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박노현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아리스토텔레스 저서 통해 새롭게 해석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죠. 드라마라는 큰 개념을 두고 학술계와 대중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다면 그야말로 소통의 부재 아닌가요?"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영역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게 TV드라마지만 그것을 학문적으로, 그것도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는 흔치 않았다.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의 저자 박노현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TV드라마를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시학>에 접근해 새롭게 해석했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봤다'고 얘기를 할 때 학자와 대중들이 봤다는 건 다른 의미죠. 학술적으로 '드라마를 봤다'는 건 '희곡을 봤다'고 말하는 것이고, 일반 학생들이 '드라마를 봤다'는 건 'TV드라마를 봤다'는 것이죠. 학계에서는 TV드라마를 미적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거든요."

박 연구원은 이 단순한 해석의 차이에서 TV드라마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시작했다. 학술적으로 드라마는 연극, 영화, TV드라마 등으로 구분된다. 학계에서는 연극과 영화에 더 비중을 둔다.

학자와 일반인들의 생각이 어긋나는 게 당연하다. 박 연구원은 이런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충돌을 해소하고자 TV드라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TV드라마를 사회적으로 풀이한 시도는 있지만 문화적인 해석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기 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을 사회학에서는 '왜 뚱뚱한 여자 주인공이 인기인가?' 등으로 분석하기도 했죠. 또한 미국에서는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TV드라마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들이 행해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신문방송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은 있지만, 문학 쪽에서는 국내에 10여 명 정도의 연구 인력이 있는 정도죠."

박 연구원은 기원전 5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 TV드라마를 다시 보기에 이르렀다. 특히 TV드라마 속 언어사용에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를 입혔다.

<아내의 유혹>의 '부숴 버릴 거야', <파리의 연인>의 '이 안에 너 있다', <다모>의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등 대사들의 공통점은 모어(母語)라는 데 있다. 모어는 굳이 학습을 통해서 인지하지 않아도 되는 언어를 말한다.

한두 살짜리 어린 아이가 '엄마'라고 하는 수준의 언어를 모어라고 할 수 있다. 열거한 대사들도 함축적 표현을 쓰면서 모어 수준으로 좋은 대사를 만들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좋은 시어는 낯선 언어'라고 표현했다. 박 연구원은 이를 TV드라마적 언어 환경과도 접목시켜 책 속에 담아냈다.

박 연구원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라마 미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10년대 한국 근대 희곡이 본래 연구 분야였지만 TV드라마 미학의 정립을 학문적 목표로 삼았다.

특히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로서 학생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대두되자 TV드라마의 연구에 매진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각 대학교에서 교양 수업으로 '희곡의 이해'를 강의하려 했지만 학생 수의 미달 사례로 폐강된 적이 있다.

그는 학술적으로 다시 외래어를 번역해 '희곡의 이해'를 '드라마와 문화'로 변경해 수강 신청을 받았다. 그러자 80명 정원의 학생 수가 삽시간에 마감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박 연구원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TV드라마에 관심이 있어서 수강 신청을 했다'는 의견을 듣고 더욱 TV드라마의 학문적 접근에 시급함을 느꼈다고 한다.

박 연구원은 지난 반 년 간 6편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굿바이 솔로> <다모> <연애시대>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얀거탑> 등 미니시리즈를 각각 세 번씩 보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2008년 '텔레비전 드라마 미학 연구-한국 미니시리즈의 국문학성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 지원하는 '2009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우수저작상'을 수상했다. TV드라마가 극예술로서 이렇다 할 학문적 토대가 없다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박사논문을 쓰면서 정리된 것이죠. 특히 TV드라마를 대상으로 한 논문에 상을 준 것은 처음이라고 해요. 학계에서도 TV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일수도 있겠네요. 저는 TV드라마에 대한 미학을 만들어보자고 이 책을 썼어요. 혼자서 미학을 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의심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해주셨으면 해요. 그로 인해 더 발전적인 이론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으니까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