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사랑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두 번째 지휘봉 잡아

"박수를 보내주십시요, 여러분. 지휘자 장한나입니다."

'지휘자 장한나'라는 소개에 좌중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포디엄에 서서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향해 카리스마를 발산하던 지휘자는 어느새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제1회 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페스티벌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던 첼리스트 장한나의 2년 전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장한나는 늘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나이 또래에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들에 도전하고, 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왔다. 그리고 거기에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에는 언제나 수줍게 겸양했다. '천재'라는 칭호를 붙이게 했던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 우승이 그렇고, EMI 클래식과 생상스 첼로협주곡을 녹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년 전 타계한 거장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장한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감정들을 음악으로 표현해내는 것에 놀라워했다. 어릴 때부터 이미 한 명의 예술가로서 인정받았던 삶이 그를 어른스럽게 만들었을까. 태생적이든, 후천적이든, 장한나의 성숙함은 항상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며 그만큼 만족시킨다.

그는 첫 지휘 경험 후 "제 꿈은 로스트로포비치와 미샤 마이스키 등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대가없이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해 다음 행보를 짐작케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올해 두 번째 지휘로 어김없이 실현되었다. 오는 11일과 12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마에스트라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에서 장한나는 첼로 대신 또 한 번 지휘봉을 들게 된 것이다.

양일간 그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차이콥스키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교향곡 4번,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과 '교향곡 6번-비창'을 지휘하게 된다.

이번 공연에서 장한나는 지휘자로서뿐만 아니라 해설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향한 꿈에 한 발을 또 옮긴다. 이는 성남아트센터의 2009년 모토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킨다'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2년 만에 다시 포디엄에 서게 된 장한나에게 궁금한 것은 역시 지휘자로서의 성장이다. 하지만 장한나는 "지휘는 말할 것도 없고 첼리스트로서도 걸음마를 내딛는 단계"라고 겸손해한다. "달리기 경주는 피니시 라인이 있어서 먼저 도착하면 끝나지만, 음악은 피니시 라인이 없기에 무한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휘 공부를 하면서 제 음악의 영역도 더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이번 무대에서 공연할 차이콥스키를 예로 들었다. "첼리스트로서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연주할 때는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 강했어요. 우아하고 재기발랄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번에 교향곡을 공부하면서 그게 차이콥스키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동성애자로서의 불행한 삶도 있어서 오히려 어둡고 슬픈 느낌이 기저에 있는 거죠. 차이콥스키가 유일하게 남긴 첼로곡이 오히려 차이콥스키의 예외였다는 걸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이렇듯 장한나는 지휘를 통해 스스로의 음악 세계가 넓어지고 있는 것에 뿌듯해하고 감사해하고 있다. "음악적으로 매일 대하던 작곡가들의 전체적인 면모를 알아가는 게 가장 감사한 일이죠. 처음엔 신나게 열정으로만 했는데 지금은 좀 더 구체적인 욕심이 생긴 거 같아요. 연주할 때 어느 악기에 중점을 두거나 배치를 다르게 하는 해석의 묘미도 느끼고 있어요."

장한나는 이번 무대를 위해 뉴욕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지낸 거장 로린 마젤에게 3주간 지휘 레슨을 받기도 했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지휘한 영상을 보내드렸는데, 마젤 선생이 '지휘에 재능이 있다'는 코멘트와 함께 수업을 허락하는 이메일을 보내와 하루종일 입이 찢어져라 웃었어요."

그러나 그는 "식사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악보 연구와 리허설 테크닉 등 혹독한 지휘 훈련을 받아야 했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장한나는 마젤의 사사를 통해 지휘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바로 지휘자란 오케스트라 단원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돕는 존재라는 것.

"마젤 선생은 좋은 지휘자가 되기 위해선 자신을 내세우면 안 된다고 했어요. 지휘자는 단지 음악을 위해 포디엄에 섰을 뿐이라는 거죠." 마젤은 그에게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음악을 '섬기는' 자세로 임할 때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이었던 셈이다.

2007 지휘자 데뷔 장면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 그리고 로린 마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대가들의 도움으로 장한나는 또 하나의 작은 거장이 되어간다. 그래서 장한나는 이제까지 그랬듯이 자신이 받은 가르침을 세상과 나누고 싶어한다.

그래서 장한나와 성남아트센터는 만 11~24세의 연주자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해서 12명의 연주자를 선발했다. 절반은 음악 전공생이지만, 초등학생이나 대안학교 학생들도 다수 포함됐다.

이들은 올해 모스틀리 필하모닉의 전문단원들과 함께 연주에 참여하는 기회도 얻었다. 장한나는 이를 1회성 프로젝트가 아닌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하면서 매년 학생들을 계속 만나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없이 각종 콩쿠르를 휩쓴 클래식 신동, 젊은 천재 첼리스트에서 차세대 리더 순위 1위로 거론되는 장한나. 현재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 중인 그의 꿈은 자신의 이력처럼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음악가는 사회적으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축복을 사회에 돌려줄 의무가 있는 거죠. 제 꿈도 제가 잘하는 음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에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첼로라는 한 악기를 벗어나 모든 악기의 결합체인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기 시작한 '음악가' 장한나. 항상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장한나의 발전과 도전은 그의 음악처럼 끝도 없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