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곤 감독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춤'에 쿠바 한국인의 역사와 사회 담아

백 년 전 배 한 척이 제물포항을 떠났다. 멕시코로 향하는 '일 포드'였다. 천여 명의 한국인과 그들의 운명이 실려 있었다. 4년간 멕시코에서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광고를 믿은 사람들이 배에 올랐다.

원래 가축을 나르던 배였다. 항해 중 고생은 시작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사기였다. 멕시코에 도착한 그들은 유카탄 반도로 보내졌다. 살아남기 위해 질기고 거친 에네껜을 잘라야 했고, 대가는 초라했다. 대부분이 노예처럼 살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3백 명 정도가 쿠바로 건너갔다.

그렇게 쿠바에도 한국인들이 살게 됐다, 는 것을 알게 된 송일곤 감독은 쓰던 시나리오를 덮었다. 쿠바를 배경으로 한 멜로 영화를 구상하는 중이었다. 먼저 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여비를 마련하고 정보를 모았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요량이었다. 지난 4월 쿠바에 갔다. 4주 동안 네 도시를 다니며 쿠바의 한국인들을 만났고 60시간 분량의 영상을 찍었다. 돌아와 92분간의 <시간의 춤>을 엮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10여 명은 쿠바에 사는 한국인의 역사와 사회를 추리고 추린 결과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보다 더 오래되고 많은 것, 깊고 넓은 것들을 증언한다.

전 세대가 이주와 가난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지킨 지혜를 물려 받았기 때문이다. 쿠바의 혁명을 거치며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아름다운 삶에의 의지와 주변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올해 84살인 박영희 할머니. 그의 어머니가 부모에 의해 나쁜 남자와 결혼한 것이 연원이다. 자신을 중국 사람에게 팔아 넘기려는 남편을 피해 일 포드를 탄 어머니는 배에서 만난 남자와 새 가정을 꾸렸고 박영희 할머니를 낳았다.

그리고 그의 딸 알리시아는 지금 쿠바에서 가장 주목 받는 화가다. 영화는 알리시아의 강건한 그림을 바라보며 백 년 전 한 여자의 사연을 되새긴다. "그녀의 결정이 지금 알리시아를 당신(관객)과 만나게 만들었다. 시간과 인연은 놀라운 것이다."

크리스티나 할머니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헤로니모 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 포드에 오른 이는 헤로니모 임의 아버지 임천택. 그는 팔에 태극기 문신을 새겼고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념과 강인함을 가르쳤다. 헤로니모 임은 독재 정권에 대한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저항을 함께 했다. 혁명이 성공한 후 농림산업부 격인 '설탕부'의 차관이 되었다.

송일곤 '시간의 춤'
그리고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마음 속의 생각들은 불타오르는 사랑과 애정이 살고 있는 전설의 거대한 그림과 같은 금빛 액자입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한 생을 다 바쳐 당신을 축복해온 사람이며, 가슴 속 행복과 사랑의 꽃을 위해 열정적으로 씨를 뿌렸던 사람입니다."

전 세대로부터 신념과 강인함을 물려 받지 못한 사람이, 이상을 품고 세상을 바꾸는 데 몸 바쳐보지 못한 사람이, 그런 열정과 의지를 갖지 못한 사람이 이런 문장을 떠올릴 수 있을까. 편지를 읽어주는 크리스티나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힐 때, 우리는 그것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한 인간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송일곤 감독이 <시간의 춤>에 담아 지난 3일 개봉한 쿠바의 여정은, 영화 속 노래 가사처럼 "역사로부터 당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체 게바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으로 대표되는 쿠바에 대한 동경이 출발점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경험해본 쿠바는 어땠나.

쿠바 혁명은 미국이 자국을 욕망의 배설구로 만드는 데 저항한 것이었다. 카지노가 들어서고 성매매 산업이 융성하는 등 자국 문화가 미국 자본에 잠식당하는 것에 맞서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에 자본의 나쁜 영향, 예를 들면 약자들이 보호 받지 못하는 일 같은 것은 좀 적은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국가를 무척 사랑한다. 그게 느껴진다. 한국사회에서 산 나보다 삶의 가치를 더 많이 이해하고 느끼고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혁명에 성공해 본 사회의 특징이 아닐까.

국가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감정이 다른 것 같다.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밑으로부터 혁명에 성공했으니 스스로 만든 국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무리 가난해도 낙천적이었다.

반면 동경과 어긋난 현실은 무엇이었나.

가난하기 때문에 다시 자본의 유혹에 노출되는 모습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해안인 바라데로 해안에는 외국 자본으로 지어진 호텔들이 빼곡하다. 쿠바인들은 아예 못 들어간다. 그런데 또 거기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쿠바를 먹여 살리는 게 관광 산업 아닌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체 게바라가 만들고자 했던 국가가 이런 곳은 아닐텐데,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중요하게 느껴졌던 장면 중 하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러 세대를 모아놓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일종의 구술문화랄까. 저런 공동체 문화를 통해 역사가 이어지고, 삶과 죽음과 사랑이 나누어지는구나 생각했다. 그게 쿠바의 보편적인 문화인가.

확신할 순 없지만, 이 점만은 말할 수 있다. 쿠바에는 유리창이 없다. 유리가 비싸기도 하고 바람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여러 개의 나무판을 비스듬하게 띄엄띄엄 이은 창이 있다. 그래서 이웃간에 소리가 다 넘나든다. 고기 굽는 냄새도 전해지고.(웃음)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내가 머무를 때도 늘 옆집서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생활 공간 자체가 혼자만의 장소를 갖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인데다,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소유의 개념이 약하다는 점이 한국과 다른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번 작업이 감독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쳤겠다.

워낙 행복의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쪽이다.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 같은 주변 것들을 목표로 살고 싶지는 않다. 삶의 가치를 찾으면 확실히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들은 조금 먼 곳에서 기적처럼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어떤 모습에서 '기적'이란 단어를 떠올렸나.

너무나 일상적인, 세속적인 모습들에서였다. 남편이 아내에게 시를 읊어주고, 여럿이 함께 모여 노래 부르고 춤추고... 보통 해외 동포들은 슬프고 힘들게 살았을 거란 편견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멋있고 당당하게 살고 있었다. 삶의 철학도 깊고. 삶의 철학이 대단한 게 아니라,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인식이잖나.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하는. 거의 노예와도 같았던 사람들이 몇 세대를 지나며 이렇게 멋있게 살아 있다는 것, 그런 게 기적이지.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