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48) 이대범 미술평론가, 독립 큐레이터전, 작가들의 상상력 실험

"조작된 진실 하나에 잃은 게 너무 많아요.(중략) 내 청춘은 죽었잖아요. 그 시간은 사형당한 거에요. 사형."

귀가 번쩍 뜨였다. 80년대 조작 간첩 사건을 다룬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던 중이었다. 새삼 충격적일 것도 없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런데 피해자인 이준호씨가, 당시에는 청년이었을 그가, 힘주어 "사형"을 말하는데 정신이 들었다. 국가와 역사가 저 사람의 청춘을 돌이킬 수 없이 빼았았구나.

이대범 미술평론가 독립 큐레이터가 <소설 01: "이준호 ( )를 찾습니다"> 전을 기획한 연유다. "예술로 청춘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16명의 시각 예술 작가들에게 이준호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소설을 의뢰했다. 실제 인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사전 정보가 혹여 그가 살아볼 수 있었을 청춘의 가능성을 제한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적어도 작가들의 상상 안에서는, 이준호씨는 가장 자유로워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도 계속 확장 중이다. 전시가 열리는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내 문화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관객의 제보를 받고 있는 것. 관객은 이곳에서 작가들이 찾아낸 이준호를 목격하는 동시에 비치된 카드에 자신이 알고 있는 이준호에 대해 적게 된다.

작가와 공간, 그리고 관객의 네트워크 속에서 이준호는 역사적 인물이었다가 이웃이 되고,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존재한다. 그는 한 사람이면서 여럿이고, 차라리 우리 모두의 어떤 면일 수도 있으며 고유명사의 아우라를 간직한 기호이기도 하다.

두 가지 의미다. 한 개인에게 일어난 비극이 "우리 모두에게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되새기고 소문내려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과 작가들에게 가장 활달한 자극을 주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로 사진,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서사와 텍스트를 주문했다.

"<무한도전> 같다는 평도 들었어요. 매체를 바꿈으로써 작가들의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실험을 하고 싶었죠. 좋은 전시는 작가를 자극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이대범 큐레이터는 자신의 첫 전시를 되물었다. 2006년 바로 이곳에 있던 아르코미술관 제3전시실에 마련한 전시였다. 당시 한 문화평론가가 "관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한 것이 자꾸 생각났다.

그 고민이 고스란히 장르와 매체를 넘어 작가와 관객을 잇는 전시 내용과 공간 구성이 되었다. 그동안 제3전시실은 문화공간으로 바뀌었고,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 01: "이준호 ( )를 찾습니다">는 예술의 대안적 소통 구조들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전시 내용은 책으로 출간되며, 전시 기간 중 작가들을 만날 기회도 있다.

오는 16일 저녁 출판기념회와 낭독회가 한꺼번에 열린다. 이대범 큐레이터가 자신의 데뷔 무대에서 여는 <무한도전>의 서막이랄까. 이 실험은 앞으로 매년 거듭되며 "증식"할 예정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