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박이문 연세대 특별 초빙교수'통합의 인문학' 출간… 윌슨 교수의 통섭론 비판 대안적 이론 제시

"통섭이 된다면 인문학에 의한 통섭이 돼야지, 환원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됩니다. 과학이론도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를 보는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박이문(79) 연세대 특별 초빙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통섭론을 비판하고 대안적 이론을 제시했다. 그가 최근 자신의 인문학 관련 글을 엮어 펴낸 <통합의 인문학>(知와 사랑 펴냄)이 그 결정체이다. 40여년 동안 철학자, 작가, 시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해 온 그는 그야말로 '인문학자'다.

경기 고양시 일산구 문촌마을 자택에서 7일 만난 박 교수의 표정은 논박을 즐기는 토론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염색하지 않은 흰 머리, 평범한 줄무늬 남방과 재킷 역시 논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철학자는 기본적으로 '논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유학의 영향으로 자기수양과 학문의 방법을 혼동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시대에 질문과 대화가 학문의 방법이었듯 논박과 토론을 거듭하며 진리에 접근하는 것이 학문하는 방법이라는 게 소신이다.

박 교수는 "월슨의 통섭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아니라 환원적 통일을 뜻하며, 이때의 환원은 인문학의 자연과학화를 뜻한다"며 "통섭이 꼭 필요하다면 자연과학으로 인문학이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에 의한 자연과학의 흡수로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섭의 환원주의 경계해야"

"월슨의 통섭론은 사람이 한 모든 것을 과학·물리학적 원리 한 가지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절대적 환원주의는 불가능하죠."

통섭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날이 서 있었다. 월슨의 통섭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아니라 환원적 통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월슨의 사유 밑바닥에는 기계적 유물론의 형이상학이 깔려 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 때의 환원은 자연과학에 의한 인문학의 흡수를 의미한다.

좀 더 쉬운 말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 교수는 아인슈타인을 예로 들었다. 아인슈타인이 원자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를 개발하는 사람은 원자탄이 인류에게 안겨주는 재앙까지를 고려해야 했다. 그 근저에는 과학이론을 뛰어넘는 인문학에 바탕을 둔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적인 세계관이나 이론도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를 보는 시각입니다. 근본적으로 인문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람직한 세계를 만들어내냐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가장 통섭적인 방법으로 학문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박 교수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과 화이트 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를 꼽았다. 헤겔은 우주 현상 전반이 존재에 의해 논리적 법칙을 갖고 작동한다는 생각을 펼쳤다. '정신현상학'이야말로 대표적인 통섭인 셈이다.

원래 수학자이며 과학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화이트 헤드는 헤겔과 유사한 철학적 방법으로 우주의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양태와 신선함이 있어야 좋은 예술"

"예술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양태'를 띠느냐입니다. 수용자가 그렇게 안 봐도 예술가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전제됐을 때의 가설적 세계나 그림을 말하는 것이죠."

<시와 과학>(1975)에서 <예술철학>(1983), <이카루스의 날개와 예술>(2003)까지. 철학에서 문학과 예술까지 넘나드는 박 교수에게 현재의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옳으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백남준이나 마르셸 뒤샹이 대표하는 현대예술은 작가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강제하지 않는다. 분명 같은 사물이지만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 양태가 존재하면 우리는 평범한 변기에도, 폐텔레비전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적 진술은 A를 B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정적·절대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느냐는 태도인 것이죠."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도 그는 답을 갖고 있었다. 책에서 그는 "문화의 우열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평가의 의미를 내포하는 고급문화 저급문화의 구별이 무의미하다"면서도 "모든 문화가 각기 다른 배경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들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고 썼다.

예를 들어 '한국 음식과 서양음식은 각기 그 문화적 맥락에서 똑같이 평가될 수 있지만 그런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그 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둥지의 철학으로 가자"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거처가 집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관념적 건축물이 바로 지식입니다. 철학이야말로 관념적 집으로서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으며 많은 분과적 학문들이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이죠."

철학과 예술, 문화를 아우르는 그의 주관은 '둥지'를 키워드로 한 철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왜 하필 둥지일까. 둥지는 존재의 토대인 자연과 우주에 거스르지 않는 건축물이다. 끊임 없이 리모델링이 가능한 생태적 존재다. 그는 관념과 사유의 세계에서도 이런 둥지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

끊임 없이 '내재적 가치'를 강조하는 그에게 '인문학이 위기를 맞은 것은 오히려 법(法)철학이나 의(醫)철학 같은 실용적인 변화를 잘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고 물었다.

박 교수는 "오늘날 기술발전과 함께 심각하게 산다는 것, 뭐가 옳은 사회인가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면서도 "바람직한 것은 어떤 것이냐,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기술을 발달시키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며, 인문학적 바탕 없이는 방향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비판에서 문제를 끝내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대안으로 고민해온 '둥지의 철학'을 내년께 철학 학위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의 질문과 논박이 통섭론(正)에 대한 반박(反)에서 진리(合)로 귀결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 학계에 노(老) 인문학자의 열정이 귀감이 될 만하다는 것이다. 서구의 이론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며 자기만의 이론이나 분석틀, 대안을 제시하는 법은 거의 없는 현실을 비춰 보면 말이다.

박이문 교수는…

서울대 불문과 · 동 대학원 졸업. 프랑스 소르본 대학 불문학 박사 · 철학사.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 철학박사.

연세대 특별 초빙교수. 전 이화여대 · 미국 시몬스 대 교수. 전 포항공대 초빙교수 · 석좌교수. 프랑스, 일본, 독일, 미국 등지에서 30여 년 동안 교편을 잡음.

<시와 과학>(1975), <예술철학>(1983), <노장사상>(1980, 2004), <예술철학> (1983, 2006), <인식과 실존>(1994), <문학과 철학>(1995), <과학철학이란 무엇인가>(1999), <환경철학>(2002), <현상학과 분석철학>(2007), <철학이란 무엇인가>(2008) 외 저서 다수.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