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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 앞 춤추던 경험 살렸죠"

뮤지컬 <올 댓 재즈>로 연출가 데뷔 '안무가 서병구'
거울 세트 아이디어로 승화
천재라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은 언뜻 신화를 닮았다.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는 부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늘날 각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는 이들의 '될성부른 나무' 시절은 과연 범상치 않은 '떡잎'을 증명한다.

어머니의 쌀 씻는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는 박진영의 일화는 댄스 머신의 필연적인 운명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그보다 10년 먼저, 걸음마 시절부터 춤을 춘 이가 있다. 최근 창작뮤지컬 <올댓 재즈>의 연출을 맡은 안무가 서병구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 서 안무가의 춤 소질은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무용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발화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에 갔다 올 때마다 제가 젓가락으로 병을 두드리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뜯어서 살풀이 흉내를 낸 거에요. 그런 모습을 보이니까 결국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가 한 네 살 때쯤이었을 거에요."

한국무용으로 시작된 서 안무가의 춤에 대한 관심은 장르에 갇히지 않고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한국춤과 전혀 다른 발레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그를 진짜 흥분시켰던 것은 TV에 등장하는 재즈댄서들의 춤이었다.

"당시엔 '쇼 무용'이라고 했어요. 중학생 시절에 AFKN(지금의 AFN)에서 보여줬던 <잭슨 파이브 쇼>나 <소울 트레인> 같은 미국 프로그램에 나오는 백댄서들의 춤이 너무나 멋진 거에요. 결국 거기에 빠져서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춤 연습만 했죠."

춤에 미친 한국의 모든 '빌리'들이 그렇듯, 소년 서병구의 연습실은 따로 없었다. 원래 몸의 동작을 관찰하며 수정하기 위해서는 전신 거울이 필요하지만, 그 당시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대신 그가 택한 것은 장롱이었다.

"그래도 그 장롱이 약간 하이그로시 '삘'이 났거든요. 네 개의 연결된 문을 열어서 ㄱ자 모양으로 살짝 구부리면 제 모습 외에도 세 명의 다른 제가 보이는 거에요. 거울 대신 거기에 제 모습을 비춰보며 춤 연습을 했네요."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춤을 습득하던 경험들이 한때의 기억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안무가로서 연출을 맡아 직접 진두지휘를 하는 창작뮤지컬 <올 댓 재즈>에서 서 안무가는 그 경험들을 고스란히 연출 아이디어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소극장(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인데다 첫 연출작이라 세트를 어떻게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가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러다 문득 제 어린 시절의 경험이 번뜩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나온 설정이 네 개의 거울이에요."

거대한 배경 세트가 극 전개에 따라 통째로 움직이는 중대형 공연과 달리, 소극장 뮤지컬은 배우들의 동선과 이에 따른 세트의 운용을 어떻게 하는가가 흡입력 있는 극 전개의 관건이 된다.

그래서 이동이 가능한 네 개의 거울은 때로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문이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비추고 변화시키는 시간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극 중 여주인공이 공항에서 출국하는 장면에서는 보안검색대의 역할을 하고, 여주인공의 옛 기억을 되살려주는 모자가 걸린 옷걸이의 기능도 한다.

특히 이번 <올 댓 재즈>는 안무가 서병구의 흔적을 확인하고 연출가 서병구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가 오랫동안 존경을 표해왔던 밥 포시의 춤 스타일이 그의 스타일과 어떻게 융합되고 각각의 매력을 보일 것인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시카고>에서 나타난 밥 포시 스타일은 미국식 카바레 춤에 기반한, 느리고 관능적인 춤이다. 간단한 동작만으로 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반면 서병구의 춤은 빠르고 경쾌하다. 오랜 방송 댄스 경력은 그의 춤을 금방 눈에 들어오는 쉽고 대중적인 동작들로 만들어준다. 두 안무가의 스타일이 한 작품에서 충돌하고 때로 타협하는 장면들을 찾는 것도 <올 댓 재즈>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그러나 서 안무가는 "이번이 자신의 첫 연출작인 만큼, 자신도 관객도 '서병구 스타일'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겸양한다.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기존의 소극장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서병구만의 춤과 음악, 대사와 극 전개를 분명히 볼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조명이나 세트, 의상과 같은 비주얼적인 부분과 노래와 대사, 음악 같은 청각적인 부분들이 무대 안에서 유기적으로 흘러가거든요."

그가 자신 있게 내세운 '서병구 표' 뮤지컬은 이날 공개된 연습 장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눈을 끄는 것은 역시 그의 냄새가 가득한 안무다.

밥 포시의 익숙한 재즈 군무 다음에는 남자배우가 발레의 피루엣과 애티튜드를 보여준다. "말도 안 돼!"라고 역정을 내는 여주인공의 대사 뒤에는 원더걸스 1집의 아이러니 안무가 난데없이 튀어나온다. 춤의 아이디어에 있어선 '안무 머신'급의 내공을 자랑하는 서병구의 댄스 탱크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한국 댄스음악의 계보를 따지면 제일 윗 부분에 적히는 소방차와 김완선, 박남정의 뒤에는 항상 상임안무가 서병구의 춤과 MBC 무용단이 있었다. 이는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춤을 고민했다는 의미다.

방송 댄스 안무가에서 뮤지컬계로 넘어와 작업한 작품도 벌써 100여 편. 아무리 베테랑 안무가라도 첫 연출 데뷔작이라면 부담이 될 법도 하지만, 그는 의외로 두 가지 역할 다 해내야 하는 육체적인 부담 외에는 사실 큰 부담이 없다고 웃으며 말한다.

<올 댓 재즈>처럼 춤이 중점이 되는 작품의 경우, 기존의 연극 연출가들이 보는 시각보다는 춤 전문가가 접근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후배 안무가들도 안무만 하려고 하기보다는 연출에도 도전해야 더 큰 시각과 역량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올 댓 재즈>의 남주인공은 세계적인 안무가 유태민. 이날 연습실에서 유태민을 연기하는 뮤지컬배우 문종원의 정면엔 바로 안무가 서병구가 앉아 있다.

문종원이 "나의 춤 이야기를 할 것"이라며 손을 뻗어 정면을 가리키자 맞은 편의 서병구도 그대로 손을 올린다. 배우와 교감하는 연출가의 모습은, 마치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거울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손을 더 뻗으라는 듯, 더 힘껏 손을 뻗는 서병구의 지시에 문종원도 더 힘을 낸다. 마치 그 자신이 연출자의 아바타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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