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시인1년 6개월간 아픔과 성처 있던 장소 찾는 과정과 사유 책으로 엮어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과거의 아픔이 있는 장소로 여행을 떠났어요.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마주서서 온전히 자기자신과 만나고 싶었던 거죠."

지난달 25일 여행산문집 <낯선 길로 돌아오다>를 펴낸 '따뜻한 흙'의 시인 조은(49)씨의 말이다. 그는 1년 6개월여 동안 자신의 아픔과 상처가 있던 장소, 혹은 그에 대해 생각하기 위한 장소를 찾는 독특한 방식의 여행을 시도했다. 그 과정과 사유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벼랑 끝에 서다> <조용한 열정> 등의 산문집 제목과 '주검' '무덤' '모순' 등의 시어에서 드러나듯 그는 '오랜 세월 그늘에 뿌리내리고 죽음을 응시하며 살아온 작가'로 불린다. 서울 사직동 조그마한 한옥에서 유기견을 반려동물로 키우며 시를 쓰는 조 시인을 지난달 31일 종로구 내수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조 시인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나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여행은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마주서는 방법"이라며 "내게 있어 여행은 난독의 대상인 세상과 철저히 대면하는 생존방식"이라고 말했다.

"낯선 길로 돌아오며 현실과 마주서다"

"집은 답답하고 참견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현실에서는 관여하는 목소리들이 많으니까 1대 1로 나를 만나는 여행이 필요한 거죠."

'될 수 있으면 혼자 여행하려 한다'는 그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현실의 자신을 가장 객관적으로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길 위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따라 여행한다.

조 시인은 세상을 등진 친구와 얽힌 아픈 경험을 생각하며 강원 삼척으로 떠났다. 삼척은 원래 친구와 여행을 떠나려던 곳이었다.

그는 생각의 지평을 넓히며 망자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비로소 친구에 대한 '미련' '후회' '회한'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배가 파도에 쓸려가지 못하도록 밧줄을 걸어놓는 쇠말뚝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름 알기를 포기하는 순간, 나는 비록 보잘 것 없으나 소중한 것들에 묶여 이처럼 중심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 가족, 신의, 양심, 미련, 후회, 심지어는 회한과 분노까지도 내가 암흑세계를 떠다니게 내버려두지 않고 쇠말뚝처럼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는 생각으로 정신이 멍해진다.' - 책 중에서

"곁에 두고도 보지 않던 것에서 깨달음을 얻다"

"동행자가 있으면 얘기를 함께 하고 호흡을 나누며, 공통의 화제를 느낄 수 있죠. 안전도 더 보장받지요. (웃음) 하지만 시선을 변화시키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를 놓치기 쉬워요."

그가 처음 여행에 매료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 가족과 함께 떠난 바닷가에서 본 붉은 태양의 이미지였다. 자신만을 위해 수평선을 가르는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며 그는 새삼스러운 것들에 집중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해인사를 여행할 때는 법고 시간을 기다리며 화단 앞에서 꽃봉오리를 '탐미'하는 개미조차 달리 보였다. 작고 느린 개미들의 여왕개미를 죽이는 가장 치열한 종족싸움을 보며 정치적 인간을 사유한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 3층 석탑의 모서리에 손을 얹으며, 자신과 비슷하게 갈망하는 마음으로 손을 얹었을 사람들의 켜켜이 앉은 삶을 생각한다.

그는 시각적 만족에서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그의 여행이 '치유' 이상의 의미인 이유다.

"사람에게 배우는 여행"

"낯선 이들에게 거리낌 없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해요. 생각의 틀이 완고해져서 타인이 들어오지 않는 시기에, 여행은 자기 형체를 걸러내고 한 인간으로서 완성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조 시인은 겁이 많은 편이다. 문지방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여행지 숙소에서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조 시인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에 의미를 둔다. 경운기를 얻어 타고 민통선 안의 농가를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며 만난 이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면 철저히 구경꾼으로 다니고 있는 것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시선을 높이 두지 않아야 허리 구부러진 할머니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피고지는 꽃과 잎들을 철저히 바라보는 과정이 자신의 삶에 양분이 될 수 있다. 그는 '살아가면서 가치가 흔들리거나 왜곡될 때' 자신을 찾는 여행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있을 때, 삶이 삐걱거릴 때, 너무 달콤한 생활이 불안할 때"라면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한 때라고 한다.

"당분간 남산을 더 다닐 생각이에요. 큰 것에만 대단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큰 것도 결국은 작은 게 많아진 거잖아요. 그렇게 보면, 우정이나 회의 같은 작은 감정도 다 소중해져요."

조은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등 삶과 죽음을 통찰한 시로 등단.

시집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무덤을 맴도는 이유> <따뜻한 흙> <모순> 펴냄. 시설(詩說) <빈방들> 저술.

산문집 <벼랑에서 살다> <조용한 열정> <낯선 길로 돌아오다> 엮음. 산문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공저.

동화 <햇볕 따뜻한 집> <다락방의 괴짜들> <동생> <으뜸 누리> 창작. 신문 여행칼럼 연재.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