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훈 전 철도청장'와인앤시티' 발행인 겸임… "와인의 새 문화 창출하는 것이 내 역할"

국내 최고령 잡지 편집장이 탄생했다. 무려 74세, 최훈 전 철도청장이 주인공이다.

최훈 전 청장이 제작 편집을 책임지고 맡게 된 잡지는 '와인 앤 시티(Wine an. City)'. 올 초 잡지를 창간, 발행인으로만 일해 오던 그는 지난 여름부터 편집장도 겸임하고 있다. 잡지에 찍혀 있는 직함도 발행인 겸 편집장. KTX를 타면 보게 되는 월간잡지 'KTX'와 '와인 리뷰'도 발간하고 있는 그는 보르도 와인아카데미 원장직도 맡고 있다.

다른 매체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젊은 세대가 주축인 잡지 업계에서 최 원장의 편집장 취임은 화제를 모으고도 남는다. 남들 같으면 은퇴하고도 한참 됐을 고령이라는 점은 기본적으로 무시 못할 사실. 거의 전례를 찾아 보기 조차 힘들다. 1936년 생인 그는 우리 나이로 74세, 만으로 따져도 (생일이 지나) 73세다.

왜 어떻게 최 원장은 편집장이 됐을까? 가끔 규모가 '아주 작은' 매체에서 오너가 편집장을 겸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사업 규모나 비중 면에서 비교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편집장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일까지 떠맡게 됐다는 사실은 그를 아는 이들 사이에서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국내 와인 시장이 많이 성장했다지만 실상은 어렵습니다. 지난 해 경제 위기로 전년 대비 매출도 떨어져 있고 아직도 회복 중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요."

지난 해 여름부터 새 잡지 창간 준비 작업에 들어간 최 원장은 올 초 '와인앤시티'를 발간했다. 원래 와인 전문 잡지인 '와인 리뷰'를 발행해 오고 있지만 또 하나 더 와인 잡지를 내기로 한 것. 와인 리뷰가 와인 업계 사람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신생 잡지는 일반인과 와인 초보들을 위한 와인 잡지를 겨냥한다.

"월간으로 꾸준히 잡지가 나오고 있는데 종전까지 일하던 편집장이 그만두게 됐습니다. 잡지 광고나 운영 사정도 넉넉하지 못하던 차에 후임을 새로 두지 않기로 했죠. 고민 끝에 제가 그냥 편집장 일도 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비싼 인건비 하나라도 줄여 봐야겠다는 생각에서죠."

어떻게 보면 간단하면서도 소박하다. 편집장으로서의 꿈이나 포부를 먼저 들을까 생각들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편집장이 됐다는 얘기. 솔직하게 '경영난 때문'이라고 하니 조금은 싱겁게도 들린다. 그래서 '편집장이 됐다'라기 보다는 '편집장 일도 하게 됐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싶다.

지난 7월호부터 발행인과 편집장을 겸하고 있는 최 원장의 일과는 그래서 더 바빠졌다. 매번 마감 때마다 원래 사무실을 두고 기자들이 있는 편집실로 자리를 옮긴다. 기자들이 원고를 들고 다른 사무실로 찾아 오는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한 배려에서다. 대신 기자들이 써내는 원고를 보고 수정하고 서로 호흡을 맞추는 일과로 일주일 가량은 눈코 틀새 없이 지나간다.

"편집장 일 재미 있으세요?" "내 나이에 재미로 하겠습니까. 신생지니까 뿌리내리기 위해서 과도적으로, 경영의 한 방편으로 그런 것 뿐이지요. 자리가 잡히는대로 유능한 편집장을 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능한 편집장 구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10년 가까이 3개의 잡지를 발행하고 있지만 본인이 직접 편집장 일을 맡아 본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언론계의 경영난, 그 중에서도 잡지업계의 난관을 헤쳐 나가려는 최 원장의 노력은 편집장 겸임에 그치지도 않는다. 기자 등 자연 인원 감소시 결원을 충원하지도 않고 별다른 역할이 없는 자리는 아예 없앴다. "비상도 이런 비상 시기가 없어요. 자칫 돈 까먹는 하마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잖습니까."

