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소프라노 신영옥가장 위대한 광란의 장면 찬사 받은 오페라<람메르무어의…> 국내 공연세계무대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 두 장의 앨범 발매 예정

시퍼런 어둠 속에서 나이트가운을 걸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은 그녀가 정략 결혼한 첫날밤.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에 피를 묻힌, 그녀의 눈동자가 허공을 헤맨다. 피로연장에 남아있던 하객들은 그녀를 보고 놀라 외친다. "막 무덤에서 깨어나온 것 같다."

한 편의 공포영화 같은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한 장면이다. 신랑을 살해하고 나온 루치아는 자신의 정인 에드가르도의 환영을 보며 17분 동안 홀로 노래한다.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광란의 아리아'다.

"아아, 솟아오른다. 무서운 유령이 갈라놓는다. 우리를!
여기서 피난처를 찾아요, 에드가르도, 제단의 아래에서.
뿌려져 있어요. 장미가!
천상의 하모니가, 들리지 않아요?
아, 결혼 축가 소리가 들리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니제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원수 집안의 남자를 사랑했던 순진한 여인은 비극적인 운명의 굴레 속에서 괴로워하다 생을 마감한다. 한 여인을 중심으로 끌어가는 극적인 줄거리 덕에 루치아 역을 맡은 소프라노에겐 연기력과 더불어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하이 E플랫'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화려한 콜로라투라.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로 열연 중인 신영옥
최고의 소프라노에만 허락된다는 이 역할은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에서 조앤 서덜랜드를 거쳐 소프라노 신영옥에게 안겼다. 신영옥은 '극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광란의 장면'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자연히 '루치아'는 그녀의 주요 배역 중 하나로 굳어졌다. 해외에서는 이틀에 한 번꼴로 '루치아'가 되어 무대에 서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루치아'로서 국내무대(4월 19일~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서는 건, 1993년 이후 17년 만이다. 사실 그녀는 2006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하 메트)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다시는 루치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악보도 깊숙이 넣어뒀다. 그녀에게 루치아는 더 이상 속하고 싶지 않은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루치아'를 비롯해 메트에서 두 번째로 많이 했다는 <리골레토>의 질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과 같은 수많은 비극적인 여인들은 그녀의 아바타였다.

그러나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마주한 자연인 신영옥은 도무지 비극적인 여인들과는 매치되지가 않았다. 오히려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의 환생이랄까. 밝고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 많고, 거기에 천진난만함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동안 '최고의 루치아'로 분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자신 안에 루치아를 깊숙이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이상하죠. 루치아를 할 때마다 몸이 아팠어요. 사실 동물들이 싸우는 자연 다큐멘터리도 잘 못 봐요. 속이 울렁거리거든요. 그런데 남편을 살해하고 옷이 피범벅이 된 채로, 환영을 보면서 정신분열증적인 역할을 하니까 몸이 힘든가 봐요. 연출가도 그래요. 이건 호러 무비라고. 그런데 전 늘 어떤 역할을 할 때마다 완전히 빠져들어야 해서. 질다(리골레토)일 때는 질다가 되고, 수잔나일 땐 수잔나였다가 루치아일 땐 루치아여야 하는 거죠."

2009년 한국에서 공연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 역을 맡은 신영옥
그녀의 마음을 돌렸던 건, 고국에서의 공연이라는 점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프로덕션이 꾸려진다는 점이었다. 연출가 마리오 코라디를 위시해 이탈리아에서 온 크리에이티브 팀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시대 배경을 17세기에서 20세기, 정확히 1910년으로 옮겨왔다. 레이스가 많은 의상은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스타일이고 모자에도 챙이 없다. 무대엔 영화적인 기법도 차용된다. 내용에 따라 근접촬영이나 이동촬영을 하듯, 무대가 작아지거나 움직인다고.

"이번 공연에는 유난히 인연도 많아요. 여기 와서 보니 연출가도 예전에 디트로이트에서 함께 공연했던 분이더라고요. 당시 조용한 성품이었는데, 편안해지고 유머가 늘었어요. 신부님으로 나오는 두 명 중 한 명은 2년 전에 신영옥 성악 콩쿠르에 나왔던 사람이었죠.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콕 짚어서 '외국에서는 이런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는 심사평을 한 기억이 있어요. 이렇게 한 무대에 서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덕분에 예전에는 목소리를 아낀다며 동료들과 식사 한번 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모처럼 여유도 생겼다.

