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수당(首堂) 김종국 화가고희전서 '현대 속의 전통, 전통 속의 현대' 주제 100여 점 신작 선보여

1- 유희(遊戱) 2009
"고희(古稀)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며 화가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우리 정신에 대한 탐구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화폭에 옮겨오는 어려운 과정을 겪어 오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이제야 비로소 스승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수당(首堂) 김종국(70) 화백은 지난 20일 열린 고희 기념전에서 50여 년의 화업을 회고하며 우리 정신에 대한 탐구와 스승 노릇에 힘을 주었다.

한국화가로는 드물게 동양화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자신만의 화풍(畵風)을 정립한 수당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고희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러한 김 화백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수묵담채와 견본채색화 70여 점과 도자기 작품 30여 점 등 100여 점의 신작에는 옛 것과 새 것을 아우르는 그의 온고지신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고희전의 주제 '현대속의 전통, 전통속의 현대'는 김 화백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셈이다.

더욱 자유분방해진 필선의 수묵화와 새롭게 선보인 도자기 작품은 10년 전 회갑 기념전 때보다 한층 완숙한 모습이다. <유희(遊戱)>라는 작품의 연꽃과 채색에서 보이듯 그의 그림들은 한결 여유롭고 넉넉해져 인생의 관조미를 느끼게 한다. 새로운 도자기는 그림과 조화를 이뤄 완숙미를 풍긴다. 특히 도자기는 이전 습작 수준에서 크게 발전, 예술성이 두드러지는데 본격적인 작품으로 나왔기 때문이라는 게 김 화백의 설명이다.

2- 소와 소년 1965 3- 견수성(見壽星) 2009 4- 매화 도자기
5- 연(蓮) 도자기
"10년의 시간을 쉼 없이 그리고 또 그리다보니 생긴 숙련의 덕이라고 할까요. 익숙해지니까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워지고, 거칠게 없어져요."

김 화백은 50여 년 동양화의 외길을 걸어왔고 화단에서 입지를 다졌음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것이 동양화의 깊이이고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동양화의 길에 김 화백을 이끈 사람은 한국화의 대가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다. 이당은 한말(韓末)의 마지막 어진화가로 인물화와 화조, 신선, 사군자 등에 두루 능한 당대 최고의 화가였다. 1950년대 말 이당은 국악양성소에서 대금을 공부하던 17세의 김 화백의 재기를 눈여겨 보고 그림을 권고한 후 이내 제자로 삼았다. 김 화백의 아호인 '수당(首堂)'은 이당이 "내 문하생 중에서 가장 빼어난 화가가 되라"는 격려의 뜻으로 지어준 것이다.

김 화백은 이당에게서 도제식 수업을 받으면서 서라벌예대에 입학, 소정 변관식에게서 산수와 어해 등을 배웠다. 김 화백이 서라벌예대를 졸업하자 이당은 그를 홍익대에 편입시켜 제당 배렴에게서 문인화와 화조화를, 심원 조중현에게는 새와 동물화, 금추 이남호에게는 풍속화를 배우도록 했다.

한국 근현대 대가들로부터 직접 배운 김 화백은 실력이 일취월장해 9회 국전(1960년)부터 14회까지 수차례 입선, 특선을 하였고 14회(1965년) 국전에 출품한 <소와 소년>은 사상계에서 선정한 선외선(選外選 )전에서 14회 국전 출품작 중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

김 화백은 20대 후반 무렵 이당의 권유로 전주에 5년간 머물며 은일도(隱逸圖), 신선도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전통적 수법 위에 현대적 조형력을 보태 인물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뤘다.

30대 중반에 서울로 올라온 김 화백은 점차 중견 작가로 자리를 잡으며 우리의 전통성에 시대의 미감을 반영하는 자기 양식을 개척해나갔다.

김 화백의 작품세계는 1997년 미국 전시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보여준다. 미국의 1급 화가와 동일한 평가를 받으며 타임지에 소개되는 등 언론의 주목을 받은 후 그림에서 색상은 더욱 정려해지고 필력의 호방함이 더해지면서 독자적 개성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의 이런 변화는 2000년 회갑전을 통해 43년 간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 묘사하고 분석하면서 배우고자 했던 자연과 삶을 보는 방법의 진화, 즉 본질에 대한 혜안을 얻어간 것이다.

이는 이번 전시에서 종심(從心)에 따라 작품을 완성한 형태로 발현됐다. 자연과의 교감, 자연과 인간의 조화, 동양적 명상 등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 것. 참새, 기러기에 표정이 있는 것은 김 화백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술평론가 최도송씨는 "자신을 성찰하는 수양적 태도를 시종일관 견지해왔기에 수당의 그림에서는 세태를 초월하는 예술정신이 배어 나온다"며 "기교를 초월한 완숙미에서 오는 표현의 자유로움이 높은 격조를 이루어낸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고희전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근간으로 현대적 미감을 수용하는 것에 고민했다고 한다.

"너무 전통을 고집하다 보면 발전이 없는 게 아닌가 싶어 변화를 주었는데 이를 알아 본 분들 중엔 좋다고 하는 분이 있고 오히려 전통을 지켜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서 나도 헷갈립니다(웃음)."

김 화백은 아무리 변화를 하더라도 전통의 본질은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일부 작가들 중에 붓을 맘대로 만들고 쌀포대 등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동양화의 전통, 정도를 벗어난 작업이라는 지적이다.

후학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김 화백은 "동양화의 전통, 본질을 지키면서 변화를 수용해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스승인 이당의 가르침도 전한다. "종이, 먹 많이 없앤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린다. 기교 부리지 말라"는.

근대 중국의 화가 제백석ㆍ오창석처럼 10만장씩 부단히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작가의 혼이 담긴다는 것이다. 김 화백은 제자들에게도 그 같은 열정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창작도 불가능함을 강조한다고 했다.

김 화백의 고희전은 서울 남영동 크라운해태 쿠오리아갤러리(02-709-7404)에서 11월 30일까지 열린다.

수당 김종국 화백은…
1940년 서울생. 이당 김은호 사사(1958). 서라벌예술대 동양화과 졸업(1962).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1964), 국전 입선 동 6회 특선(1964), 백양회 공모전 특선 2회(1965),덕원미술관작품전(1994), 미국 Seattle 베로스키나화랑 초대전(1997), 독일문화원 초대전, 독일 바이로이트시 시청 갤러리 초대전(2002), 크라운.해태 쿠오리아 갤러리 고희전(2009), 대한민국서법학회 공모전 심사위원장(1999), 군산교육대 강사(1971), 부산여대 강사(1975),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예술원 출강(2001)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