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 문화평론가'인문학, 세상을 읽다' 출간…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통찰

"눈앞에 닥쳐오는 파도도 봐야 하지만 하늘의 별을 좌표 삼아야 항해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해마다 100권이 넘는 책을 읽는 박민영(40) 문화평론가에게 독서의 의미를 물었다.

박 평론가는 "독서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거시적이고 세계적인 안목으로 나와 세계를 넓혀보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흔한 석·박사 학위나 명문대 졸업장 없이도 꾸준히 인문서(사회과학서)를 펴낸 몇 안되는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문학계에는 중졸 학력으로 교수까지 된 장정일을 비롯한 부류의 유명작가가 오히려 신비주의와 함께 유명세를 얻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공부로 인문서를 낸다는 것은 우리 출판 관행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예외적이다.

20일 서울 서교동 북카페 <토끼의 지혜2>에서 박민영 문화평론가를 만났다. 그는 월간 <인물과 사상>에 연재한 문화비평을 가려 모은 책 <인문학, 세상을 읽다>를 5일 펴냈다. 인문학의 시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통찰을 쏟아냈다.

박 평론가는 "사람에게 외부의 세계는 너무 넓어 다 알 수 없지만 책은 세계를 개괄해주고 보여준다"며 "책 안에서 자기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발견한다면 통찰과 혜안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인문학 책인가

"작게 보면 쓸모 없어 보이지만 크게 보면 쓸모 있는 겁니다. 거대한 가죽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어 목수도 지나치지만 결국 큰 나무가 돼 사람과 짐승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돼준다는 장자의 통찰과 같죠."

'인문학을 왜 그렇게 열성적으로 공부하나'라는 우문에 현답이다. 그도 독서와 인문학 공부가 당장에 쓸모가 없어 보인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자라기 전에 잘려 나가는 다른 나무와 달리 목숨이 붙어 결국 장기적 실용을 준다고 믿는다.

"독수리와 낙타의 시력은 6.0 정도라고 합니다. 탁 트인 데서 멀리 있는 뭔가를 응시하기 때문에 사람보다 시력이 월등히 좋은 것이지요.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멀리서 전체를 개괄해서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박 평론가는 이런 거시적·근본적 시각으로 나와 세계를 돌아보려면 철학·역사의 관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문명의 여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인문적 시각이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인문학이 있고 책이 있다.

그의 삶은 이런 이유를 증명한다. 박 평론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가족들과 함께 7살에 아버지의 고향인 목포로 낙향했다. 아버지가 사업 실패를 겪은 탓이다. 나이가 들어 책을 읽다 보니 그 시절은 70년대 중반 오일쇼크 시기였다. 세계 경제 대공황의 여파가 그의 가정에까지 불어왔다. 어머니께 '당시가 대공황 시기였다는 것을 아셨냐?"고 물어보니 "그 때 정말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평론가는 "경험한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공부 안 하면 모르는 것이 있죠"라며 "나와 세계의 관계를 알기 위해 인문서를 열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독서광으로 산다는 것은…

"아버지, 나 문학 할라요…."

박 평론가에게 인문학 공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88학번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김영삼 정부에서 진보진영의 몰락을 경험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촌부인 아버지를 찾아 포부를 밝히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유롭게 책을 탐독했다.

전남대 주최'5월 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기도 했던 그는 "잔재주는 있지만 큰 재주는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꿈을 접었다. 대학시절 문학 외에는 사회과학 서적 위주의 '학습'의 도구로만 책을 읽었던 박 평론가는 졸업 후에야 자유로운 책 읽기를 시작했다. 그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이 <논어>다. 그는 본격적으로 인문학을 파기 시작했다. 동양철학에서 서양철학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자연스럽게 읽기는 쓰기로 이어졌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논어>를 재해석한 원고를 들고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평범한 수도권 대학의 중문학과를 졸업한 그에게 출판사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논어는 진보다>는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헤맨 지 3년 만에 세상의 빛을 봤다.

<즐거움의 가치사전: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과 <이즘: 생각이 남긴 모든 생각>은 각각 2007년·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됐다. <책 읽는 책>은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참고문헌을 참고하라. 좋은 책이 오리라.

"자신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부터 읽기 시작하다 보면 지적 욕구가 연쇄 폭발하는 '독서빅뱅'의 단계로 이어집니다."

박 평론가는 어떻게 공부했으며 자신만의 비평 세계를 이룰 수 있었을까. 박 평론가는 '자신의 문제'부터 읽기를 권한다. 이성 친구와 헤어졌다면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부터 읽는 식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문제의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폭을 넓히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독서노트가 만들어진다.

"좋아하는 필자가 생긴다면 참고문헌을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책의 참고문헌은 책을 고르는 데 있어 말 그대로 좋은 참고가 된다. 관심은 애정을 낳고 애정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단기간에 좋은 책을 많이 섭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참고문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평론가에게 인문학에 대한 전반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은 이삼성 교수의 <20세기의 문명과 야망>, E.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리히 프롬 등이다.

그는 방법론에 불과한 처세서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 평론가는 자신만의 '네트워크 독서법'을 엮어 <책 읽는 책>(2005)으로 펴내기도 했다.

박민영 작가는…
문화평론가. 저술가.
<즐거움의 가치사전: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 (2007. KBS 선정), <이즘: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 <논어는 진보다> 외 저서 다수.
월간 <인물과사상>에 문화비평 연재. 한겨레문화센터 인문학 관련 강의.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