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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즈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재즈 평론가 '남무성'
1세대 재즈 연주자의 삶과 음악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중
벌거벗은 태양이 내리쬐는 뜨거운 땅, 쿠바. 원래 그곳엔 음반 녹음을 위해 아프리카와 쿠바의 기타리스트들이 모이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비자 문제로 아프리카 연주자들의 쿠바 입국이 어려워지자 프로듀서와 제작자는 현지에서 모든 연주자를 구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수소문 끝에 모인 연주자들은 관절염을 앓고 있거나 생계를 위해 구두를 닦던, 평균연령 70대의 노인들. 앙상한 손가락과 위태롭게 마른 몸으로 나타난 그들이 들려주던 소리는, 그러나 1930~1940년대에 융성했던 쿠바음악, 기름진 풍요로움의 기원과 다름 아니었다.

세월의 먼지 속에 잊힐 뻔하던 연주자들이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라이 쿠더에 의해 발견됐고, 그들은 라이 쿠더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주었다.

1996년,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이렇게 태어났다. 빔 벤더스 감독이 이들의 재녹음 과정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불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남겼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또 한 편 있다.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비롯한 7명의 감독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블루스'의 연원을 찾아간 <더 블루스>.

다큐멘터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소울의 대부, 레이 찰스를 비롯한 뮤지션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개인사와 그 속에서 꿈틀대는 블루스 역사를 가로지른다.

느릿한 진행으로, 보는 중에도 몇 번씩 졸기 일쑤지만 힙합과 재즈, 록 등 블루스의 수혜를 입은 현대 대중음악의 연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뭉클함을 건넨다. 이들과 같은 음악 다큐 영화이지만 동시에 이들과 다른 영화가 올해 안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재즈 연주자 1세대들의 삶과 음악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 중이다. 자비를 털고 지인들의 투자를 받아 저예산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이는 재즈 평론가 남무성 씨다.

만화로 읽는 재즈책 과 록에 대한 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그다. 의 후속 원고를 쓰고 있어야 할 그가 펜을 놓고 카메라 뒤에 섰다.

"8월쯤이었을 거예요. TV 뉴스에서 이판근 선생(76, 재즈 이론가)의 기자촌 집이 철거대상이라는 보도가 나오더라구요. 재즈는 서양의 문화였지만 오늘날엔 세계인의 문화가 됐죠. 우리에게도 60여 년의 짧지 않은 역사와 인맥이 있었는데 지금 당장은 그 역사의 맥락이 소리 없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어요. 이 작업을 서두르게 된 연유입니다."

막상 영화 제작 소식을 듣고 처음 떠오르던 이미지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나 <더 블루스>였지만 정작 남무성 씨는 어떤 영화도 참고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 매이지 않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는 일도 그만뒀다.

"라틴의 정서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잖아요.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버라이어티한 문화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주인공들이 노년의 음악가들이라는 점이라든가 그들을 한 명씩 찾아나서는 로드(road) 다큐 형식은 비슷한 점이네요. 하지만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처럼 주인공들이 쿠바를 떠나 미국에서 콘서트를 한다거나 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처음 재즈를 시도한 이들은 이미 세상을 등졌다. 길옥윤, 최상용, 엄토미, 신진식, 박춘석 선생, 그리고 작년과 재작년에 타계한 최세진, 홍덕표 선생 등이다. 1.5세대라 불리는 연주자들 역시 해마다 영면해 현재 일곱 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남은 분들이 몇 되지 않아서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합니다. 지금 제가 찍고 있는 분들은 본격적으로 재즈라는 타이틀을 걸고 음반을 만들고 클럽 공연을 시작한 분들이에요. 말하자면 재즈를 시도했다는 의미보다 이 땅에 재즈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들이죠."

영화는 테너 색소폰 연주자 김수열 선생(69)이 평생 지기인 트럼펫 연주자 강대관 선생(77)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강대관 선생은 얼마 전 은퇴무대를 갖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의 고향은 경북 봉화라는, 한적하면서도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고 아주 오래된 기차역사도 있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시골마을이다.

해발 4백 미터 중턱에 강대관 선생의 집이 있다. 남무성 씨는 "재즈의 선율과 근사하게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이유로 이곳을 첫 촬영지로 선택했다.

이어 카메라는 주인공들의 주 무대인 재즈의 클럽으로 앵글을 맞춘다. 신구세대 연주자들의 인터플레이를 들려주는 레코딩 스튜디오 씬,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대형 콘서트 씬 등이 영화 속에 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 안엔 노 예술가들의 음악을 향한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과 예술혼이 일상의 모습과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영화 속엔 한국에서 최초로 실용음악과 재즈이론을 설파한 이판근 선생, 진정한 1세대 재즈 연주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드러머 조상국 선생(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의 부친이다), 그리고 김수열, 최선배, 이동기, 김준, 박성연, 류복성, 강대관, 신관웅 선생 등 한국재즈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원로 연주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또 세계 무대에서 더 유명한 프리재즈의 대가 강태환 선생의 연주와 일상의 모습도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다.

음악만을 위해 살아오면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린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악기를 쥐는 순간만큼은 신들린듯한 에너지가 담긴 연주로 좌중을 압도했다. 남무성 씨가 영화에 삶보다는 음악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음악이죠. 물론 그 속에 녹아있는 삶도 자연스럽게 그려지겠지만'힘들게 고생하며 재즈만 했다'는 단순한 공식을 비켜가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결국은 재즈라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와 스텝을 구성하는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4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12월부터 집중적인 촬영을 시작한 영화는 오는 2월에 크랭크업할 예정이다. 운이 좋다면 포스트 프로덕션이 끝나는 4월쯤에는 시사회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한국 개봉보다 해외 다큐 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일 이 작품의 제목은 함축적이다. <더 콘서트, The Concert>. "연륜에서 우러나는 음악의 깊이와 색감은 함부로 잣대를 들이댈 수 없지요.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이, 이 분들의 연주는 최고입니다." 인터뷰 도중 남무성 씨가 흘린 이 말은 제목에 대한 부연설명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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