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 자유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제시

"권력에 맞선다고 자유가 주어지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죠. 신자유주의 체제가 공고해져 자유를 더 억압받게 되거든요. 자기계발의 관점에서 하는 개인적 선택들을 거시적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어야 해요."

2002년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법정투쟁, 연이은 성정치학의 주창으로 주목받았던 서동진 문화평론가(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가 자유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책으로 묶어 다시 나타났다. 지난달 23일 발행된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펴냄)가 그것이다.

서 교수는 민주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대중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서 자기계발의 사회를 추동하는 자유담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민주화로 자유를 실현했지만 대중은 더 심한 구조적 억압에 놓이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처하게 된다는 관점이다.

서 교수는 "민주화, 반국가주의, 반권위주의, 훈육사회 비판 등의 자유 담론이 사회변혁보다는 새로운 자본의 지배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개인적 선택과 사회구조의 관계, 자유의 이미지와 실체에 관해 거리를 두고 고민해야 할 때"라고 요약했다.

"자유의 의지가 당신을 자유롭게 했나요"

"정치세력을 변화시키면 삶의 방식도 바뀔 것이라는 게 민주화의 꿈이었죠. 민주화를 이뤘지만 그토록 갈망했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서 교수는 그동안 민주화의 방법으로 여겨져 온 여러 투쟁이 오히려 신자유주의 체제를 공고화시키는 '시녀' 역할을 해왔다고 지적한다. 시민사회 진영의 소액주주운동이 오히려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데 부역했다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논리에 비견할 만하다.

서 교수는 워크 페어(workfare•일하는 조건의 공적부조)나 마이크로 크레딧(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 역시 신자유주의의 공고화를 돕는다고 여긴다. 자활의지가 있는 사람에 대한 선별적 윤리 행위는 결국 신자유주의의 질서를 희망 없는 빈곤계층에까지 학습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시민사회운동은 공동체의 문제를 시민 스스로의 동원으로 지배하겠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본다. 이는 국가 권력을 약화시키고 권력화한 자본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학계가 국가보다 '(글로벌) 거버넌스'에 더 주목하는 이유다.

서 교수는 책에서 "개인의 자유의 소망 아래 세워진 이 경제질서의 궁극적 토대는 사실상 실업, 불안정 취업, 해고위협에 의한 공포 등의 구조적 폭력이다"라는 부르디외의 통찰을 인용하기도 했다.

"자기계발의 의지 바로 봐야"

"희망, 능동, 생산적 복지라는 신조어는 국가의 성장이 개인에게 혜택을 돌려준다는 기약 없는 국민담론을 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IMF 외환위기 때 국가가 변화된 세계질서에 적응하면 국가도 살고 국민도 살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빈곤계층에게는 구조조정, 민영화, 노동 유연성 등을 통한 구조적 억압과 폭력이 더 강고해졌다는 점 역시 그의 논거다.

미셸 푸코의 '계보학'에 연원을 둔 그의 분석은 신교육체제가 공장제학교와 같은 권위주의적 교육을 비판하고 학습자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의 기획이었으며, 이런 관습이 국가인적자원 개발계획에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신지식인운동, 제2건국추진위, 신교육체제, 국가인적자원개발계획, 7차 교육과정 등으로 계승됐다는 것이다. 대중을 신자유주의 체제에 적합한 인간으로 훈육하는 방편이었다는 해설이다.

그는 사회구조에 순응하는 개인의 '자기계발의 의지'에 주목한다. 젊은이들은 '스펙'을 관리해 자기를 자기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과'커리어 플랜'에 골몰한다. 서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자기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자본의 지배에서 비롯한 훈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터에서는 기업문화, 권한위임, 경력개발, 연봉제 등의 성과배분제, 다면평가제와 목표관리제 등이 자기계발의 사회를 공고화한다.

넘쳐나는 자기계발•심리학 서적은 문화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자유에 대한 근본적 성찰 다시 시작해야"

"자유의 이상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어긋나버린 정치적 보편성의 하나입니다. 자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대안입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거대 자본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기존 권위를 하나씩 해체해나가고 있는데 반해, 개인은 무비판적으로 이를 따르고 있다. 사회전체가 개인을 관리하며 전체화를 유도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를 버리라는 소리인가. 서 교수는 책에서 "자유라는 허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대안이라고 조급히 결론 내려서는 안될 것"이라며 "반성과 비판의 근본적 조건인 자유로부터 물러서면 안 된다"고 밝혔다.

자유를 지지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이분법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유의 동원을 문제화해, 자유가 지닌 위험을 알리고 비판하는 자유의 정치학을 고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혁명적 전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힘, 즉 질서•전문가•기관•사회운동 등에 의해 조율되는 구조적 원리인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자기훈육적인 개인의 선택이나 대안적 국가모델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더더욱 없죠. 모델의 발견이 아니라 분노의 실현이 대안이라고 봅니다."

서 교수가 이벤트화된 운동, 정책은 있으되 정치는 없는 시민사회, 논쟁다운 논쟁 없는 학계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서동진 교수는…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당비의 생각> 기획주간.

연세대 사회학과,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전 계간 <리뷰> 편집장. 전 <당대비평> 편집위원. 웹진 <컬티즌> 창간 멤버. 대안청소년센터 하자센터 창립 멤버.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 <록, 젊음의 반란>, <디자인 멜랑콜리아> 등 저술.

<혁명의 문화사―프랑스 혁명에서 사빠띠스따까지>, <문화읽기: 삐라에서 사이버문화까지>,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 등 공저.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 번역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