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가 김현성동물 복지, 환경 보호 말하는 1인 패션 미디어 <oh, boy!> 창간

바벨탑이 아직 하늘에 닿기 전, 터를 고르고 벽돌을 찍어내는 초창기에는 관계자들의 의견 충돌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높이가 해결되면 폭이, 폭이 해결되면 재료가, 그게 해결되면 벌 받을 짓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그러나 건물이 한층한층 올라갈 때마다 반대는 점차 줄어들었다.

탑의 으리으리한 위용은 정말로 하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거니와, 이제 와서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간 것도 사실이다. 양심은 굳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언젠가부터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벽돌을 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탐미주의자의 절제

김현성은 패션 사진을 찍는 사진 작가다. 코트, 드레스, 구두, 머플러, 주얼리 등등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패션 아이템들이 매달 그의 스튜디오로 배달된다.

그는 찍고 또 찍는다. 가장 아름답게, 보는 사람이 완전히 매혹되도록, 그러니까 당장 사고 싶어 안달이 나게 하는 사진을 찍으면 그의 임무는 완수다. 한국의 유명 패션 잡지에 모두 김현성의 이름이 오르는 요즘 그는 잡지를 하나 창간했다. '소비를 조장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즘의 패션에 반대한다'면서.

"패션 잡지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내적 갈등이 항상 있었어요. 지금 당장 이 옷을 입고 저 화장품을 바르지 않으면 바보가 될 거라는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거든요."

그를 본격적으로 괴롭힌 것은 모피 사진 촬영이었다. 모피는 수많은 패브릭 중에서도 가장 탐미적인 오브제로 사진가들에게는 최상급 모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 있어 모피의 아름다움은 동물의 죽음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못 되었다.

그 아름다움이 전 세계인을 감동시켜 수억의 경제효과를 불러 일으키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란다. 기르는 강아지 때문에 저녁 약속까지 포기할 만큼 그가 끔찍한 애견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패션이라는 명목으로 고통받는 게 부당하다고 여겼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문화를 발전시키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발전할 거라면 차라리 좀 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주변은 어떻게 돼도 좋다는 식의 발전이 의미가 있나요."

패션 잡지 는 1인 미디어다. 그가 기획하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인터뷰도 한다. 심지어 난생 처음 광고 수주도 해 봤다. 지난 달 창간호가 나왔을 때는 지인들과 함께 차 4~5대에 1만부를 나누어 싣고 서울 120여 곳에 뿌렸다.

그렇다고 얇게 만들지도 않았다. 대략 150 페이지가 넘는 두께다. 생각보다 큰 일이라 그도 몇 년 동안 구상만 해 왔다. 그러나 모피 광고를 찍어 동물 보호 단체에 수익을 기부할 정도로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이라면 차라리 내가 해서 동물을 위한 일에 쓰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생각과 현실의 아귀가 어긋나자 점차 한계를 느꼈다. 결정적으로 올해 초 자식처럼 기르던 강아지가 죽음을 맞으면서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잡지 만들기에 착수했다.

Oh! What about our planet?

이렇게 나온 는 겉으로는 잘 빠진 패션 잡지다. 표지는 국내 남자 모델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수혁이 섹시한 포즈로 장식했고, 창간호 주제인 '서울의 패션을 만드는 사람들' 기사에서는 스타일리스트 김봉법, 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 등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패션계 유명 인사들의 '엣지 있는' 사진이 실렸다.

맨 뒤에는 연예인 화보가 있다. 창간호는 소녀 시대 서현, 탤런트 송중기, 가수 윤상 등의 화보와 인터뷰가 장식했다. 화장품, 영화, 책 소개도 간략하게나마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구석구석에 하고 싶은 말을 잘 숨겨 놓았다. 잔소리로 들릴까 봐 은근하게, 하지만 차마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도록 집요하게, 그가 몇 년 동안 참았던 말들을 조근조근 풀어 놓고 있다.

모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이들에게는 캐나다 물범의 구름 같은 솜털을 얻기 위해 다 자라지도 않은 새끼를 잔인하게 때려잡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최고의 고기 맛을 탐하는 사람들에게는 쇠고기 1kg을 먹기 위해서는 1만리터 이상의 물과 23kg의 곡식이 소모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불어 인류가 육식을 30%만 줄여도 지금의 기아 문제는 깨끗이 해결된다는 사실도. 뒷장에는 집에서 간단하게 해 먹는 채식 요리 레시피를 담았고 몇 장 더 넘기면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뷰티 브랜드의 제품들을 소개해 놓았다. 모피 사진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신발도 천연 가죽 대신 인조 가죽, 아니면 천으로 만든 신발을 선호한다.

"예쁜 옷을 좋아하고 사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육식 반대를 위치는 잡지도 아니고요. 저도 육식을 해요. 다만 나 말고도 같이 사는 개체들을 생각하면서 소비했으면 하는 거에요. 어렵죠, 너무 어려워요. 예쁘게 찍어 놓고 너무 빠지지는 마세요 하는 격이니. 그래도 제 생각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불쌍한 물범의 힘인지 소녀시대의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창간호는 배포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전부 나갔다. 곧 이어 작가의 메일함은 잡지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메일로 폭주했다.

그를 기쁘게 만드는 것은 메일들 중 동물 보호와 환경에 생각을 같이 하거나 같이 하게 된 사람들의 메시지다. 그것도 어린 친구들이 그런 내용을 보내올 때면 희망에 부푼다. 같이 하는 사람들은 이들뿐이 아니다.

패션 브랜드 구호는 잡지의 창간 취지를 듣고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인 '구호 플러스'의 모든 옷에서 모피와 가죽을 제외시켰다. '의식 있는 잡지'라는 이미지가 구축되자 화보 촬영이나 광고 수주도 조금씩 쉬워졌다. 이미지에 편승하려는 것이라고 해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런 것들이 대세 변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패션의 퇴화다. 천재 디자이너들의 빛나는 감성과 그에 따른 어마어마한 경제효과와 맞바꿀 만큼 개나 곰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미적 판단'에 대해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고 모든 일을 주관적 편견 없이 그 자체의 진정한 가치에 따라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정의 내렸다.

17세기에 살았던 그의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지금 패션의 가치에 대해 김현성만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이는 없을 것 같다. 2호는 이번 달 27~8일경 발간 예정이다. 2호 표지 모델은 샤이니의 민호다. 팬들이 쓸어가기 전에 빨리 집어가지 않으면 구경도 못할 수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