최 원장과 잡지의 인연은 제법 오래 됐다. 철도청장 직을 그만둔 것이 1994년. 공직에서만 33년 을 보낸 그는 2000년 와인 리뷰의 전신인 'Le Seoul'을 발간, 잡지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벌써 잡지 인생 만 9년째. 퇴직 후에는 대학교에서 초빙 교수 등을 역임했지만 그의 표현대로 '그 흔하다'는 산하 기관장 한 번 해 본 적도 없다. 잡지 KTX매거진을 창간한 것도 2004년.

"단순한 '잡지쟁이'는 결코 아닙니다. 와인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찾고 글을 쓸 수 있는 한 모든 일들을 다 해야지요." 잡지, 언론인으로서 그의 목소리에는 신념과 확신이 가득 차 있다.

오너로서의 발행인과 편집장. 얼마 전 신생 월간 잡지가 창간되고서 6개월 여 만에 편집장이 물러난 일이 있었다. 또 다른 창간 잡지에서는 편집장 출신 간부가 발간되고 역시 반년 여 만에 회사를 떠났다. 모두 편집장이 경영 사정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반증하는 사례들. 최악의 경우일 수도 있지만 발행인과 편집장의 '본질적' 관계를 드러내 주는 일단이다.

"발행인이요, 광고나 경영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입장이죠. 편집장이라면 하나의 언론사로서 잡지의 경영에 도움이 되고 말고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발행인과 편집장은 가장 밀접하고 마인드에서도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유기적인 사이죠." 그래서 최 원장은 "편집장이 오히려 더 힘든 것 같다"고 토로한다.

실제 편집장으로서 최 원장은 하는 일이 많다. 기자들의 기사들을 일일이 읽어 내려가면서 오자와 띄어 쓰기 하나까지 다 지적한다. 문장이 껄끄럽다거나 번역문이 이해하기 힘든 직역이면 당장 고쳐 쓰라고 지시한다. 엉뚱한 한자를 쓸 때도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진다. "별의 별 일들이 다 일어나요. 일종의 걸러내는 필터링 역할인데 제가 힘들어도 해야죠. 할 수 있는 한…" 기자들 또한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최 원장의 지론이다.

특히 편집장 직에 대한 최 원장의 지적은 매섭기만 하다. "잡지도 상품인데 좋은 상품을 만들지 못하면 어느 고객이 찾겠습니까? 우선 상품이 좋아야 팔리고 나아가 경영도 개선되는 것이죠." 미디어로서 잡지의 흥망성쇠 여부는 결국 편집장이 원초적 책임자라는 주장.

4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그는 그만큼 힘든 사실을 스스로 느끼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또한 많이 듣는다. '너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냐?'고. "내가 생각해도 미친 놈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하던 것을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는 거고, 에너지 배분을 해가면서 현명하게 조정해야죠."

그가 와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7년 쯤이다. 당시 프랑스 호텔에 파견돼 9개월간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때 와인을 처음 접한 것. "위스키도 없고 식탁에는 오로지 와인만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정반대지만 물론 와인 잡지를 처음 창간할 때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당시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하루 일과는 복잡다단하고도 분주하다. 발행인 겸 편집장 업무는 기본, 기자 및 칼럼니스트로서 잡지에 글을 쓰면서 아카데미와 외부 강의에도 나간다. 요즘은 책을 쓰느라고 더 바빠졌다. "힘들어도 매번 힘들다고 느끼면 나도 못하는 거죠. 가끔은 즐거울 때도 있고 신바람이 날 때도 있는 거고."

그래도 그는 일을 사랑한다. "힘들게 일하는 게 좋을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정리해야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랄까. 우리 시대 나 같은 사람이 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어디 젊은 사람이 외국의 고서나 책들을 뒤지면서 자료를 찾고 하겠어요. 안 해도 그만이죠, 욕 할 사람도 없고." '매일, 매달 더 좋은 잡지, 책을 만들지 못해 아쉽다'는 최 원장은 스스로를 '문화적 사업가'라고 정의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