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39) 소설가 김지현 첫 장편집 '춤추는 목욕탕' 출간 여성 삶 통해 현대인의 소외 그려

소설가 김지현은 2000년대 작가들의 '발랄한 서사'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다.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2007년 단편집 <플라스틱 물고기>(문학동네 펴냄)와 지난 주 장편 <춤추는 목욕탕>(민음사 펴냄), 두 권의 작품집을 냈다.

매끄럽게 넘어가는 서사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 섬세한 인물 묘사는 '첫 단편집', '첫 장편집'이란 책의 겉표지를 자꾸 들추게 한다. 작가는 이렇듯 농익은 주제의식으로 여성의 삶, 여성으로 대표되는 현대 인간들의 소외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이 노련함이 역설적으로 그가 여타의 다른 신인들과 일종의 군(群)을 형성하기 힘든, 그래서 이제껏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하나의 이유가 됐다.

"2000년대 중반에 소설의 새로운 흐름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기존 소설 양식에 환상성을 접목시킨다든가, 장르문학과의 접점을 찾는다든가 하는. 저는 그런 코드를 찾기보다는 익숙한 관계에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의 소설에는 강인하고 본능에 충실한 여성들이 등장했다. 이를테면 식당에 찾아오는 여린 남자들을 열정과 폭력에 휩싸이게 하는 멧돼지 아줌마(단편 '멧돼지 이야기'), 술 석 잔에 겉잡을수 없는 쾌락에 빠져드는 엄마(단편 '나무 구멍'), 7년 만에 만난 알콜 중독 엄마를 이해하고 그녀의 쾌락에 기꺼이 동참하는 딸(단편 '털') 등이다. 작가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그가 몇몇 단편을 통해 드러낸 것은 '여성'을 키워드로 담아낸 소외된 타자들의 이야기다.

지난 주 출간된 <춤추는 목욕탕>은 작가의 의식을 보다 넓은 서사 공간으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작가는 "상처를 가진 세 사람이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혼 3년차 부부인 미령과 현욱은 여행을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현욱은 목숨을 잃는다. 3개월 만에 의식을 되찾은 미령은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령의 친정 엄마 호순은 뻥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중년의 아줌마다. 홀로 요양원에서 지내는 그녀는 미령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딸을 간호한다. 미령의 시어머니 박복남은 목욕관리사로 홀로 아들을 키웠는데, 아들의 사고 후 며느리와의 관계를 '청산'하며 그가 일하는 목욕탕의 쿠폰 3장을 주고 떠난다. 미령은 이 3장을 쿠폰을 들고 시어머니를 찾아 간다.

미령은 그의 눈에만 보이는 이구아나를 통해서, 호순은 허풍을 통해서, 복남은 무엇이든 쓸고 닦는 행위를 통해서 상실의 시간을 '각자' 견뎌낸다. 평행선을 달리는 이들의 소통은 '살과 살이 만나는 소리, 살이 살을 배려하는 소리, 살이 살을 이해하는 소리'(85쪽)를 통해 다시 시작된다.

"이 세 여인들이 연대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풀지는 않잖아요. '내가 당신을 만나서 치유됐다'기보다 '타인과 소통을 통해 스스로 치유 되는 과정'을 쓰고 싶었어요. 세 여인이 타인과의 부대낌을 통해 어떻게 자신들의 고통, 슬픔, 욕망을 관리해 가는 지를."

일련의 작품을 통해 작가는 소통의 과정을 그린다. '왜소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련한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는 방법은 고통을 피하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라고.(문학평론가 양윤의, 김지현 작품 해설 '탈피를 위한 온욕 매뉴얼' 중에서)

경쾌한 사유, 발랄한 이야기의 시대, 노련한 작가의 진중한 이야기에 주목해 보자.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