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49) 윤석정 시인시집 '오페라 미용실' 출간 지난 5년간 사랑에 대한 단상 등 담아

'사랑이라는, 내려놓을 수도 없고 데리고 살 수도 없는 이 지긋지긋한 관념을 윤석정은 어떻게든 구체화하려고 한다.

보이지 않은 것을 보고자 하는 그 절실한 의식은 때로 현란한 감각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박자박 이야기를 생성해 들려주는 것으로 잠들어 있는 독자를 깨운다. 이를 감각의 서사라는 말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시인 안도현이 보는 제자 윤석정의 시다. 기실 이 세 줄에 윤석정 시인의 현재가 담겨 있는다. 그의 시는 '자박자박' 펼쳐놓은 이야기 한 자락과 같고, 그 이야기는 젊은 시인들의 감각과 서정시, 사이에 있다.

'그는 매일 미용실 바깥의 오페라를 감상한다/미용실 눈썹 치마에 모아 둔 나뭇잎 음표들이 옹알거릴 때/가위를 갈다가 번뜩이는 악보의 밑동,/백지에 오선을 긋던 어머니는 병세를 자르지 못해/머리에 자란 음표를 모두 빼내 옮겨 적었고/연주가 서툰 아버지는 골목길로 내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시 <오페라 미용실> 중에서)

가난한 산동네 가족사를 오페라에 빗댄 이 작품은 그의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미용실 가위 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 병든 어머니의 삶이 빚어내는 리듬이 한데 어울려, 산동네 삶을 대표하는 '오페라 미용실'에 가득 울려 퍼진다.

그는 이 시로 2005년 경향신문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중 3시절,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학창시절부터 대산청소년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스물 여덟의 등단은 조금 늦은 감이 있을 정도.

"한때 저도 감각적인 시를 쓰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서정시를 쓰자'고 생각했는데, 또 예전의 서정시는 안 써지고. '감각적인 시와 서정시 그 사이에 있다'고 제 몸에 맞는 시를 생각하던 찰나 등단하게 됐어요."

현실의 한 장면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듯한 그의 시는 눈으로 읽어도 리듬감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현실에 발붙인 발랄한 상상력이 빚어낸 노래다.

'사랑한 만큼 발톱을 세우고 폐와 내장을 파먹는 고양이 검붉은 피가 고인 살덩이를 마저 먹고 입술을 바닥에 스윽 닦으며 여전히 골목을 어슬렁거리고 두리번거린다 내 안에선 노상 뜨거웠던 사랑이 우르릉거린다' (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중에서)

지난 5년간 그가 써낸 시는 얼마 전 한 권의 시집<오페라 미용실>(민음사 펴냄)로 묶였다. 4부로 나뉜 시는 젊은 시인의 삶의 궤적과 고민, 사랑에 대한 단상이 오롯이 담겨있다.

"시를 쓸 때 제가 고민하는 건 '인간의 삶'인데, 소외되고 하찮게 생각되는 것들에 애착을 느낍니다. 제 일상이나 주변의 순간을 시로 잡아채는 것 같아요."

평론가 이경수 씨의 말처럼, 한 권의 시집은 "예민한 감각과 각성해있는 관찰자적 태도, 시를 찾아 떠도는 절박한 마음과 일상의 경험이 어우러져 일구어 내는 오페라의 향연"이다. 여전히 시에서 '삶의 노래'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21세기 음유시인의 노래에 귀 기울여 보자.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