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천명관<고령화 가족> 출간… 영화는 이제 그만 소설에 전념할 것

훗날, 문단 지도를 설계한 평론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대하 구라'로 소개된 그 남자 소설가의 이름은 천명관이다.

한국문단이라 함은 흔히 인사동과 홍대 일대, 파주를 중심으로 평론가와 시인, 소설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그 담소를 소재로 허구가 피어나고, 그 허구가 모여 '작품'이 쓰여지고, 그 작품을 매개로 다시 담소를 나누며,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글 쓰며 밥 먹고 사는 일종의 지식인 무리였다.

그런데 그 문단 3요소의 하나인 소설가가 '훗날, 문단 지도를 설계한 평론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겠다. 고로, 그 남자 명관은 독고다이였다는 말씀.

그는 영화판을 전전하다 "인생에 남은 마지막 카드"인 소설로 이름을 남겼다. 그가 이름을 남긴 몇 권의 소설 책 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특별하다!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는 작가다!' 그는 처음 써 본 단편 <프랭크와 나>로 등단했고, 또한 처음 써 본 장편 <고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세상에 계보 없는 소설이 '나도 예술이요'라고 발 내미는 법은 없다. 그것도 '담소가 피어나는' 문단의 현실에서. 그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는 작가'란 <고래> 표지 문구와는 별개로 그 책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나의 육체 안엔 지난 세기 위대했던 작가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야기 또한 그렇게 시간을 가로지르며 생명을 연장해 간다. 소설을 쓴다는 건 지난 시대의 작가들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주인공처럼

그는 한 때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고, 몇 편의 시나리오를 파격적으로 계약하면서 영화잡지와 인터뷰도 했고, 감독을 꿈꾸었다. 할리우드 키드이자 미국 소설광인 그는 말하자면, 소설 공부를 좀 다르게 했다.

서른 넘어 영화를 시작해 신씨네, 기획시대, 영화세상, 명필름을 거쳤다. 기획시대 총무과장으로 일하다 나온 뒤 시나리오를 썼고 한 영화사와 계약을 했다. 영화는 당시 잘 나가던 감독이 하기로 했다. 그 영화가 김의석 감독의 <총잡이>다. 흥행에 실패했지만, 당시 시나리오 작가의 인센티브 계약으로 '바람직한 시나리오 작가의 미래를 보여줬다'며 영화지 <씨네 21>과 인터뷰도 했다.

이 자(者)의 꿈은 감독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배창호 감독이나 이명세 감독의 연출부에 들어가려 했지만 문제는 나이가 많은 것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그는 서른이 넘어 영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마흔이 되었을 때, 시나리오를 그만 두고 소설을 썼다. 그게 등단작 <프랭크와 나>이다.

- 첫 단편으로 등단하고 첫 장편으로 상도 받고. 주변의 시샘을 받았을 텐데.

"나를 굉장한 행운아로 안다. 남들은 10년 넘게 준비하는 데도 잘 안 되는데, 얘(작가 자신)는 태도도 삐딱하고…. 예전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신춘문예 투고하다 끝내 문인이 안 된 분이셨다. 그 분이 '자기 키 높이만큼 원고를 써야 등단한다. 그런데 허리 높이 만큼밖에 못 썼다'고 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하면 내가 쓴 시나리오의 원고 높이가 내 키보다 높다. 그게 내 습작기다."

참고로 그는 현대 여성 기준에 맞춰본다면 180cm가 안 되는 이른바 '루저'다. 어쨌든 천명관 표 소설의 특징은 재미있는 서사, 다양한 캐릭터, 속도감 있는 구성인데, 이 '달인의 기술'은 시나리오에서 나온 셈이다. 그는 덧붙였다.

"조금의 행운도 아니고 부끄러울 것도 아니고 여느 문인 못지 않게 이야기 예술에 대해서 고민했고, 나름 치열하게 썼다. 다만 그게 소설이 아니었을 뿐이지."

