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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지시하는 것의 불완전성 표현하고파"

소설가 김태용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 출간 마치 '로마담론'의 한 장면 연상시켜
  • 사진 제공= 백다흠
1. 2005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 <오른쪽 세번째 집>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2007년 첫 단편집을 냈다. 그 단편집으로 2008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2. 서울 은평구 홍제동, 1.5평짜리 고시원 방에서 작업을 한다. 창도 시계도 없는 이 방에 들어설 때마다 작가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그가 소설을 밀고 가게 하는 동력이다.

3. 시인 이준규, 미술작가 허남준 등과 동인 '루'에서 활동한다. 동인인 한유주, 이두성 씨와 문학텍스트의 영상화를 고민하며 시작한 시나리오 작업은 1년 반 째 '계획만' 진행 중이다.


소설가 김태용을 설명하는 몇 가지 팩트다. 소설 속 화자와 작가는 별개의 인물이지만, 이 몇 가지 단서가 그의 소설을 대할 때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 터다. 사건과 갈등을 키워드로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그의 소설은 제법 난해할 테고, 혹자는 생소한 의성어로 가득 찬 소설을 보며 실험을 내세운 말장난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돼지에게도 언어가 있을까. 언젠가 풀밭에 누워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피시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장난삼아 퀠퀠퀠퀠, 이라고 돼지 소리를 흉내 내보았다. 퀠퀠퀠퀠. 그녀도 나의 농을 받아치며 말했다. 퀠퀠. 퀠. 퀠퀠퀠퀠퀠퀠. 퀠퀠 퀠퀠퀠. 퀠퀠퀠퀠. 퀠. 퀠퀠퀠 퀠퀠 퀠. 퀠퀠퀠. 퀠 퀠퀠퀠퀠 퀠. 퀠퀠. 퀠. 퀠에에퀠퀠.' (단편 '풀밭위의 돼지' 중에서)

그러나 '김태용 소설의 행로에는 언어에 반하는 언어, 서사에 반하는 서사가 열려 있다'는 평을 되새겨 볼 때, 이 실험은 나름의 의도와 의미를 가진 것이다. 참고로 그는 이 단편소설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고, 앞서 소개한 평은 그 문학상의 심사평이다. 다른 몇몇 작품에서도 이런 시도는 엿보인다. 작가는 "언어는 고착된 의미성도 있지만, 날아가는 것도 있다. 언어의 음성적인 측면, 의미는 없지만 형태상으로 보이는 회화성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세번째 팩트, 동인 '루'에 주목해 보자. 시인과 미술작가, 비평가와 미학자가 모인 이 그로테스크한 모임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있는 분들"이고, 관찰자(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경계를 넘어선 무엇'을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소설가 김태용에게 그것은 언어로 귀결될 것이다. 그는 말과 이야기를 만드는 언어 예술가니까.

얼마 전 그는 이길우 화가와의 대화를 엮은 <그림에도 불구하고>(문학동네, 이원 등 10인 공저)에서 10여 페이지에 걸쳐 마치 후렴구처럼 이 말을 반복했다. '언어에 구멍을 뚫을 수 없을까'.

그러니 인터뷰에서 "문학의 형태적인 측면만 강조한 건 아니"고 "(소설) 형식만큼이나 내용도 함께 가려했다"는 작가의 말에 지면을 빌어 이렇게 대답한다. 작가의 소설을 볼 때, 독자가 말의 내용보다 말의 모양새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아직은 말이다.

그를 소개하는 마지막 팩트를 추가한다.

4. 지난 주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냈다.

숨김없이 남김없이

'프로이트는 아이의 놀이를 지켜보다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장난을 발견했다. 그 장난 속에서 부재는 말-이미 부재로 만들어진 현전-을 통해 그 자신에게 이름을 부여했다. 조절된 한 쌍의 소리에서(…) 사물들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언어의 의미세계가 태어난다.' (카자 실버만 <월드 스펙테이터> 97페이지, 라캉 '로마담론' 인용 부분)

소설가 김태용의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는 마치 이 로마담론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소설의 설정부터 그렇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그와 그녀, 그리고 이들의 자식인 '뭐'다. 소설에서 미지수 X나 심지어 ( )까지 인물이나 사물의 이름을 대신해 등장하는데, 작가는 "명명하고 지시하는 것의 불완전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아이의 놀이를 지켜보다 한 쌍의 소리에서 세계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행위를 발견했다는데, 작가 역시 "딸아이의 인형 놀이, 그 놀이에 썼던 '어른을 따라하는 말'에서 이 작품의 힌트를 많이 얻었다"고 했다. 물론 지난 주 국내 출간된 이 책을 저자는 읽지 않았다.

