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간염 퇴치 위한 공연… 차이코프스키 작품으로 축제 분위기 살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은 국내 남성 클래식 연주자도 섹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다. 클래식계의 영원한 미소년으로 불리지만 무대 위의 그는 바이올린이 가진 관능미를 극대화하는 연주자다. 여성 팬이 많은 이유도 이와 별개는 아니지 싶다.

단정한 헤어스타일, 하얀 피부, 해맑은 미소까지. 쉰 다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연세대학교 음대 교수실에서 마주 앉았다. 다섯 시간의 레슨을 마친 후여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간 미소는 여전했다. 그에게서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라곤 연주한 세월만큼 진해진 목 왼편의 바이올린 자국뿐인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 천재로 알려진 그는 세계적인 연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발행된 음악인 인명사전에도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아내와 딸이 있는 프랑스와 아들이 있는 한국을 축으로 연주활동 중인 그가 일년 중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세 달 정도다. 올 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수장으로서 한국을 찾았던 그는 프랑스에서 뮤직알프를 마치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희망콘서트를 위해서다.

"처음엔 10년이나 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그 해에 간염 백신이 만들어지면서 기획된 공연이었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그는 2000년 대한간학회에서 B형 간염퇴치 명예대사로 위촉된 후 10년간 희망콘서트를 이끌어왔다. 공연수익금은 전액 간염퇴치를 위해 쓰여졌고, 간염으로 인한 사망률도 해마다 크게 줄고 있다. 이 공연은 당초 간염으로 힘겨워하는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한다는 취지였지만 하나의 브랜드 공연으로서 남긴 음악적 성과도 기대 이상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을 비롯해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이 이 무대에 섰고, 국내 초연 곡도 적지 않았다.

"대중적인 곡도 많이 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곡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어요. 시벨리우스의 소품을 연주하기도 했고요. 오보에나 클라리넷 협주곡과 기타 협연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 프랑스 작곡가들을 좋아해서 자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10주년을 기념해 10월 말에 열리는 희망콘서트에는 오랜 음악친구들이 함께 한다. 첼리스트 조영창과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이 그들. 지난해 많은 호응을 얻었던 지휘자 히코타로 야자키와 클래시컬 플레이어즈 오케스트라도 호흡을 맞춘다. 공연 프로그램은 모두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으로 채웠다. 두 시간 남짓한 공연에서의 협연은 바이올린 협주곡 3곡과 첼로 협주곡 1곡, 피아노 협주곡 1곡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중 대중적이면서도 축제 분위기가 나는 곡으로 골랐어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3곡이 한 자리에서 연주되는 경우도 드문 일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음악감독, 음대 교수. 음악인생에서 10여 년 사이 그가 병행해 오고 있는 역할이다. 국내외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천부적인 연주자인 그는 꾸쉐빌에서 열리는 여름음악캠프 뮤직알프를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악축제로 키워낸 음악감독이다. 앞서 언급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와 희망콘서트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2000년부터는 연세대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음악은 인생의 일부'라고 그는 늘 말해왔다. 그러나 일부가 그다지 작아 보이지 않는다. "힘들진 않아요. 바이올린만 연주하다 보면 프레시함이 없거든요. 레퍼토리도 한정되어 있고요. 하지만 음악감독으로서 전체 프로그램과 테마를 정하고 연주자를 선정하는 일이 흥미롭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종종 행정 업무까지 해야 할 때도 있지만 하고 나면 보람이 있어요. 뭔가 도전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죠."

대중과 호흡하는 음악축제가 되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대중적인 곡들만 연주되는 건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음악 안에 연주자 나름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 연주자로서의 지론이 음악축제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좋은 연주자란 타고난 개성에 더해 깊이 있게 음악에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이끄는 음악축제에도 까다로운 기준을 부여한다.

예술적 가치와 대중성의 균형감각에 힘을 싣는 것도 그 이유다. "관객 동원을 위해 크로스오버 음악을 연주하고 싶진 않습니다. 아이들 키울 때 단 것만 좋아한다고 사탕만 주지 않죠.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영양에 균형을 맞추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16살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강동석. 벌써 40여 년의 연주경력을 헤아린다. 세월을 반추해보던 그는 "음악에 더 집중했으면 지금보다 좋은 커리어를 쌓았겠지만 인생을 다양하게 맛봤다는 데 만족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음악인생도 지금껏 그래왔듯 "유행을 좇지 않고 내면에 충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10월 19일부터 26일까지 희망콘서트를 여는 그는 11월과 12월에도 아시아에서의 협연이 예정되어 있다. 덕분에 올해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오랜만에 한국에서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