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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름다움 입체적으로 보자"

<과학인문학> 저자 김병호
물리학 이론과 공식에 시적 표현 가미 삶의 아포리즘, 원리로 풀어내
북극성 노릇을 하지는 못할망정, 길을 잃게 하는 책이 있다. 여러 장르를 가로지르며 도서관 분류 체계의 그물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책이다.

이들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서가를 뒤져 보아야 한다. 때로는 미지의 책들 사이를 헤쳐야 하며, 자꾸 엉뚱한 맥락에 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 책은, 위치 자체가 의미다. 책 안에서 장르들이 제대로 통합될 때, 헤맨 길들은 사라지지 않고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차곡차곡 모인다.

<과학인문학>은 그런 책이다. 물리학 개념을 척추로 삼되 시적 표현으로 사지를 만들고, 일상의 에피소드로 살 붙인 후 철학적 질문으로 맥박을 뛰게 했다. 출판사에서 붙인 '과학 에세이'라는 장르도 그 안의 갈래들과 만남들, 화학작용들을 다 담지 못한다.

예를 들면 뉴턴의 만유인력 공식 F=Gm¹m²/r²에 대해 저자 김병호는 "이것도 일종의 언어니까 한번 따라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이 식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공식 위에 위치한 두 개의 m은 질량을 가진 대상이다. 나와 당신이다. 당신과 내가 서로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어느 정도의 힘으로 잡아당기는지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식이다. 분모에 있는 r은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로 서로 멀리 있는 만큼 힘은 줄어든다. 그것도 제곱으로. G는 정해진 하나의 상수로 아주 작은 수이다. 누가 봐도 가볍지 않은 두 사람의 질량이 서로를 잡아당기고 있고 거리도 아주 가까워서 자칫 자석의 다른 극처럼 서로에게 달라붙어버릴 위기에 처한 순간이 이 G라는 작은 수에 곱해지면서 잠자는 새끼 강아지처럼 조용해진다. G가 아주 작기 때문에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않고 조용히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오로지 지구가 잡아당기는 중력의 효과만을 느끼면서."

저자는 물리학의 이론과 공식을 인간이 사는 모양과 속사정에 대한 아포리즘이자 원리로 풀어낸다. 원자 규모 이하의 미시적 현상을 설명하는 분야인 양자역학의 학문적 태도를 인간관계에 적용하기도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파동'이었던 빛이 아인슈타인의 실험을 통해 "아주 작은 당구공처럼 움직이는 입자"이기도 함이 밝혀진 후, 빛을 파동이나 입자로 보는 것은 관찰자의 몫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를 인간관계에 적용해 보면, 우리를 형체 없는 '파동' 상태에서 건져 올려 "피와 온기가 흐르는 존재로 만드는 것" 역시 누군가의 관심과 관찰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사회 안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의미가 아닐까? 서로를 관찰해서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일말이다."

이쯤 되면 저자의 이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물리학을 전공한 시인이다. 과학을 소재로 한 시집도 냈다. 시인이야말로 세상의 비밀에 관심이 있고, 자연의 상태에 민감한 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가 여기, 우리에게 오기 위해 택한 과학의 길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책에는 저자가 대학교 4학년 때 들었던 통계역학 수업의 한 장면이 등장한다. 누군가가 지루함을 덜고자 뚱딴지같은 질문을 던졌다. "우주는 무엇입니까?"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상호작용하는 것들의 총체다."

그 "과학과 철학과 문학을 아우르는 아주 명쾌한 답"이야말로 <과학인문학>의 지향처럼 보인다.

물리학을 전공한 시인이라니, 이력이 독특하다. 물리학은 어떻게 전공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궁극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공부해 본 물리학이 생각과 같지는 않아 딴짓을 많이 했지만(웃음) 한 교수님의 충고대로 적어도 물리적 사고는 배우고 나온 것 같다.

물리적 사고라니?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괜찮은 방법이랄까. 깜짝 놀랄만한 일들을 공식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질량에 대한 공식인 E=mc² 같은 것은 정확하게 급소를 찔러 한방에 진실에 이르는 날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모양이 아닌가.

스티브 와인버그의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몇 안되는 행위들 중 하나다. 이런 일련의 노력은 우리에게 비극적 우아함을 안겨준다", 리처드 파인만의 "진리란 과거의 어떤 예술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경이롭다. 오늘날의 시인들은 왜 이런 것을 시의 소재로 삼지 않는가?" 등 인용한 물리학자의 말들이 저자를 대변하는 것 같다.

과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고, 상상력으로 구동된다. 이런 점에서 시와 통한다. 단지 하나의 진실을 보는 다른 시각들이랄까.

그렇다면 물리학과 시를 만나게 하는 의의는 뭔가.

둘의 차이는 접근 방법이다. 과학이 논리를 내세워 따라갈 수 있도록 이야기한다면, 시는 비약이고 옆구리 찔러 비명을 지르게 하는 식이다. 이렇게 다른 방법들을 동시에 가동함으로써 이를테면, 3D 영화 볼 때 착용하는 안경을 만들고 싶었다. 인간과 인간이 속한 자연이라는 하나의 대상의 윤곽을 입체적으로 보게 하는.

이런 글쓰기 방식을 시도하는 데 힌트를 얻은 책들은 없나.

끈 이론(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해 우주의 궁극을 밝히려는 첨단 이론 중 하나. 모든 기본입자들을 진동하는 끈이라고 상정하고 물리적 현상을 설명한다)을 연구하는 과학자 브라이언 그린의 책들이 도움이 됐다. 문장도 좋고, 적절한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쉬웠다. 한국에도 이런 과학자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과학을 풀어놓은 많은 책들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작 과학적 개념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초등학생인 딸이 더 도움이 된 것 같은 인상이다.(웃음) 책 속에서 가끔 등장해 던지는 질문들이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

파이에 대해 쓴 부분은 실제로 딸이 던진 질문에서 출발했다. 파이가 끝없이 이어지는 수라고 설명했더니 "끝까지 계산해 본 사람이 없지 않냐. 그 사람이 계산하다가 지쳐서 그만 두었는데 바로 그 다음 자리에서 끝날 수도 있지 않냐"고 되묻더라. 그게 "인간은 과연 무슨 근거로 무한을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들렸다. 우리는 다만 측정할 수 없는 것, 가보지 못한 곳, 미지의 영역 등 짐작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무한이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사랑, 삶, 죽음, 중심 같은 개념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과학적 이해가 스스로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뭔가.

예를 들면 질량이 에너지가 뭉쳐 존재하는 한 형태라는 아인슈타인의 설명을 적용해 보면, 인간 역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주변의 지인들을 그런 새로운 눈으로 보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더 놀랍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떤 독자층을 염두에 뒀나.

인생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웃음) 성인층에 적합할 것 같다. 그리고 특히 과학하는 분들이 봐주었으면 한다. 과학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구나, 접근하기에 따라 그 의미가 이렇게 쓰일 수 있구나를 알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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