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미술 작가, 펑 쩡지에한국서 첫 개인전… 더 화려해진 '중국인의 초상'과 신작 시리즈 선보여

천진하거나 표독스러워 보이는 붉은 입술이 몽롱한 요염함을 풍긴다. 녹색 혹은 청색, 붉은 색의 머리카락은 네온사인처럼 현란하다. 표백을 한 듯 지나치게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에게선 백치미도 흐른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보라. 작은 눈동자가 양쪽 가장자리로 흩어진 외사시다. 비현실적인 눈동자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불길함마저 뿜어낸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 펑 쩡지에(Feng Zhengji, 41)의 트레이드 마크인 '중국초상' 시리즈 속 여인들의 모습이다. 그녀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펑 쩡지에가 바라보는 중국의 현재다. 수백 권 잡지의 이미지를 흩어내고 조합해서 창조해냈다. 펑 쩡지에가 담아낸 현재의 중국은 이 같이 불편하고 이질적인 이미지를 건넨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서구 자본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변한 중국사회와 중국인들의 심리는 여인들 모습 속에 내재되어 있다.

최근 청담동 디 갤러리에서 시작된 개인전을 앞두고 한국을 첫 공식 방문한 그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화려한 색채는 물질문명을 의미하고 눈동자는 숨길 수 없는 내면의 방황을 보여주고 있지요.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 사시는 불안한 중국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5~6년 전부터 세계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아온 그는 중국 현대미술에서 2~3세대 작가 군에 속한다. 1990년대 들어 주목 받기 시작한 신생대(新生代) 작가들은 중국 사회의 변화를 작품에 반영해냈다. 그들 중 우회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팝 아트 작가들이 호응을 얻었고 그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 펑 쩡지에다.

그가 첫 연작'해부 시리즈'를 시작한 계기는 그 같은 사회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중국 대륙에 이전에 없던 홍콩과 대만의 대중문화가 유입되면서 그는 유행에 열광하는 젊은이들과 대중문화에 해부의 칼날을 세웠다.

"그때 저도 스무 살 정도였고 저 역시 홍콩 스타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심지어 표정까지도 따라 했었죠.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죠.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 그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그 곤혹스러움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주제가 해부였습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스타들도 해부했지요. 그 해부를 통해 표면을 제거하면 내면은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해부'를 시작으로,'피부의 서술', '접연화', '낭만여정', '쿨니스' 등 지속적으로 연작 작업을 해온 그는 중국초상 시리즈로 세계 미술계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색채는 주제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각별하다.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 화가가 어디 있을까. 중국초상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펑 쩡지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고안해내는데 성공했다.

"제 작품에서 색은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죠. 시골에서 자라면서 밝고 명랑한 색감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처음 그림을 그릴 때 빨강, 노랑, 초록처럼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선명한 색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예전 작품에는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색이었다면, '중국초상'시리즈에서는 색감을 더욱 심플하게 쓰고 있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거의 빨강과 초록 위주로 썼죠. 빨강과 초록은 사실 중국 민간 예술에서 가장 전형적인 색의 조합입니다. 여기에 현대미술과의 밸런스를 맞춰주었죠. 이렇게 나온 것이 인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지금의 색이 된 겁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더욱 화려해진 중국초상 시리즈와 삶과 죽음의 순환성을 다룬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인다. 깊고 어두운 녹색과 분홍색의 꽃잎이 드리워진 곳에 해골의 형상이 부유하는 이미지다. 언뜻 아름답지만 한편 섬뜩한 분위기를 풍겨 그간의 작업 스타일과 상통하는 느낌이다. '플로럴 라이프(floral life)라 이름 붙여진 이 시리즈는 그의 부모의 죽음과 밀접한 고리를 맺고 있다.

"활짝 핀 꽃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이지만 시든 꽃은 곧 죽음을 의미하죠. 하지만 꽃이 지는 것이 완전한 죽음은 아니에요. 뿌리와 줄기는 남아 꽃은 다시 피어나거든요.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에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순환하는 관계인 거죠." 지극히 개인적인 계기로 시작한 신작은 보편적인 삶에 대한 고찰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펑 쩡지에 신작은 9월 11일에 시작해 10월 10일까지 디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