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김화영 문학평론가11년 만의 평론집 출간… 한국 소설 숲의 지형도 담아

'역사라는 건 석탄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지. 수많은 목재가 묻히지만,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은 조그만 덩어리에 불과해. 운명 앞에서, 역사 앞에서 개인은 조그만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쓰러질 때, 비로소 고귀해지는 거야.'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 지성사, 48페이지)

역사를 예술 혹은 문학이란 말로 바꾼다면, 비평은 그 조그만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쓰러지는 수많은 목재 같은 것일 게다. 위대한 비평가는 위대한 작가와 함께 태어나지만, 제 시대 가장 밝은 자리는 타인에게 내주어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비평가는 작가의 언어에 기대어 겨우 제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 불문학자인 김화영 선생은 바로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이다. 그는 알베르 카뮈와 미셸 트루니에, 장 그르니에 작품 등 90여 편의 프랑스 근현대문학 작품을 번역했고, 명민한 눈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여 왔다. 여전히 한국의 '거의 모든 소설'을 읽고 작가를 찾으며, 비평의 운명을 담담히 맞는다. 그는 얼마 전 출간한 책 서문에 '문학비평가, 문학교수, 그 밖의 전문가들은 단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썼다.

유려한 번역, 명민한 눈

"나이 먹으니까 책을 새벽에 읽게 돼요. 새벽에 일어나 책 보고, 얼굴에 찬 물 묻히고 또 책 읽고 늦게 아침 먹고 또 책 보고 글 쓰고. 하루 3번 강아지 산보시키고, 밥 주고. 오늘 아침에 108배 시작했는데, 그거 괜찮네요. 지구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니까."

인터뷰 전, 그의 서재에 들어서면서 일과를 물었다. 그 많은 책을 언제 다 읽고, 번역하고 비평을 썼을까.

"몸에 익으면 놀면서 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제가 그거 안 하면 뭐하겠어요? 다만 북한산 가을 전경이 좋은데, 올해 그 구경은 못 갔죠. 번역 작업이 남아서."

문예지 <현대문학>에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을 연재하고 있는 그는 인터뷰 전날 알베르 카뮈의 <시사평론> 최종 번역을 다 넘겼다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 전집의 마지막 번역 작품이다. 전체 20권인 카뮈 전집은 그가 1986년부터 매진해 온 번역 작업으로 올해 완간될 예정이다. 김 선생은 "앞으로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번역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화영 선생의 번역 앞에는 흔히 '유려한 문체'란 수식어가 붙는데, 이제는 고전 반열에 오른 프랑스 문학 작품을 오늘날 독자의 눈으로 재해석해 주기 때문이다. 명확한 표현, 작가와 합일을 이루는 문장, 작품의 탄생 배경과 행간의 의미를 짚어주는 해설은 많은 독자가 그의 언어로 프랑스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든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해 역시 '유려한 대답'이 뒤따른다. 나 좋은 것만 하니까.

"번역한 책 중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번역본을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낸 적이 많아요. 새로 낼 때 반드시 다시 번역해서 보내줬어요. 대조해보면 출판사 옮길 때마다 번역이 다 달라요. 작업할 때 다른 번역가 작품도 봐요. 프랑스어 뜻을 몰라서 보는 게 아니라, 더 정확한 표현이 있으면 참조하는 거죠. 단순히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였지만, 그렇게 해야 독자들이 신뢰를 하는 거예요."

프랑스와 한국문학, 두 흐름을 보는 일은 힘이 두 배로 들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두 배로 살아 있죠. 고전과 현대를 살아가니까."

나는 모든 책을 읽었노라

김화영 선생이 국내 독보적인 번역가임에 틀림없지만,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알려진 건 아마도 그 유려한 문체로 빚은 평론일 듯싶다. 그는 국내 어느 유파에서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국내 문학계와 지성계에 독특한 위치를 점해왔다.

그는 신간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문학동네 펴냄)에서 말라르메의 시를 인용하며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이 나라에서 발표되는 거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고 썼는데, 기실 그의 서재에는 최근 출간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집이 책상과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수북한 책 너머로 알베르 카뮈의 친필 편지가 눈에 띈다. 지인이 미국 경매 시장에서 구입해 선물한 것이란다. 서재에서 고전과 현대가 맞물린다. 두 배로 살아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곳은 시간의 켜를 안고 '문학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 그 책을 다 읽느냐고 묻자, "모든 책을 읽었다는 건 과장된 말이지만, 소설에 관한 한 정말 많이 읽었기 때문에 읽어야 할 책과 안 읽을 책을 대충은 안다"고 말했다.

선생은 <마담 보바르>나 <이방인>과 같은 작품은 수백 번을 읽었고 아직도 일 년에 한 번은 읽는다고 말했는데, 국내 문학 작품을 볼 때도 이 기준은 유효하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전부 시적인 작가"라고 말했다. 이렇게 작가를 발견하면, 40년간 읽어온 그 방대한 텍스트의 기억을 더듬어 작품의 의미를 찾고 또 찾는다.

"미끈하게 잘 쓰는 글이 좋은 문학이 아니에요. 전 '비문'이란 말을 비평에서 거의 안 쓰는데, 작가가 글을 못 써서 그런 문장을 쓰는 게 아니거든요. 그 불편한 부분에서 읽다가 생각을 할 거 아니에요. 그런 곳에 뭔가 보인다고요.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못 봤던 게 또 보이죠. 문학은 그런 거죠. 다시 보면 못 봤던 게 읽히는 것."

