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오디션' 민경조 감독10여 년 만에 '오디션' 개봉… 정부 지원의 선택과 집중 꼭 필요

"애니메이션 후발주자인 중국은 TV 전 채널에서 황금시간대인 오후 6~9시에는 자국 콘텐츠만 방영하며 제작비의 50%를 돌려줍니다. 방송사로부터 대개 제작비의 10% 이하만 받는 국내 현실에서 정부 지원의 선택과 집중이 절실합니다."

만화 <달려라 하니>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연출했던 민경조(47) 감독이 제작 착수 10여년 만인 지난달 21일 애니메이션 <오디션>을 개봉했다. 제작 초기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인데 비해 단관 개봉으로 아쉬움을 사고 있다.

<오디션>은 순정만화작가 천계영(39) 원작만화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여 동안 만화잡지에 연재됐다. 총 120만여 권이 팔린 히트작으로 당시 H.O.T. 등이 등장하며 처음 유행하기 시작한 아이돌 그룹의 패션과 문화를 반영한 작품이다.

29일 자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라스코 엔터테인먼트에서 마주한 민 감독은 긴 터널을 지나온 뒤의 후련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소감을 묻자 '시원 섭섭'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민 감독은 "우리 애니메이션의 침체를 방송사 정부 업계, 어느 한쪽의 문제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이라도 정부지원의 선택과 집중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요약했다.

"선택과 집중 없는 지원은 하나마나"

"세계적으로 진출하려면 질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죠. 하지만, 긴축예산이 일반화해, 제작사가 광고 마케팅 수익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투자규모가 크고 자금회수가 오래 걸리는 애니메이션을 살리려면 선택과 집중에 의한 지원밖에 출구가 없어요."

선택과 집중이냐, 다양성의 확보냐. 정부의 문화콘텐츠 진흥책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거리다. 지난한 과제다. 그러나 민 감독은 자국 애니메이션에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는 중국,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강국인 미국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에 의한 지원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 경험에 답이 있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초반 애니메이션은 '산업화' 대상으로 각광받으며 제작 붐을 이뤘다, 그러나 일부 애니메이션의 극장 개봉 실패 등으로 투자자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소액의 지원금을 분산 투자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수십억 원이 드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포기하는 업체가 하나 둘 늘었다.

2000년 11월 제작발표회를 했던 <오디션>도 실제 가수 오디션 등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투자회사로부터 당초 예정의 절반인 5억여 원밖에 투자받지 못했다. 100여명에 달했던 직원은 10여명으로 줄었다.

민 감독은 다른 제작을 통해 얻은 이익금과 사재를 털고 나서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오디션>으로만 보면 제작과 휴식을 반복했다. <오디션>은 완성 후에도 배급망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어 2년여가 지난 후에야 개봉했다.

"TV시리즈로 먼저 만들고 극장용 시도해야"

"만화가 성공하면 TV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먼저 띄우는 게 순서입니다.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고 작품 인지도를 올린 후에 극장용으로 만들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민 감독이 정부 탓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만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가는 제작과 마케팅 과정의 체계화 필요성 역시 절감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와 달리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기 때문에 규격화되고 다듬어져야 한다.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에서는 이런 과정이 이미 '공식화'돼있다는 설명이다. 민 감독은 1986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동화 스튜디오인 도에이 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만화에서 바로 극장용으로 건너뛴 <오디션> 제작과정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제작에 착수하자마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오디션>이 3D 시대에야 개봉할 수 있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새로 출현한 아이돌 패션과 문화에 열광했던 10대는 이미 기혼자가 되기도 했다. 끝끝내 <오디션>의 막을 올리게 한 역설의 원인이기도 하다.

"오래 기다려준 분들께 미안했습니다. <오디션> 하나로 제 40대를 거의 다 보냈죠. 청춘의 경험이 억울해서라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고, 한번 더 국내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후배들은 공시트 들고 창작할 수 있게…"

그는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에서 후배들이 배웠으면 한다. 민 감독은 꼼꼼히 기록한 일지를 보며 제작과정을 설명했다. "집에 이런 노트가 수십 권"이라고 한다. 그는 제작과정을 백서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때는 좌절하고 포기하려는 마음도 먹었다.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접어라' 하는 충고도 들었다. 연봉 1억여 원을 마다하고 자신의 작업에 매달리는 집착(?)에 주위에서는 혀를 찼다.

그럴수록 민 감독은 "평생을 가더라도 끝내고 완성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빽빽하게 적힌 시트의 요구사항에 갇혀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 '하청' 강국의 위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민 감독은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EBS와 공동으로 <미미 다다 미술탐험대>를 기획 연출한다. 해외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기획을 시작한 또 다른 애니메이션 데모 필름은 내년 3~4월께 선보일 작정이다.

"시트에 요구사항이 빽빽하게 적혀있어 창작의 여지를 발휘할 수 없었던 게 애니메이션 하청업체의 현실입니다. 요구사항이 없는 공 시트를 들고 자기 마음대로 창작하고, 연출하고, 연기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계속해야 합니다."

민경조 감독은…

라스코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감독.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자협회 부회장. 한국 애니메이션 예술인협회 이사. 방송통신위원회 국내제작애니메이션 판정위원회 심의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위원. SICAF 조직위원회 집행위원

극장용 장편 <오디션> 기획, 총감독. <미미 다다 미술탐험대> 기획 프로듀서. MBC 방영 <장금이의 꿈2> 총감독. KBS <짱이와 깨모>, <깨모의 대모험> 감독 및 공동제작. MBC <펭킹 라이킹> 감독. MBC <심청> 총감독. KBS <달려라 하니> 연출.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