서울의 미래도 집어삼킬 것인가. 인터뷰 전, 그는 책에 사인을 해주며 ‘水急不流月(수급불류월)’이라고 썼다.

‘물은 급히 흘러도 그 속에 잠긴 달은 흐리지 않는다’란 뜻인데, 그는 이 말의 의미를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가지라는 의미의 잠언”이라고 해석했다. 소설 속 지식인도, 작품 밖의 작가도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있지만, 절망에서 끝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실패와 절망에 관한 기록이다. …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절망하여 그 밑바닥에 닿으면 거기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고, 그때 우리는 바닥을 걷어차고 힘차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현기영은…


1941년 제주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 제5회 만해문학상, 제2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1999년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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