장편 <고래>를 발표하고 그는 다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희곡을 써 연극 연출을 하기도 했다. 파파프로덕션에서 올린 <참치>가 그가 쓰고 연출한 연극. 3월에 개봉되는 <이웃집 남자>가 그가 쓴 시나리오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소설공부를 좀 다르게 한 그는 문단에서 홀로였다. 그는 책 <고령화 가족>의 후기, 작가의 말에서 '동료 소설가인 박민규와 김언수, 그리고 백영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썼다. 수상경력이나 소설가로 밥벌이 하는 능력과는 별개로 문예지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는 작가들이다. 그는 이어 이렇게 썼다.

'어느 술자리에 박민규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 우리 외롭지 말고 우울하지 말아요. 그러면 다 되는 거예요.'

그의 좀 다른 문학관이란 무엇인가. <고래> 최종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은희경은 심사평에 이렇게 썼다.

'한편으로 이 모든 이야기의 성찬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 역시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소설이란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에 대한 집요한 요구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가늠하는 국내 주류 문학계의 기준이 된 바, 그래서 어쨌다는 내용이 없는 그의 소설을 문학상 수상작으로 뽑을 때 그녀가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의 소설이 '꾼들만이 보는 소설'이 된 계기가 여기에 있다.

- 은희경 소설가의 심사평,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의 소설이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그게 우리나라 주류 문학관이지 않은가. 소설이란 모름지기 일정한 격을 갖춰야 하고. 인생이나 세계에 대한 생각을 밝혀야 하고. 나는 감히 그런 얘기를 못 하겠다. 그런 말할 자격도 없고. 철학자들이 진리를 알기 위해, 그것을 말하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고 과학적인 사고 과정을 거쳤겠나?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에 대해 예전 내가 쓴 말도 거기에 있다. '정작 말해야 할 바는 이야기 속에 침잠되는 법이다.' 소설가는 결국 자기가 생각하는 세계를, 인지하는 것을 자기 눈을 통해 이야기로 그려 보이는 거다."

다시 말해, 그는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 아니라 문학관이 다른 소설가다.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다'는 선배 문인, 평론가의 말은 기존 한국소설의 문법으로 그의 소설을 가늠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흔히 그의 소설을 말하며 미국 소설의 문법을 들이댄다. 실제로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존 업다이크 소설을 읽으면서 미국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도 했다.

"나도 청소년기에 이문열, 이청준 선생 같은 우리나라 작가들 작품을 읽었다. 그런 언어들이 내 안에 육화되었겠지. 소설을 구상하고 인물을 만드는 스타일은 미국소설에 가까운 것 같다."

그의 소설과 대척점에 선 작품은 아마도 김훈의 소설이 아닐까. 미학적 문체, 작가의 사유가 화자의 서술로 날 것처럼 드러나는, 그래서 소설책 전부를 밑줄 긋게 만드는 그의 소설 읽은 적 있나?

"뭐랄까. 정사진 같다. 아름답고 폼 나고. 그런데 나한테 김훈 선생의 소설은 장시(長詩) 같다. 나는 소설은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변하는 동영상 같은 거다. 소설에는 시간이 들어오고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3인칭의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캐릭터가 움직이면서 구성이 생긴다. 그게 소설의 3요소다. 소설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나? 다시 말해 이성의 산물이다. 소설은 차가운 장르다. 따뜻하고 눈물 나는 장르가 아니다. 차가운 눈으로 이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거다."

'차가운 3인칭의 세계'.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 김훈 작가가 각종 인터뷰와 독자와의 대화에서 누누이 말해 온 바다.

우리의 모든 끼니를 마련해준 엄마에게

"따뜻하고 눈물 나는 소설은 반칙"이라던 그가 새로 들고 나온 보따리는 가족이었다. 간판도 아예 <고령화 가족>으로 달았다. 물론 작가 천명관이 말하는 가족은 예전 아버지의 가부장적 비애와 어머니 모성애를 그렸던 그 신파조의 가족이 아니다.