물론 비평가가 모든 작가에 애정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 최근 10년 간 문학계에 대해 '양적 증가는 놀랍지만,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173 페이지)고 썼다.

'서둘러 쓴 문장과 거침없는 줄 바꾸기,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모든 잡념을 여과 없이 속기한 컴퓨터 시대의 안이한 수다. 태를 부린 깨달음의 제스처, 요란하게 물들인 감정의 전시. 소설가로서의 기본적 역량 부족을 '실험정신'으로 포장해 놓은 난해한 산문.'(173~174페이지)

몇 해 전 이문열 작가와의 대담에서 그는 "(요즘 소설 중 대다수는) 책 덮고 나면 딱 70점이다. 문학은 90점은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작가군이 풍성해진 반면 시대를 대표한 작가는 사라졌다고 보는 건가?'란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잘 쓰는 작가들 많아요. 여기에 언급된 작가들이 그리고 이 책에 언급 안 된 작가 중에서 좋은 작가 많죠. 그런데 몇몇 작가들만 주목을 받는 게 문제인 거죠. 노벨상 받으면 외국에서 기억할까 해서 자꾸 노벨상 연연하는데, 노벨상 보다 1만부에서 5만부 팔리는 작가 20명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

신간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는 11년 만에 낸 평론집이다. 3페이지 남짓한 서문에는 지난 11년 간 김화영 선생이 그린 '한국 소설 숲'의 지형도가 담겨있다.

'이 나라 작가들이 쓰는 소설읽기는 많은 경우 나에게 주어지는 의무였고 즐거움이었고 희망이었고 굴레였고 중노동이었고 고통이었고…… 때때로 발견이었다. 나의 시간은 소설의 시간이었다. 나는 한국 소설을 통해서 세월의 무늬를 내 의식 속에 새기며 어떤 삶의 형식을 경험했다.'(5페이지)

그 10년의 세월 동안 발견한 작가와 작품을 그는 이 책 1, 2부에서 소개하고 있다. '소설 읽기 1'은 신경숙 장편<리진>, 조경란 장편<혀>, 윤대녕 단편집<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에 붙인 장문의 해설이다. '소설 읽기 2'는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현대문학 펴냄) 기획에 10여 년 동안 참여해온 기록이다. 박완서, 박범신의 작품부터 김연수와 하성란 작품까지 22편 소설에 붙인 짧은 해설은 그가 어떤 작품과 작가에게 관심을 쏟아왔는지를 알려준다.

거인의 어깨에 탄 난쟁이는 거인의 눈보다 까다로운 안목을 자랑하는데, 가령 김연수의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문장에서 '논리적 사족'을 지적하고, 단행본으로 묶일 때 이 부분이 수정된 사실까지 확인한다. 구효서의 단편 <명두>의 첫 문장(나는 죽었다)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첫 구절(오늘 우리 엄마가 죽었다)과 비교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해설을 내놓는다. 그는 3페이지 짧은 해설을 쓸 때도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작가가 작품을 쓰게 된 지점을 생각한다.

"어떤 작가는 재미있는데, 덮고 나면 쓸 게 별로 없어요. 그렇다고 내가 그 작가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말하자면 반드시 생각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비평을 쓰죠.."

선생은 서문에 '자세히 읽기와 동화비평의 수공업적 결합'이라고 썼는데, 이 말의 의미를 "나의 유일한 비평은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히 읽어야만 글 쓰는 사람과 하나가 되죠. 작가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같아지는 지점, 그때가 평론을 하는 시작인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만 비평하는 이유죠."

3부인 '한국문학의 안과 밖'은 한국 시단과 독서계의 일단을 짚은 글이다. 몇 해 전 방영된 MBC 오락프로그램 <느낌표>와 프랑스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를 비교한 마지막 글은 특히 인상적이다. 김화영 선생은 <아포스트로프>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의 입을 빌어 비평가의 역할을 말한다.

'비평가는 엄청난 서적의 기억을 소유하고 방대한 교양을 갖춘 것 이외에도 발견의 정신, 분석력, 그리고 진정한 작가적 재능을 겸비해야 한다.'(238페이지)

"작품 속 어딘가에 눈이 있다고요. 그 눈을 찾아 읽고 또 읽고…. 그 다음부터는 그 눈을 중심으로 저절로 풀리는 거에요. 그 눈을 찾을 때, 내 속에 이미 지금까지 소화했던 모든 것들이 녹아 비평으로 나오는 거죠."

'의무였고 즐거움이었고 희망이었고 굴레였고 중노동이었고 고통이었고…… 때때로 발견이었던' 그 지난한 작업에 선생이 평생을 매달리는 이유는, 그가 옮긴 이 한 문장이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공감이 아니라, 나타나엘이여, 사랑이어야 한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민음사, 23페이지)

김화영

문학평론가, 번역가, 불문학자

1941년 출생.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 문학박사 학위 취득

1980년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1997년~1998년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

2006년 정년퇴임 현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미셸 투르니에, 르 클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장 그르니에 등 작품과 알베르 카뮈 전집(전 20권), <섬>, <내 생애의 아이들>, <마당 보바리> 등 90여 권 번역

저서 <문학 상상력의 연구>,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등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