광기 어린 루치아가 몸을 아프게도 하지만 신영옥은 평소 건강관리에 철저한 편이다. 하루 2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고 수지침은 어디를 가든 늘 품고 다닌다. 몸살에 걸려 몸을 가누기 어려운 때에도 수지침은 요긴했다. 안 해본 운동은 없을 정도. 브라질 전통 무예 카포에라와 지구력과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권투를 한 적도 있다.

요가와 필라테스도 거쳤다. 지금은 운동 치료 전문가 한동길 씨에게 피트니스 지도를 받고 있다.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무대, 피 말리는 경쟁과 몸을 축나게 하는 연주여행을 이겨내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신영옥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싶었다.

메트를 시작으로, 세계무대에 데뷔한 지 20주년을 맞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오페라단에 속하지 않고도, 조연이 아닌 주연급으로 무대를 장악해 왔다. 이것은 그녀가 데뷔 때부터 고수해 온 철칙이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공연만 하고 싶었고 덕분에 그녀의 이름으로 추려지는 배역들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배역을 가장 잘 표현하는 성악가로 불린다.

<리골레토>의 질다,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청교도>의 엘비라,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몽유병의 여인>의 아미나, <라크메>의 라크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등.

"오페라단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게스트 아티스트로 남겠다고 했어요. 단원이 되면 내가 원하는 작품만 선택해서 출연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 고집 때문에 놓친 기회도 많아요. 한번은 메트 콩쿠르에서 우승하자마자 <사랑의 묘약>을 비디오로 제작한다고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어요. 파바로티와 캐슬린 배틀이 출연하고 제겐 작은 역이 주어졌는데, 신인으로서는 좋은 기회였지만 안 한다고 했죠."

훗날 그녀는 두 편의 오페라에서 파바로티와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돼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런 성향은 그녀의 완벽주의 성격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클래식 무대에도 이제 크로스오버를 부르는 경우는 흔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오페라 아리아와 한국 가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순식간에 목소리의 색깔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객과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지금까지도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보컬 코칭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제가 순식간에 목소리를 바꾸려고 해도 제 목은 기억하고 있어요. '루치아'를 하다가 갑자기 '오스카'를 하라고 하면 쉽지 않아요. 루치아를 완전히 없애고 다시 오스카에 목소리를 맞춰야 하는 거죠. 경험이 많아져서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왠지 속임수 같은 거랄까. 제 본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페라 가수예요. 오페라 팬들이 대중음악보다는 많지 않지만 그 고마움을 저버릴 수 없거든요. 또 내 빛깔은 어디 갈 수가 없어요. 예전에 가요인 한계령을 불렀는데, 관객 분이 그 '한국 가곡'도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빛깔은 어디 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지만, 아버지에게 그녀는 여전한 '이쁜이'다. 딸 셋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한 번도 아버지가 '영옥아'라고 부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그녀를 '이쁜아'로 불렀다. 1993년 간암 투병을 숨긴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한 아픔은 아버지에 대한 염려로 이어졌다. 해가 갈수록 한국 공연이 많아지는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말, 한국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하면서도 매일 아버지를 찾았다. 지금도 리허설과 공연을 제외하고는 1순위가 아버지라고.

"어머니가 투병 사실을 제게 숨기시려고 일주일 동안 전화를 안 받았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생각 때문에 한국에 계신 아버지와 전화 통화가 안 되면 굉장히 불안해져요. 미국에선 눈만 뜨면 아버지한테 전화하는 게 일상이죠. 의무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랑 함께 있으면 재밌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아버지 생각해서라도 한국에 자주 오려고 하죠. 제가 오면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공연이 끝나고 다시 한국을 떠날 때가 되면,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가 눈에 밟혀 가슴이 뭉그러지는 느낌이에요." 활기차던 그녀의 목소리가 순간 잦아들었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과 더불어 세계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아, 올해는 소프라노 신영옥을 만날 기회는 더 늘어날 듯하다. 가을 이후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들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와 더불어 두 장의 앨범도 올해 안에 발매할 예정이다.

소프라노 신영옥은…
1961년 서울생. 선화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도미한 그녀는 줄리어드 음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입상을 통해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입성했다. 데뷔작은 <세미라미데>. 이후 영국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프랑스의 바스티유 오페라, 독일의 쾰른 오페라, 이탈리아의 레지오 극장 등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장악했다. 그동안 무대 위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롤란도 비야손, 에사 페카 살로넨 등 세계 최정상의 음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한편, 2002년에 그녀가 선화예고에 기탁한 장학기금은 국내 성악가 등용문인 '신영옥 성악 콩쿠르'로 자리 잡아 격년제로 열리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