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H&M CEO 칼-요한 페르손스웨덴 발 글로벌 브랜드 H&M, 명동에 4층 규모로 론칭한국인 2명 포함 120명의 디자이너 그룹 모든 인종위해 옷 만들어

"패션은 팔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스타일을 지녀야만 한다."

전 보그 편집장 에드너 올먼 체이스의 말은 지금 전 세계 패션계의 불문율이다. 하이 패션도 팔아야 하고 로 패션은 더 팔아야 한다. 자신이 지불한 가격 이상으로 돌려받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소비자들에 대항해 패션 업계가 찾은 새 돌파구는 패스트 패션이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자신들의 감각을 담보로 비싼 가격과 옷장에서의 장기 체류를 요구한다면, 패스트 패션은 한결 가볍게 접근해 새로움과 다양함이라는 가치로 승부한다.

그들이 만드는 옷의 존재 이유는 다름 아닌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으로, 매일 신상품이 공급되는 매장에서 지금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을 얼마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일정 수준으로 보장되는 품질은 '9900원'에 혹했다가 실망한 소비자들을 안심시킨다.

이런 패스트 패션의 득세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 특히 명동은 이들 브랜드들의 격전지로 돌변했다. 1~2년 전부터 자라, 망고, 유니클로, 갭이 들어섰고 지난 2월 말, 드디어 스웨덴 발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이 '4층 쇼핑 석탑'을 세우며 '명동대첩'의 마지막 주자로 합류했다.

북유럽의 험한 산세와 추운 날씨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은 패션이나 음식 같은 오감을 호강시키는 일에는 다소 무심할 것 같지만 스웨덴에는 의외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가 꽤 많다. 아크네를 비롯해 필리파 케이, 누디진 등은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H&M은 이들과는 좀 다르다. 35개국에서 2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글로벌 브랜드는 마니아가 아닌 '모든 이들을 위한 모든 트렌드'를 취급하므로 국적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1947년 창립 이후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H&M 사의 저력은 스웨덴인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힌 평등과 복지의 정신과 단단히 연결돼 있다. 브랜드 전문가 니콜라스 인드에 따르면, 위 아래 없이 조언을 중시하고, 팀을 이뤄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개인의 평등함을 믿는 스웨덴의 전통이 신속함과 원가 중심의 사고 같은 비즈니스적 속성과 합쳐져 현재의 H&M을 만들었다.

창립자인 얼링 페르손에 이어 전 세계로 사업을 확장시킨 스테판 페르손이 퇴임하면서 H&M은 칼-요한 페르손을 새로운 CEO로 맞았다. 35세의 이 젊은 수장은 연 매출 19조의 거대한 함선을 이끄는 사람답지 않게 거창한 수식도 과장된 열정도 일절 비치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본인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그냥 CEO"라며 웃음을 터뜨리는 그는, 복잡한 디테일은 없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H&M의 옷과 얼핏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근래 한국에서 패션 리더들을 중심으로 스웨덴 브랜드들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몰랐다. 스웨덴은 패션뿐 아니라 가구나 차 분야에서도 좋은 디자인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함께 트렌드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H&M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북유럽은 한국에 아직 생소한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스웨덴, 덴마크 등지를 하나로 묶어 북유럽 패션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에 대해 전반적으로 모던함과 클린함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H&M은 굳이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에 한정되지 않는 글로벌 브랜드다. 모든 국가의 모든 인종을 위한 옷을 만든다. 120명으로 이루어진 디자이너 그룹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섞여 있으며 그 중에는 한국인들도 2명 포함돼 있다.

H&M이 입점한 명동은 패스트 패션의 전쟁터다. 같은 건물엔 자라, 멀지 않은 곳에 유니클로와 망고, 갭이 있다. H&M이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모던 베이식부터 트렌디한 아이템까지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디자인이다. 그리고 CO2 배출량 감소 등 환경 오염에 신경을 쓴다는 점, 지속적으로 디자이너들과 재미있는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는 것 등이 H&M을 차별화하는 요인이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그런 것들은 다른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H&M이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가 결과적으로 우리를 다르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내부 직원뿐 아니라 협력 업체들의 복지에 대해 신경 쓰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려는 노력 같은 것 말이다. 그런 것들은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느낄 수 있다.

한국은 몇 번째 방문인가. 특별히 놀라운 광경이나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나?

유감스럽게도 바로 어제 와서 아직 많이 둘러보지 못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패션 센스가 훌륭한 것 같다.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

한국은 패션에 있어서 상당히 빨리 싫증을 내는 민족이다. 덕분에 한국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장수 브랜드가 별로 없다.

우리는 특정 스타일의 옷이 아닌 즐거운 쇼핑 경험으로 고객 충성도를 만들어 간다. H&M에서 매일 새로 바뀌는 디자인, 좋은 가격을 체험한 이들은 다시 매장을 방문할 수밖에 없다. 서울뿐 아니라 대부분 패션 도시의 고객들은 점점 더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언제 어디서라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보험과도 같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CEO로서 누구보다 소비자 니즈에 민감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소비자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트렌드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세계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데님의 회귀가 가장 특징적이다. 곧 전원적인 분위기의 로맨틱 컨츄리 무드가 대세가 될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이 지불한 돈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받으려는 경향이 뚜렷하며 늘 흥미진진한 것들을 찾아 다닌다. 사회적 의무를 다 하는 기업을 선호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친환경적이고 타국, 타인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기업들만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온라인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다.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사실 이 문제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한 시즌 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가 빠르게 트렌드를 전달하는 브랜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얼마 못 입고 버려진다는 의미에서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아니다. 여기 한스 안데르손 사장이 입고 있는 데님만 봐도 그렇다. 이 옷은 5년 전쯤 H&M이 디자이너와의 첫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했을 때 칼 라거펠트가 만든 옷이다. 아직까지 잘 입고 있다. 트렌디한 옷뿐 아니라 베이식한 옷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회사 내에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의무) 관련 인원만 60여명에 이른다. 물과 화학물질을 덜 들이고 면화를 재배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으며 유기농 면의 사용량도 매년 늘리고 있다. 물론 직원들과 생산자들의 근무조건도 철저히 관리해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콜라보레이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은 H&M이 벌이는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다. 이번에는 소니아 리키엘과 작업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은 소비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 칼 라거펠트를 시작으로 빅터 앤 롤프, 꼼데 갸르송과도 작업했고 지미 추와 함께 구두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번 소니아 리키엘과는 니트 제품뿐 아니라 키즈 라인에서는 최초로 협업을 시도했다. 앞으로도 엄청난 디자이너들과의 놀랄 만한 작업을 준비 중이니 기대해 달라.

지금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를 물어봐도 되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재킷부터 양말까지 전부 H&M과 COS(H&M의 프리미엄 세컨드 브랜드)의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크네와 프라다를 좋아한다. 아크네는 창의적인 옷을 만드는 데다가 늘 환경을 생각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아, 물론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저쪽에서 이야기 중인 H&M의 수석 디자이너 앤-소피 요한손이다. (웃음)

마지막으로 '나는 H&M의 000'이다'라는 문장을 완성해달라.

그냥 CEO는 너무 뻔한 답변인가. (웃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패스해도 되겠나.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