소설은 뭐의 탄생과 죽음이 의식의 흐름으로 나열된다. 이 소설이 -1장, 0장, 1장, 끝 장으로 구성된 이유다. -1장은 뭐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뭐의 부모인 그와 그녀가 만나는 지점이다. 개들의 언덕이라 부르는 곳에 미친 노파가 산다. 그는 15년 만에 미친 노파의 집을 찾아간다. 늙은 창녀인 미친 노파는 아들인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노트에 산보라는 단어를 쓰고 밖으로 나온 그는 은단을 사기 위해 약방을 찾는다. 약방을 찾아가는 길에 그는 그녀를 만나고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온다. 그와 그녀의 동거. 전혀 다를 줄 알았던 그와 그녀는 진부한 연애 궤도에 진입해 정해진 수순을 착실히 밟아간다. 어느 날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아들 '뭐'를 낳고 죽는다.

0장은 뭐가 자신이 생겨나던 시점, 그와 그녀가 몸을 섞어 자신을 잉태한 시점을 바라보는 광경에 대한 묘사다. 1장은 뭐가 언어와 만나는 지점이다. 뭐는 언어를 배우지 못한 입장에 있는 언어 사용자다. 뭐는 언어를 배우지 않았더라도 언어를 사용해 무언가를 명명하고 지시한다.

전쟁 후 파괴된 섬에서 살아남은 대령을 만나고 그는 주둥이처럼 생긴 것이 '개'임을, 낯선 쇠 조각이 '총'으로 불리게 됨을 알게 된다. 소설은 등장인물에게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심리 또는 대화, 현상마저도 그들의 의식을 좇으며 서술한다.

시간이나 갈등 곡선을 따르는 일반적 이야기 형태에서 벗어난 김태용의 소설은 회화로 치자면 추상화에 가깝다. 때문에 그의 소설을 두고 '서사를 파괴하는 글쓰기'란 말도 있다. 소설의 형식에 주목하는 문학계 평가와 별개로 "내용(변화)도 함께 가려 했다"는 앞서의 말과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서사를 파괴하는 글쓰기란 평에 대해 작가는 "장편을 쓰면서 서사가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전 단편집을 낼 때 '소설에서 서사가 없어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장편을 쓰면서 소설에서 서사는 사라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일반적인 서사 형태로 소설을 쓰는 것에 갑갑함을 느끼는 건 사실이고 문장을 파괴하거나 언어 실험을 하거나 인물, 공간을 흔들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죠."

한 편의 부조리 연극을 보는 것 같은 그의 작품은, 따라서 읽어낼 수 있는 자만 찾는 작품의 진가를 음미할 것이다. 마치 모든 한국인이 홍어와 육회와 번데기를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그러니 왜 홍어에는 구린내가 나느냐, 번데기의 모양은 이렇게 흉측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그가 왜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려는지 물어서도 안 될 일이다.

문학이란 원래 그러한 것이고, 준비된 자만이 취향껏 즐기면 그만이니까. 문학과지성사의 웹진 '문지'에 장편 <벌거숭이>를 연재하고 있는 작가는 "소설에서 연극적인 면을 끌어오려고 한다. 다른 예술 장르를 소설 안에 녹여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얘기로 소통이 안 된다, 대화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소통과 문학의 소통은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첫 문장을 쓸 때 세상과 단절되어서 혼자 쓰지만 또한 소통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를 뚫고 가려는 교란하려는 게 소통이 아닌가 싶어요. 10명의 독자가 다 읽을 수 없을 거고,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그게 문학적인 것 아닌가하는 거죠. 이런 욕심은 있어요. 누가 읽어도 정보와 의미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설, 그렇더라도 다 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나?' 하는 소설. 읽혀나갈 때는 문장에서 멈추지 않게 하고 싶은 소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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