10여 년 전 메가폰을 잡은 첫 영화가 폭삭 망한 뒤 좀체 재기하지 못하던 48세 영화감독인 나는 생활고를 못 이겨 엄마의 집에 들어간다. 스물 네 평 그 집엔 전과 5범의 전직 폭력배, 형 오함마가 3년째 기식 중이다. 여기에 술집을 운영하는 막내 미연이 이혼하면서 딸 민경을 데리고 이 집에 들어온다. 칠십 넘어서도 화장품 행상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엄마는 변변찮은 자식 셋을 거두게 된 상황을 오히려 기꺼워한다.

조카 민경이 가출을 감행하면서 가족은 풍파를 겪는다. 서로를 탓하던 3남매는 자기만 알고 있던, 엄마의 불륜과 형제들의 출생 비밀을 폭로한다. 서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 3남매는 불화를 겪지만, 노모는 의연한 자세로 집안의 동요를 수습한다. 오함마는 조카를 찾기 위해 잔혹한 폭력배와 거래를 하고, 나 또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에로 영화를 만들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이 콩가루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 <고령화 가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다 들어있다는 것 같다. 휴먼 코미디로 시작했다가 어설픈 로맨스도 나오고 마지막에는 느와르도 나오고.

"내가 그런 장르를 좋아하니까. 해체하고, 뒤섞고, 장난질 하는 걸 좋아한다."

- 형 오함마가 120kg의 거구다. <고래>에서 근대사회 원시적인 힘을 상징하는 '걱정'도 거구이고. 소설에서 이런 캐릭터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가 뭔가?

"<프랭크와 나>에서 프랭크도 120kg인데, 전부 내가 사랑하는 인물들이다. 난 '걱정이 캐릭터'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인 인물들이라고. 덩치는 큰데 현실 부적응자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고. 육체적으로 강권하지만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원시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통받고. 내가 그런 인물에 애정이 있는 모양이지."

- '주인공 영화감독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런 말 많이 들었을 텐데. 자전적 내용은 없나? 주인공처럼 에로 비디오 찍은 적 있나?

"그쪽은 사실 다른 동네다. 16mm랑 상업영화는. 영화감독을 꿈꾸었지만 좌절하고 실패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모르는, 그런 면이 나나 내 주변 인물들과 비슷하다. 칸에서 화려하게 레드 카펫 밟기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중늙은이가 된. 그럴 때 남은 생을 어떻게 할 건가를 고민하는 사람. 어려운 문제이고, 답은 없다."

- 가족 서사, 잘못 쓰면 진부하다는 말을 듣는데. <고령화 가족>에서 엄마도 결국은 자식들 거두어 먹이는 엄마 캐릭터이고. 차라리 아빠로 설정하면 비판에서 좀 자유롭지 않았을까?

"칠순 넘은 아버지가 자식들 밥해 먹이는 설정도 재미있었겠지. 그런데 이 책, 우리 엄마한테 바치는 소설이다. 헌사도 썼다. '언제나 텅 비어있는 컴컴한 부엌에서 우리의 모든 끼니를 마련해 준 엄마에게'. 그런데 울 엄마, 이 소설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다. 워낙 보수적인 분이라. 여기 야한 얘기도 많지 않나. 예전에 <고래> 보면서 책 집어 던지셨다는데. 목사 욕하는 얘기 나와서. 엄마,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첫 장편 발표 후 영화와 연극판을 오가던 그는 이제 소설만 쓸 생각이다. "이제 아버지한테 바칠 소설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바칠 소설은 따로 있다"고 했다.

"38따라지라고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와 정착한 사람들 얘기다. 할아버지-아버지-나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현대사를 쓸 거다. 노트북에 쓰고 싶은 작품 메모를 해두는데, 제목만 28편이다. 얼마나 쓰고 죽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소설만 쓸 생각이다. 영화 안 한다."

3월에는 만해문학관에 들어가 그 '38따라지'에 관한 장편을 쓸 생각이다. 그래서 다시,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