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가] (55)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젊은 영화인들의 꿈과 땀을 대중에 널리 알리는 배급전문회사 운영"주류와 비주류 경계 허물기에 관심… 다양한 영화는 거기서 비롯돼"

'스탠리 곽' 혹은 '큐브릭 곽'은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의 닉네임이다.

혁신적인 영상과 창의적인 촬영기법으로 수많은 '씨네필'(영화광을 일컫는 말)들의 우상이 된 전설적인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좋아해 그의 이름을 이메일 주소로 사용하다 보니 영화계에서는 종종 곽 대표를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곽 대표 또한 독립영화계에선 스탠리 큐브릭만큼 혁신적인 일을 해낸 인물이다. 그는 1998년 독립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포부를 안고 인디스토리(indie와 history의 합성어)를 출범시켰다.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독립영화전문배급사'란 타이틀도 내걸었다.

그 후 인디스토리는 배급, 마케팅, 제작, 해외 세일즈에 이르기까지 독립영화계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지금껏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다. 그런 곽용수 대표를 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자가 강하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많은데 배급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독립영화 배급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전문 배급사를 만들자는 결론이 나왔죠.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고 재미 반, 책임 반으로 시작한 일이 오늘까지 오게 되었네요.(웃음)"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의 꿈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중가요 노래패 '소리사랑'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동안 그의 꿈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노래를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는 꿈도 있었지만 선배들을 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졸업반 때 영화동아리 '바꿈표'를 만들면서부터다. 수배 중인 운동권 학생 이야기를 그린 <도바리>란 단편영화가 그가 만든 첫 번째 영화였다. 그는 졸업 후 영화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씨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에 들어갔다.

"모두 가난했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시절이었죠. 골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짐 자무시와 레오 까락스 영화를 토론하며 글을 쓰기도 했어요. 청춘을 '문화학교 서울'에서 보낸 셈이죠."


낭만도 있고 치기도 있던 그 시절, 씨네필들이 함께 낸 책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그들의 열정을 잘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지금은 영화계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감독들이 그와 청춘을 함께 보낸 동지들이기도 하다. 곽 대표 또한 그들과 어깨를 겨루며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외로운 두 남자가 등장하는 <새가 없는 도시>라는 제목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는 캐나다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 서너 편을 끝으로 연출은 하지 않았다. '문화학교 서울' 사무국장이란 직책이 그에게 사명감을 준 것일까. 독립영화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고민을 하던 그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춘 독립영화배급사를 구상하고 있었다. 독립영화 감독들이 연출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영화를 만들면 극장은 물론 국내외 영화제, 방송사 등을 통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시절이었다.

"문화학교 서울에 들어갈 때 제 꿈은 영화감독보다는 문화 기획자 쪽에 더 가까웠어요. 영화를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죠.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고 관객과 담론을 형성해 함께 고민하게 하는 역할, 젊은 감독들과 다양한 기획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 생각을 투영하는 일이 매력적이라 생각했어요."

처음엔 '문화학교 서울'의 운영비로 시작했지만 주변의 지원금 5,000만 원으로 법인을 설립해 독립했다. 하지만 자본의 궁색함을 견디고 버티는 것은 곽 대표의 또 다른 일상이었다.

인디스토리가 배급에만 머물렀다면 아마도 '변방에서 시작해 중심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인디스토리는 98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단편영화 배급에서 서서히 독립장편영화 배급 쪽으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국내는 물론 칸, 베니스, 선댄스 등 각종 해외 영화제에 국내 독립영화들을 출품하는 창구 역할도 자청했다. 2000년 이후 한국 독립영화들이 해외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데는 인디스토리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독립장편영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 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 등급보류 판정을 받아 한때 화제가 됐던 <둘 하나 섹스>, 박찬욱, 임순례 감독 등 6명의 감독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2003), 관객동원 3만 명이라는 당시로선 놀라운 기록을 세워 독립장편영화의 극장 개봉에 희망을 제시한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2004), 그리고 올해 뜻밖의 흥행 돌풍을 기록하며 독립장편영화의 혁명을 일으킨 <워낭소리>는 인디스토리가 배출한 대표 영화들이다.

"젊은 영화인들에게 대안적인 제작 기반의 길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영화감독들의 상상력과 전복적인 도전정신, 그리고 인디스토리의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기획, 제작을 통해 대안적인 영화제작과 배급 시스템을 구체화했죠."

인디스토리는 <눈부신 하루>(2005)나 <팔월의 일요일들>(2006)로 안정적인 배급과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판타스틱 자살소동>(2007), <바다 쪽으로 한 뼘 더>(2009)는 MBC드라마넷과 공동 제작했고, <지구에서 사는 법>(2008)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받기도 했다. 또한 KT&G상상마당과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숏숏숏: 황금시대>로 뜻을 모았다. 인디스토리에서 제작하고 KT&G상상마당에서 배급을 맡은 것.

"<숏숏숏:황금시대>는 10명의 감독에게 돈이란 주제를 던져주고 작품 1편당 500만 원의 제작비를 지원한 영화예요. 10분 안팎의 단편영화 10편의 총 제작비가 5,000만 원인 셈인데, 제작비가 모자라 자기 예산을 털어가며 만든 감독도 있어요. 젊은 감독들이 '황금시대'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색다른 10가지 맛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올해 부천 판타스틱영화제서 관객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동시에 거머쥔 독립영화제작사 키노망고스틴의 국내 최초 옴니버스 좀비영화 <이웃집 좀비>의 배급을 맡은 후 인디스토리는 또 한번 변신을 꿈꾼다. 내년 초 호러 영화만을 전문으로 제작, 배급하는 영화사를 하나 만들 예정이다.

저예산 장르영화부터 TV영화, 독립장편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 주변과 중심을 오가며 어느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색을 거듭하는 곽용수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무얼까.

"제 관심은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 허물기예요. 영화와 방송을 오가며 정체성 찾기란 고민도 했지만 결국 영역별, 장르별 경계를 허물어야 다양한 영화가 나오고 다양한 문화가 생산된다고 생각했어요. 비주류와 주류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다양한 문화를 꿈꾸며 실천하는 일은 인디스토리의 행복이자 즐거움이라 할 수 있죠."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