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텟엑스 리더 조윤범'뮤직카드' 애플리케이션 작업중… 8월 기획연주서 공개예정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이 아이패드를 손에 쥐고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재미있게도 콰르텟엑스의 리더 조윤범(35·제1바이올린)이었다.

그가 펴낸 두 권의 베스트셀러 <파워클래식> 1·2편을 통해 IT분야, 특히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맛깔스러운 입담만큼이나 그의 충만한 재기가 디지털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을 공연에서 '폼 나게' 이용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했다.

그들의 행보는 탄생부터 참신하다 못해 돌연변이다웠다. 리더 조윤범이 '음악계의 괴물'이란 별칭을 갖게 된 것도 그 행적을 추적해보면 무리도 아니다. 실내악만을 하겠다는 젊은 연주자들의 의도가 의아하게 여겨지던 2000년대 초반, 조윤범은 현악 사중주단 콰르텟엑스를 결성했다.

그리고는 '슈베르트 현악 5중주'와 같이 심심한 클래식 곡에 '나비'와 같은 부제를 붙여나갔다. 벌써 100여 곡의 실내악곡이 '콰르텟 엑스'표 제목을 갖게 됐고 이 제목을 작품의 진짜 제목으로 여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콰르텟엑스는 WEB CD라는 것을 만들어 앨범을 웹에서 자유롭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했다.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불법 다운로드'의 그림자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며 '카피 레프트(copy left) 운동에 동참한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콰르텟엑스의 예외성은 점점 짙어졌다. 이후 그들이 감행한 것은 '팜플렛 혁명'이었다. 공연에 대한 엑기스 정보가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끝나는 순간 '찌라시'로 전락하는 팜플렛의 형태를 전면 수정한 것이다. 팜플렛 혹은 프로그램 북이라 일컬어지는 것을 '뮤직카드'라 명명하고 타로카드 모양으로 여러 장을 만들어 각기 다른 정보를 담았다.

카드 케이스에 넣듯 여러 장의 뮤직카드가 묶여 하나의 뮤직카드 세트가 되는 것이다. 만약 다른 공연에서도 이 같은 뮤직카드를 사용한다면 관객들이 이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조합이 가능할거다. 뮤직카드의 등장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볕 좋은 봄,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윤범은 이 뮤직카드를 아이폰 속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을 하기 전, 그는 몇 번이고 아직 밝히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듣는 순간, 1년 이상 '비밀리'에 공들여 온 프로젝트이자 오는 8월의 기획연주에서 깜짝 공개할 예정이라는 '이것'의 정체가 사실, 싱겁지 싶었다.

하지만 괴짜 바이올리니스트의 설명을 듣자니, 아이폰 혹은 아이패드를 통한 음악계-공연계의 지각변동은 이 같은 주변부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작은 혁신은 또한 전 세계의 공연시장에 조준되어 있었다.

뮤직카드가 앱스토어에서 판매되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 이젠 공연 프로그램을 앱스토어에서 개별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모두들 전자책과 신문의 디지털화를 말하지만 전단과 브로셔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에만도 한국에서 수십 편의 공연이 열린다. 굉장히 큰 시장이다. 많은 공연장에서 엄청난 양의 팜플렛이 보여지고 버려진다. 정보의 낭비이기도 하지만 환경 공해이기도 하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팜플렛의 디지털화가 공연계에 대단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우리 공연뿐 아니라 다른 공연의 뮤직카드를 만들기 위해선 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야 한다. 뮤직카드가 하나의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음악 샘플 기능을 삽입하고, 공연을 본 사람이 그 음악을 다시 듣고 싶을 때 레코드점에 갈 것이 아니라 아이튠스랑 연결해서 들을 수 있게 한다. 굳이 공연을 가지 않더라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 뮤직카드를 사게 될 것이고, 가령 '말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 공연에서의 말러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볼 수도 있게 된다. 정신없이 수집하게 될 거다.

팜플렛은 공연 사이사이에 확인하게 되는데, 아이폰 속에 팜플렛이 들어간다면 벨소리로 인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모두 애플리케이션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이 애플리케이션을 켜면 자동으로 진동모드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넣었다.

얼마나 진행되었나.

이미 제작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지금 단계에서는 카피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 이렇게 밝히게 됐다.

그는 음악계에서 도시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 부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소비자'의 입장이 되어 공연에서 흥미를 돋우는 데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이로써 '문화'를 바꾸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은 <파워클래식>과도 맥이 닿는다. 한국일보 칼럼으로 시작해 강의를 거쳐 클래식 대중화의 완결편으로 출판된 <파워클래식>은 클래식 대중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로 꼽힌다. 영화와 IT, 개인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이 책은 '클래식의 위기'가 음악이 아닌 중간자들의 아이디어 부재에서 비롯되었음을 뼈저리게 반증했다.

그동안 음악시장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인한 불균형이 심화되어 왔다. 이런 유통구조의 중간자로서 예술가가 뛰어 드는 이유는 이런 '판'을 깨기 위해서라고 그는 설명했다. 과거 예술과 기술은 대척점에 존재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옛날 얘기다. "도태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도태되는 순간 반대말에 속게 되는 그것이 문제가 되죠. 무슨 일을 하든 예상하는 겁니다. 그 일을 하지 않고도 결과를 예상하는 게 바로 프로지요." 뮤직카드 애플리케이션이 클래식 음악계뿐 아니라 공연 문화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까. 올 여름이면 가늠해볼 수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