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식 감독영화 '샘터분식' 낮은 곳에서 각자의 꿈꾸는 소시민의 모습 그려

"이들을 루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그들의 문제가 나의 문제이고, 그들의 고민도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루저(Loser·패배자)'논란으로 인터넷이 뜨겁다. 대중의 광분은 일면 이해할 만도 하다. 소수의 위너(Winner·승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루저의 위치에 처하게 되거나, 루저의 가능성을 안고 사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의 문제만 빼면 말이다.

이 와중에 노동운동에 집중하던 한 독립영화 감독이 '낮은 곳'에서 각자의 희망을 꿈꾸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태준식(35) 감독이 내놓은 영화 <샘터분식>이다.

태 감독은 2007년 11월부터 1년여 동안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평범한 식당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의 평범한(?) 세 사람에게 렌즈를 들이댔다. '불안해 불안해'란 노래를 부르는 20대 힙합 뮤지션, '돈 안되는 고민'만 하는 30대 지역 활동가, '백반 값보다 비싼 커피 값'에 경악하는 40대 분식집 여사장이 그들이다. 노동운동의 현실과 인권 문제를 다루던 그는 왜 갑자기 도심 속 작은 마을과 사람에 집중하기 시작했을까.

태 감독은 "소수자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지만, 이들은 다 자기 안에 나름의 소우주가 있죠"라며 "이들의 작은 일상과 가치를 기록하는 것은 이해와 연대의 가능성을 늘리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희망이 될 것"이라고 요약했다.

"희망은 아래에 있다"

"위를 바라보는 게 무슨 희망이 있나요. 사는 사람들끼리 쳐다보는 게 희망이지."

영화 <샘터분식>에 나오는 '샘터분식' 아주머니의 독백이다. <샘터분식>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작은 것을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때로는 성취를, 때로는 좌절을 겪는다.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힙합가수 제리 케이는 학업을 중단하고 1집 음반을 내놓지만, '88만원 세대'로서의 현실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정신적 괴로움을 겪는다. 지역활동가는 '민중의 집' 완성이라는 성취를 얻었지만, 지지했던 민주노동당 총선 후보의 낙선과 이명박 정부의 탄생에 좌절한다. '

샘터분식' 아주머니는 무가지를 뒤적이다 손님을 받고 환한 웃음을 짓지만, 밥값 500원 올리기를 몇 해째 고민 중이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은 아래에 있다"고 확신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죠. 그들을 루저라고 타자화할지 몰라도, 그들의 일상과 꿈을 찬찬히 살피면 내 삶의 불안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될 거에요. 그들과 우리의 삶을 연결하고, 만나고, 기운들이 모아지면 세상은 확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도 우리처럼"

영화의 한 장면. 한 할아버지가 길가에서 소낙비를 피하려 옷가게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한다. 몇 초도 못 가 점원이 "문을 가리지 말라"며 타박한다. 할아버지는 얼른 다른 가게의 처마 밑을 찾아 비를 피한다. 영화에 나오는 루저(?)의 일상은 태 감독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제리 케이와 지역 활동가는 '샘터 분식'에서 '고식(孤食)'을 하고서도 꿈을 찾아 가게 문을 나선다.

<샘터분식>의 부제가 '그들도 우리처럼'인 이유 아닐까.

"이른바 '먹고사니즘'에 정신이 팔려있어 사회적 연대가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의 일상을 좀더 궁금해 해 본다면 어떨까요. 제 작품의 출발점은 거기에 있었어요."

태 감독의 삶도 그리 다르지 않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동아리에서 영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16mm 카메라를 들고 노동현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꿈꾸는 삶을 산다. 하지만 주말이면 기업 홍보영상을 찍기 위한 목적으로 카메라를 잡기도 한다.

"충무로 안가고 영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게 원래 꿈이었어요. '노동자 뉴스 제작단'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한 대기업 총수 기념관에 들어갈 홍보동영상을 찍기도 했죠. 제게 있어 영화는 표현의 도구이지만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소수자 기록으로 세상을 바꾸는 가치 생산할 것"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조그만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소소한 친구의 말 한마디에서 위로를 얻듯이, 저도 그들의 더불어 사는 삶과 서로에 대한 응원에서 위로를 얻었으니까요."

'강성'영화만 만들던 태 감독이 작은 것을 찍기 시작한 이유는 그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샘터분식> 촬영을 시작한 시기는 이른바 보수정권이 출현한 때였다. 진보주의자인 그는 우울해졌다.

"도시 구석탱이"에 있는 자신의 누이와 같은 이들의 일상에서 안식을 찾고자 했다. 다큐멘터리만 고집하는 그에게 '기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소수자, 혹은 루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세상을 바꾸는 데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상자료원에 있는 메인 스트림(주류)의 이야기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된다는 태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 큰 이야기나 대단한 눈물과 웃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며 영향을 주고받는 데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주 자그맣게 옆에 있는 사람들의 희망을 키워나가는 게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돌아보는 것은 결국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죠. 사람 안의 각기 다른 소우주가 서로 충돌하고 영향을 미치면서, 덩어리가 만들어질 거라는 기대를 안고서요."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